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권리 ‘보호’없는 외국인보호소외국인보호소라고 쓰고 구금시설이라고 읽는다
이영 | 승인 2018.02.01 23:41

최근 연이어 제천 스포츠센터, 밀양 세종병원 화재가 발생하여 온 국민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안전을 뒷전으로 하고 이윤 추구를 위한 불법 증축과 건축비를 절감하기 위한 마감재(드라이비트)로 인해 불쏘시개 역할을 하여 화를 키웠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과 함께 떠오르는 악몽 같은 날이 지난 과거 이주노동자에게도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사건

바로, 2007년 2월 11일이다.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10명의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17명이 부상을 당한 비극적인 참사가 있은 지 벌써 10년이 되었지만, 오버랩(Over Lap)되어 다가온다. 화재 발생 당시 새벽 4시경 화재가 발생한 3층에는 소방법에 의무화되어 있는 열감지기인 스프링클러 조차 작동되지 않았고, 안전관리에 책임을 져야 하는 담당공무원들은 안전 불감증을 대변하듯 1층과 2층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영 성공회 신부 제공

여수외국인보호소는 국가시설이다. 하지만 외국인을 보호해야 할 국가시설에 ‘보호’는 없었다. 오히려, 공권력이라는 미명하에 이중으로 된 쇠창살에 갇혀 이주노동자들은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야했다. 결과적으로 여수외국인보호소 참사는 국가공권력이 빚어낸 강제추방정책의 총체적 산물이었다. 이러한 참사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 단속추방은 멈추지 않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에 있다.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일어난 화재로 10명의 이주노동자 사망자들의 사연

이태복(43) : 평생 농사만 짓다가 1996년 빚을 내 브로커에게 8백만 원을 주고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 공장이 3~4개월 만에 문을 닫아 ‘귀국조치’ 명령을 받았으나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었다. 10년 동안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건설 현장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김성남(54) : 건축업 서비스업에서 일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으나 일이 없어 가두리 양식장에서 일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었다. 엄마 없는 청각장애인인 큰 딸과 둘째 딸을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키려고 일했지만, 수백만 원의 체불임금 때문에 외국인보호소에서 계속 기다리다 참사를 당했다. 그가 숨진 뒤 확인한 통장에는 체불임금 720만원이 입금돼 있었다.

천슈엔훼이(35) :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본국에 돌아갈 비행기 티켓을 구하지 못해 하루 더 머물게 되었는데 그 사이 참사가 일어나 변을 당했다.

김광석(39) :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폭행을 당해 치료를 요구했지만 묵살 당했고 오히려 독방에 갇히며 온갖 인권 유린을 당했다.

에르킨(47) : 체불임금 420만 원 때문에 여수외국인보호소에 꼬박 1년을 갇혀 있었다. 봄에 결혼할 딸에게 혼수품을 사주기 위해 이 돈을 꼭 받아야 했고, 그 돈을 쥐고 본국에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다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참사를 당했다.

장지궈(50), 손관충(40) : 강원도 채소밭에서 배추와 무를 캐 시장에 배달하며 손발이 퉁퉁 부어오르도록 일했다. 한 형제처럼 서로 위로하던 이들은 여수외국인보호소에 갇혀서도 한 방에서 지냈고 변을 당하기 직전 고향에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리사오춘(46) : 여권이 없어 출국하지 못하고 여수외국인보호소에 남게 된 지 6일 만에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로 사망했다.

진선희(46) : 2001년 브로커에게 1200만 원을 주고 입국했다.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왔다가 열악한 노동 조건을 견디다 못해 1년 반 만에 직장을 이탈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됐다. 여수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있다가 화재 참사로 사망했다.

황해파(38) : 9명의 구금된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로 중상을 입고 16일 간 사경을 헤매다 결국 사망했다.

여수외국인보호소 참사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외국인보호소 방문조사(2008년~2012)를 실시하였다. 방문조사에 참여하며 외국인보호소의 실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단속된 이주노동자의 보호기간(출입국관리법 52조)이 10일 이내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휠씬 넘겨 ‘보호’ 아닌 장기 ‘구금’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단속 과정에서도 가택 및 공장의 무단진입에 의한 위법적 단속이 지속되고 있었다. 때로는 단속 과정에서 저항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보복성 폭행도 자행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이러한 행위가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성, 헌법 제12조 신체의 자유, 헌법 제17조 사생활 보호 침해 행위다”며 법무부장관에게 주거무단진입 등 단속 관행을 시정하고 재발방지대책 수립 등을 권고하였다.

뿐만 아니라, 임금체불과 관련한 권리구제에도 소홀하여 고용노동부 소관으로 이관하여 미흡하게 대처함으로 외국인보호소의 이주노동자들은 이중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주노동자의 권리구제 ‘보호’ 없는 외국인보호소
임금체불 구제 없이 강제 출국 당하는 이주노동자

2016년 12월 초에 구릉 씨는 출입국에 의해 단속되었다. 결국 출국을 앞두고 거주지 보증금 1,500만원과 체불임금 3개월 분 540만원 정도, 4년 퇴직금분 1,100만원을 해소하고 출국하기를 희망하여 출입국에 일시보호일시해제를 신청하였다. 하지만 신청 당시 담당 출입국 직원은 보호일시해제 해당 사항에 대해 “임금체불과 관련해서는 보호소에서 다 해결해 준다.”고 하며, 신청은 하라고 했다. 또한, 신청과정에서 다른 출입국 직원이 “뭐 하러 신청을 받냐!”고 하자, 담당 출입국 직원은 “거부하면 그만이다.”라고 했다.

ⓒ이영 성공회 신부 제공

조사를 명목으로 신청 후에도 2주를 넘겼지만, 일시보호해제 사유에 대한 조사 없이 결국 일시보호해제 불허 통보를 받았습니다. 불허의 사유는 ‘도주 우려’라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보호일시해제는 전면 불허되었다. 권리구제를 받지 못한 구릉씨는 한 달이 넘게 외국인보호소에서 구금이 되었다가 2017년 1월 말에 출국하였다.

구릉 씨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싶었다.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적어도 한국에 있던 이주노동자들이 떠날 때에는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고 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이주노동자들이 웃으며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는 여수외국인보호소와 같은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압적인 강제추방정책 아닌 자발적인 귀국을 유도해야한다. 또한, 반인권적인 구금시설과 같은 외국인보소호는 폐쇄하고, 최소한 UN의 ‘피구금자처우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을 준수해야한다.

이영  eotjde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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