[국민일보 2004-05-03 18:00]


“엄마도 없고 갈 데도 없는 어린이날은 기다려지지 않아요.”

3일 서울 광장동 재한몽골학교에서 만난 오롱거(11)양은 또래 한국 아이들과는 달리 어린이날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올해로 한국에 온지 4년째. 하지만 아직도 낯설기만 한 한국에서 오롱거양은 집과 학교 외에는 갈 곳이 없다. 지난달 29일 어머니 어트겅투야(43)씨가 관광비자 재발급을 위해 몽골로 돌아간데다 불법체류자인 아버지 바챙가(41)씨도 막노동을 끝내고 자정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

“지난해 어린이날에는 엄마가 함께 있어 책을 선물받기도 했다”는 오롱거양은 “하지만 올해는 아빠도 늦게 오시기 때문에 친구 나란트야(11?^여) 집에서 둘이 놀 계획”이라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4학년인 오롱거양은 이날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보냈다. 하지만 어머니의 비자가 언제 발급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오롱거양은 더욱 불안하기만 하다.

이처럼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들은 한국의 어린이날이 반갑지 않다.

평소 하루 10여시간씩 노동에 시달리는 부모들은 이날 자녀와 놀아주기보다는 쉬고만 싶은 게 현실. 게다가 값비싼 놀이공원이나 장난감 등은 고국으로 돈을 보내야하는 이들에게 있어 사치일 뿐이다.

또 자녀들도 이들의 불안한 신분을 알기에 마음놓고 나들이가자고 졸라댈 수도 없는 형편이다. 오롱거양은 2001년부터 어린이날은 물론 휴일조차도 한 번도 부모와 함께 외출한 적이 없다고 했다.

오롱거양은 “불법체류자들을 잡아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엄마,아빠에게 밖에 나가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1999년 문을 연 재한몽골학교에는 현재 8학년까지 모두 31명의 몽골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가 불법체류자들로 아이들을 이곳에 맡겨 기르다시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감 한금섭(40?^여) 목사는 “우리 학교는 부모들이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보육기관의 성격이 강하다”며 “한국학교에 전학을 보내도 상대적 열등감에 적응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시 코시안의집 김영임(39?^여) 원장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들은 국내에서 태어나도 아무 권리가 없는 불법체류자가 될 뿐”이라며 “교육?^의료 등 각종 부문에서 차별을 받아야 하는 이 어린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정욱

정동권기자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