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돌풍…유럽은 왜 극단 세력을 택했나

[주간 프레시안 뷰] 유럽의회 선거, 극우 정당 약진이 의미하는 것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6.01 13: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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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2~25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반유럽연합(EU)'을 내건 영국과 프랑스의 극우 정당들이 각기 자국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일대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유럽의회 사무국이 26일 나라별 출구 조사 등을 토대로 발표한 의석 집계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이 29%의 득표율로 제1당이 됐습니다. 마린 르펜 당수의 주도 아래 반이민·반유럽연합 정책을 주창해온 프랑스 국민전선은 2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역시 제1당이 됐습니다. 영국독립당은 그동안 국내 총선에서 단 한 명의 의원도 배출하지 못한 군소 정당이었지만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최다 득표를 함으로써 100년 넘게 유지돼온 영국의 보수·노동 양당 체제에 일대 타격을 가했습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 또한, 1972년 창당 이래 최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유럽의회는 유럽연합(EU)의 입법부로 출범 당시인 1962년에는 회원국의 국회의원들이 겸임했으나 1979년부터 회원국의 인구 비례에 따라 직접 보통선거에 따라 5년마다 의원을 뽑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에는 27개 회원국에서 736명의 의원을 선출한 바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프랑스 국민전선은 24석을 차지(영국독립당도 비슷한 수준)했기 때문에 당장 유럽의회 내의 역관계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의회 내 최대 교섭단체인 중도 우파 유럽국민당그룹(EPP)은 이번 선거에서 60석이 줄어든 214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지만 여전히 제1당의 위치를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유럽연합'을 기치로 내세운 극우 정당들이 영국과 프랑스에서 제1당으로 올라섬으로써 유럽 통합의 앞날에 커다란 장애물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영국 BBC 방송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유럽연합 회의론이라는 지진이 유럽을 흔들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당장 유럽연합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금융 위기 재발을 방지하고 금융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야심 차게 추진해온 은행연합 등의 통합 경제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이, 또한 역내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이주를 허용했던 이민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프랑스 국민전선 등 극우 정당들은 외국의 값싼 노동력 유입이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복지 비용은 크게 늘리고 있다면서, 이민 규제와 외국인 배척을 노골적으로 주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치적 통합을 추진해 하나의 유럽을 만든다는 목표도 당분간 표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유럽의회 선거 개표 상황. ⓒ연합뉴스

▲ 유럽의회 선거 개표 상황. ⓒ연합뉴스


미국의 최대 맹방이자 중국과 함께 경제 규모 2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유럽연합의 통합 작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첫째,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에 효과적인 대처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금융 위기 당시 중국과 미국의 주식 시장은 각각 70%와 50% 하락하는 등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반면 유럽이 입은 타격은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 2012년까지 중국은 연평균 9%, 미국은 1%대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반면, 유럽연합 국가들은 0.1%에 그쳤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과 중국은 강력한 중앙정부가 과감한 통화 발행으로 위기를 헤쳐나간 반면, 유럽연합은 회원국 간 이견으로 대규모 유로화 발행과 같은 효과적 대처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그리스, 스페인, 프랑스 등 심각한 금융 위기에 직면한 국가들은 한시라도 빨리 유로화를 풀 것을 원했지만 독일, 핀란드 등 경제가 안정되고 피해가 크지 않은 나라들은 인플레 등을 우려해 이에 반대했습니다. 결국 회원국들 간의 이견으로 금융 위기에 신속하고도 과감한 대처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유럽연합의 무리한 동진 정책입니다. 유럽연합은 1990년 냉전 종식 이후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무려 10여 개 국가를 신규 회원국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서유럽의 풍부한 자본과 동유럽의 저렴한 노동력의 결합으로 경제 성장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죠. 하지만 서유럽과 동유럽의 경제 격차는 더욱 벌어졌습니다. 나아가 값싼 임금의 동유럽 노동자들이 서유럽으로 밀려들면서 서유럽 국민들의 반이민 정서는 한층 고조됐습니다. 결국 서유럽이나 동유럽 국가들 모두 불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거죠. 

유럽연합의 무리한 동진 정책이 빚어낸 최근의 위기는 지난해 말 이래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입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영향권 아래 있던 우크라이나마저 유럽연합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던 푸틴 정권은 갖가지 당근으로 이를 막으려 했고, 이것이 우크라이나 내부를 양분시킨 것은 물론 전략적 요충인 크림반도의 러시아 귀속으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서방 언론들은 주로 푸틴 정권의 불법성, 폭력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은 사실 러시아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측면이 강합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의 동진으로 러시아의 영토와 인구는 구소련 시절에 비해 30% 이상 서방 측으로 넘어갔습니다. 자국의 세력권이 30% 이상 준 것이죠. 결국 러시아로서는 마지막 남은 자신의 세력권만은 지켜야 할 절박한 필요가 있었던 셈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러시아와 유럽연합 간의 관계 악화는 러시아와 중국 간의 동맹을 강화하는 지정학적 결과를 낳았습니다. 지난 5월 21일 베이징에서 중국과 러시아 간에 맺어진 천연가스 공급 협정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향후 30년간(2018~2048년) 약 4000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이 계약은 무려 10년을 끌어오며 양측이 줄다리기해온 해묵은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유럽 판로를 잃어버리게 된 푸틴으로서는 결국 중국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양측은 이번 협상에서 이틀 동안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으며, 구체적 타결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유럽연합의 무리한 동진 정책이 낳은 러시아와 유럽연합의 관계 악화 덕택에 중국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확보하는 한편 러시아를 중국의 영향권 안으로 한 걸음 더 끌어들이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둔 셈입니다. (중-러 동맹 강화가 동아시아에 끼칠 영향에 관해서는 지난 5월 22일 발행된 <주간 프레시안 뷰> 39호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가 대표가 쓴 '동아시아 새판 짜기, 미일 대 중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한편, 유럽연합 각국에서는 분리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국의 스코틀랜드와 스페인의 카탈루냐주, 이탈리아의 북부 지역, 프랑스의 코르시카와 브르타뉴 등에서 분리 독립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데, 스코틀랜드의 경우 올가을 영국으로부터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이 또한 유럽연합의 정치 통합을 지체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초 국내에 번역 소개된 <2023년 세계사 불변의 법칙>(고상희 옮김. 글항아리 펴냄)이라는 책에서 중국 정치학자 옌쉐통은 오는 2023년에는 세계가 미국과 중국 양강 구도로 짜일 것이며, 유럽연합은 정치 통합의 지체 등으로 인해 독일이 주도하는 지역 연합체에 머물 것으로 예측합니다. 유럽연합이 미국이나 중국에 필적하는 세계 정치의 주요 플레이어가 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죠.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대로 신속하고 과감한 경제 정책을 펼 수 없다는 점, 정치 통합이 미진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옌쉐통은 앞으로 10년 안에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탈퇴할 것이며, 이제까지 유럽 통합을 이끌어 왔던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도 국력 격차가 커지면서 독일이 주도권을 잡겠지만 유럽연합이 세계 정치에 의미 있는 역할을 가능성은 적다고 예측합니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이러한 그의 예측에 상당히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고의 외교관, 프란치스코 교황

지난 5월 24~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동 방문이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탁월한 균형 감각을 보이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평화를 위한 정직한 중재자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4일 요르단을 방문해 시리아 평화를 촉구한 뒤, 25일 예수의 탄생지인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이전까지 중동을 방문했던 세 명의 교황들이 이스라엘을 먼저 찾았던 것과는 달리 팔레스타인을 먼저 방문한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는 상징적 행위인 셈입니다. 지난 2012년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엔 총회가 압도적 찬성으로 팔레스타인을 비회원 옵서버 국가로 받아들였지만,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이스라엘 점령 아래 놓여 있습니다.   

교황의 파격적 행보는 계속됩니다. 미사 장소로 향하던 교황은 8미터 높이의 거대한 분리장벽 앞에서 벽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장벽은 서안 지구의 유대인 정착촌과 팔레스타인 사회를 격리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쌓아올린 것입니다. 무언의 항의인 셈입니다. 이어 교황은 예수 탄생지 근처의 '구유광장'에서 공개 미사를 집전하면서 "점점 더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이 상황을 끝내야 한다. 분쟁을 종식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국경 안에서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도록 모두 용기를 가질 시간이 됐다"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기원했습니다. 다음 날인 26일에는 이스라엘을 방문해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만났으며 팔레스타인 테러에 의한 이스라엘 민간인 희생자 묘역을 찾기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희생자들을 모두 공평하게, 똑같이 대우한 것입니다.

특히 교황은 베들레헴 미사에서 마흐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을 바티칸에 초청하면서 "함께 바티칸에서 하느님이 평화의 선물을 주시도록 진심 어린 기도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양측 지도자는 즉각 다음 달 바티칸 방문 의사를 밝혔습니다. 미국이 중재한 평화 협상이 결렬된 상황에서 교황이 대화의 물꼬를 튼 것입니다.

외신들은 "국제 사회의 중재자라는 과거 바티칸의 역할을 재현했다(<뉴욕타임스>)", "정치적 지뢰밭에서 길을 찾아냈다(<가디언>)"면서 교황의 이번 행보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8월 14~18일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남북의 교류가 꽉 막혀 있는 지금, 교황의 방한이 한반도에도 평화와 화해의 물꼬를 열어주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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