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04년 04월 19일 (월) 17:53


2살때 교통사고로 뇌성마비 '시민기자' 김오달씨의 꿈
소외된 약자 집회 빠짐없이 취재… 속기못해 암기, 43건 보도

[조선일보 허윤희 기자] 서울역 고속철도 승강장에서 ‘장애인 이동권연대’ 소속 회원 20여명이 “장애인의 고속철 탑승권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시위 참가자들과 경찰 의경·역무원들의 몸싸움이 벌어지자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그 현장에는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 뉴스(Break news)’ 시민기자 김오달(29)씨도 있었다. 김씨는 뇌성마비 지체장애 2급 장애인이다. 그의 팔에는 작은 사진기가 걸려 있다. 그러나 김씨를 발견한 의경들이 우르르 달려와 그를 현장에서 끌어내기 시작했다. 몸놀림이 불편한 김씨를 보고 같은 ‘장애인 시위대’로 판단한 것이다.

“난 기자예요, 기자! 취재하러 왔다고요!”

김씨는 급하게 주머니에서 명함과 신분증을 꺼냈다. 그나마 손동작이 서툴러 명함이 땅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의경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결국 현장에서 한참 벗어난 구역으로 나가고 나서야 풀려났다. 김씨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란…정말 어쩔 수 없네요. 기자든 뭘 하든.”

그는 두 살 때 가족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다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로 뇌를 다쳤다. 이때 사고로 ‘뇌성마비 장애’ 판정을 받고 취학 나이에 재활학교를 들어갔다. 하지만 그에게는 꿈이 하나 생겼다. 언젠가 자신과 같은 장애인처럼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약자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런 일을 하려면 기자가 제격이라 생각했어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쓰고 고발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재활학교에서 초·중·고교 과정을 마친 김씨는 1997년 명지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다.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김씨는 2년도 채 안 돼 회의에 빠졌다. 학교에서는 자신이 원했던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문학비평이나 언어학 등 이론적인 쪽에 치우쳤다. 결국 학교를 쉬고 명동 애니메이션센터 등을 다니며 영화 및 만화 시나리오 공부를 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같은 장애인이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심도 버리지 않았다. 자주 집회 현장에 나가 발견한 문제들을 자신의 컴퓨터에 올리기 시작했다. 올해 1월 김씨는 대학로에서 열린 ‘외국인 이주노동자 추방 반대’ 집회에 나갔다 온 뒤 네티즌 자격으로 ‘이주노동자와 시민혁명의 간극:한국 사회의 인권 후진성을 폭로한 이주노동자 대책’이라는 제목의 글을 ‘브레이크뉴스 독자 칼럼’에 올렸다.

그가 올린 이 글이 브레이크뉴스측에 채택되면서 그는 시민기자가 됐다. 정식 기자는 아니지만 기자가 되고 싶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꿈을 이룬 것이다. 그는 이후 서울 영등포, 서울역, 광화문, 대학로 등 각종 농성 현장을 돌며 장애인 문제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기사를 43건 작성했다.

김씨는 다른 기자들처럼 수첩을 가지고 다닐 수는 없었다. 속기(速記)하는 것은 그에게 너무 벅찼다. 머릿속으로 일일이 취재내용을 기록하고 다녀야만 했다.

“취재하기 전에 필요한 가이드 라인을 잡고 거기에 맞춰 팩트들을 집어넣는 식으로 취재했습니다. 사무실에 돌아와서 컴퓨터에 취재내용을 옮겼고요.”

그는 “진부한 말일지 모르지만, 나를 비롯해서 우리 사회의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현실이 바뀌는 그날까지 기사를 쓸 것”이라며 “이들의 이야기는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윤희기자 ostinato@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