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12월 18일,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이주노동자권리협약 비준 기념일에 부쳐
12월 18일은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이 유엔에서 비준된 날이다. 이 날을 기하여 우리사회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현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부르짖으며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고용주 친화적으로만 바꿔버린 이명박 정권의 적폐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자 한다. 
의도치 않은 한 방! 오타인 줄 알지만, 그 속에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지난여름에 쉼터에서 두 달 가까이 생활했던 캄보디아 여성이주노동자가 문자를 보내왔다. 모옴이었다. 전화번호가 바뀌었다고 했다. 달리 전화할 일이 없는 사이지만, 그래도 알려주니 고마웠다.

이어 모옴은 몇 개의 단어로 그간 소식을 알려주었다. "결울 8시부더 4가지" 겨울이라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한다며 그가 보내온 문자는 맞춤법이 엉망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짧은 문자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겨울이 되면서 월급을 적게 주던 '사장이 싸가지'까지 없어졌다는 말처럼 들렸다.

모옴은 한국에서 다섯 번째로 겨울을 맞고 있다. 그런데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춥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같은 동네 친구와 4년 10개월을 같은 농장에서 일했었다. 시골에서 어려서부터 해 오던 일이라 크게 어려움이 없었고, 친구는 말벗이 돼 주어서 외로움도 덜했다. 덕택에 올해 여름 성실근로자로 재입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국하자마자 그를 기다린 것은 계약해지라는 통보였다. 사장은 그간 일했던 정을 생각해서 근로계약을 했지만, 사업이 어려워져서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지만 사장은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해고 통보를 하고 근무처변경을 허락했다.

두 달 가까이 구직 활동을 하며 갖고 있던 돈을 다 쓸 즈음에 이것저것 재다가는 큰 일 나겠다 싶어 선택한 농장은 천만다행으로 일이 많아 보였다. 그래봤자 월급은 한 달에 두 번 쉬고도 최저임금 기준에도 못 미치는 137만원이었다. 그마저도 겨울이 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3게월 70만원"

석 달 동안 70만원씩 받았다는 뜻이었다. 모옴은 비닐하우스에서 날이 밝아올 즈음에 시작해서 어두워질 때까지 상추 등의 채소를 캐고 박스에 넣어 포장하는 일을 반복한다. 일은 다른 한 명의 캄보디아 동료와 둘이 한다. 사장은 아침에 일을 시키고 저녁에 와서 할당량을 채웠는지 정도만 확인한다. 그래서 일하는데 스트레스는 없다. 다만 월급이 문제다. 하루 근무시간이 휴게 시간을 빼면 7시간이라 해도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다. 고용허가제 농업분야 이주노동자들에게 일한 만큼 받는 호사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들은 살인적인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잔업이나 특근, 야간 수당 등을 받지 못할 뿐더러, 주 5일 기준의 최저임금을 받는다.

곧이어 모옴이 보내온 문자는 그런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다르게 읽혔다. 그의 문자를 보며 몇 개의 단어만 나열하고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도 했고, 숨이 턱 막히게도 할 수 있음을 알았다. 마치 전율을 느끼게 하는 시처럼 짧고 강한 인상을 준 그의 문자는 이랬다.

"월급 주금잇어요"
▲ 주금이 죽음으로 읽혔다 이주노동자가 보내 온 문자ⓒ 고기복
"월급 조금 있어요"라는 뜻이었지만, '주금'이라고 쓴 글에서 순간 '죽음'을 떠올렸다. "월급이 너무 적어서 죽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어떻게든 위로가 필요했다. 죽고 싶다는 모옴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고작 '노동부에 신고하자'가 전부였다. 그는 간단하게 "네"라고 답했다.

이명박 정부는 농업이주노동자들의 근로계약에서 기숙사 등의 숙박비를 공제하도록 허락했다. 그 이후로 이주노동자들은 주거 시설이 아닌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 살면서도 상당액의 숙박비를 꼬박꼬박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모옴의 사장은 비수기인 동절기에 이주노동자에게 주는 돈이 아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기숙사비와 난방비 등 온갖 명목으로 공제했을 게 빤하다. 어쩌면 근무일수도 하절기에 비해 적었을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마땅히 제공해야 할 급여치고는 너무나 적었다. 월급명세서가 있는지 물었다. 없다고 했다. 싸움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달리 다투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주노동자가 사장을 상대로 바른 소리를 한다는 건 해고를 각오했을 때 하는 말이라는 것쯤은 알만큼 한국에서 산 그였다. 일이 없으니 캄보디아에 잠시 갔다 오겠다는 말인지,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인지 뜻이 분명치 않은 문자를 보내왔다.

"다음다  나는고양놀러가요."

그의 뜻대로 고향에 갔다 오면 한 해를 그저 보낸 것과 다를 바 없다. 실직 중에 쓴 돈과 오가며 든 비용과 생활비 때문에 남는 게 없다. 한겨울 추위가 물러나고 일이 많아지기를 고대하지만, 농사일이란 게 한국이나 캄보디아나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걸 그 역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놀러가기를 꿈꾸는 건 그가 어려서가 아니다. 힘든 겨울을 어떻게든 이겨내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굳은 결심을 하고 이주노동을 온 만큼 코리안 드림을 이루고 말겠다는 각오 말이다.

모옴을 보며, 자꾸만 '인간의 굴레'를 쓴 서머셋 모옴이 떠오른다. 존중받으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원하지만, 가난은 인간을 속박하는 가장 강력한 굴레가 되기도 한다. 모옴은 그 굴레를 벗어버리려고 몸부림치며 한국에 왔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극복하려고 택한 이주노동이 그의 인생 목표를 이루는데 걸림돌이 될지 디딤돌이 될지 누구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는 아직 물러서지 않았고,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손해도 감수하려고 하고 있다.

쉼터에 있을 때, 돈 많이 벌어서 2월에 휴가 가고 싶다고 했던 그였다. 그런데 한 달을 앞당겨간단다. "그의 이주노동은 성공할 수 있을까"라고 물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의 투쟁은 성공할 수 있을까?"를 묻게 하고 있다. 어이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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