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이 지난주 관객 10만명을 넘었다. 화려한 캐스팅과 세련된 마케팅이 스크린을 앞뒤에서 밀어주는 상업 영화가 아닌 이른바 ‘다양성 영화’로서는 의미 있는 숫자다. 영화는 가난한 부모가 출생등록을 하지 않아 서류상으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12세 빈민가 소년의 삶을 통해 빈곤과 난민 등 우리 사회에서 감추어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작년 프랑스 칸(Cannes)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오르고,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역대 가장 오랜 시간이라는 15분의 기립박수 기록을 세운 영화 <가버나움>에는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영화 속 등장인물과 비슷한 삶을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소년은 실제 현실에서도 합법적인 신분이 없었던 시리아 난민 소년이었고, 다른 배우들도 실제 난민이거나 빈곤과 가난을 견디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연기는 전문 배우들보다 더 능수능란하며, 관객의 마음을 빼앗아 간다.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온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눈빛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그들은 서류상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존엄하다고 배워왔는데 영화가 보여주는 이들의 삶은 처참할 뿐이다. 소년은 지옥 같은 현실에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하지만, 사실 소년의 목소리가 향하는 곳은 생물학적인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린 법과 현실이다. 소년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존재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러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 자신들이 아니라 가진 자들이 만든 법과 제도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지옥 같은 현실이 아무리 이들의 존재를 지우려 해도, 반짝반짝 빛나는 이 보석 같은 존재들을 우리 곁에서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시작한 영화는 소년의 옅은 미소로 끝을 맺고,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한 관객은 마지막 소년의 미소가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한 번으로는 부족한, 오래간만에 만난 서너 번은 보고 싶은 좋은 영화다.

영화는 2019년 한국의 현실과도 닮아 있다. 영화 속에서 자동차들이 한껏 속력을 내고 달리는 고속도로 갓길 위로 소년은 낡은 스케이트보드에 찌그러진 냄비를 이어 붙인 생존의 수레에 난민의 아이를 싣고 위태롭게 걸어간다. 이 모습은 인천공항 45번 게이트에 방치된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앙골라 난민 가족들의 모습과 겹친다. 4명의 아이들과 함께 이들은 콩고 이주민을 박해하는 앙골라에서 피해를 입고 탈출해 지난해 12월 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해 바로 난민 신청을 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들의 입국을 불허하고,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다시 앙골라로 돌아갈 수도, 한국으로 입국할 수도 없는 이들은 한 달 넘게 하루 24시간 사람들이 오가는 인천공항 탑승구역에서 생활하고 있다. 공항에 비치된 캐리어 카트를 타고 노는 것이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놀이시간이다. 영화 속 소년의 눈에 비친 가버나움의 모습과 비행기 소음과 조명 불빛 아래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앙골라 소녀의 눈에 비친 한국의 현실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법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법이 사람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을 뿐이다.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하고 인권 선진국임을 자부하던 한국정부가 정작 박해를 피해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을 법과 제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법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불법’이라거나, ‘가짜’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일은 너무 쉽다. 난민을 밀어내고, 이주노동자를 지워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내어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을 과연 ‘존엄’하다고 부를 수 있을까?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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