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주민 돕는 뉴질랜드동포 김진 변호사 "외국인도 똑같은 사람"

미국·뉴질랜드 살다가 귀국…"이방인 경험이 이주민 이해하는 데 보탬" 
"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동 보호해야"…"외국인 공포는 편견에서 비롯" 

이주민 지원 공익센터 '감사와 동행'의 김진 변호사가 23일 서초동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미국이나 뉴질랜드에 살면서 크게 차별받은 기억은 없어요. 굳이 들자면 '영어 잘한다'는 말을 들을 때였죠. 저를 외국인으로 본다는 뜻이니까요. 재외동포로서의 정체성에 관해서도 깊이 고민한 적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이주민 관련 활동을 하다 보니 제가 그곳에서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 같아요. 그런 경험과 자각이 이주민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됩니다."

이주민 지원 공익센터 '감사와 동행'(약칭 감동)의 김진(33) 변호사는 미국 국적자다. 부모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로 유학해 그곳에서 김 변호사를 낳았다. 1990년 부모와 함께 귀국해 초중고를 졸업하고 2004년 뉴질랜드로 가족 이민을 떠났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2011년 뉴질랜드와 호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2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 사무실에서 만난 김 변호사는 "뭔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법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이주민 문제에 관심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방학 때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다가 한 스리랑카 소녀의 변화상을 눈으로 확인하고 인생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처음 제가 만났을 때 그 아이는 영어도 못하고 성격도 소극적이어서 저와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했어요. 중학교 입학을 도와줄 때도 부모와 얘기할 수밖에 없었죠. 그 뒤로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2∼3년 후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완전히 다른 아이로 변했더군요. 성격도 활달하고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교육받을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아이가 많고, 주변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그는 변호사가 된 뒤 한국에서 3개월가량 인턴 생활을 하며 경험을 쌓겠다는 생각으로 부모와 남동생이 사는 뉴질랜드를 떠나 홀로 귀국했다. 그즈음 한국에서는 난민법이 별도 법률로 제정되고(2012년 2월 10일) 이주민이 급증할 때였다.

비영리단체(NPO) 동천에서 공익법률 지원활동을 하고 국제아동구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의 권리옹호팀에서 일하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한국 국적도 회복해 이중국적을 얻었다. 감동에는 고지운 대표변호사의 권유로 2016년 6월 합류했다. 김 변호사는 이주아동 문제 해결에 주력하면서 제도 개선 활동과 법률 연구를 전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사는 이주아동 15만여 명 가운데 2만 명가량이 미등록 아동입니다. 최소한의 기본적 인권은 보장해야 하는데 보육비 지원이나 어린이집 입소 등 여러 권리를 제한받고 있죠.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고도 일부 협약 내용을 유보해 개선 권고를 받아왔습니다. 18대와 19대 국회에서 이주아동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이 발의됐다가 잇따라 폐기됐죠.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아직 나서는 국회의원이 없어 아쉽습니다."

이주아동 권리보장 법안을 반대하는 여론의 골자는 납세와 병역 의무 등을 지지 않는 불법체류자(미등록자)들이 아이를 핑계로 체류자격을 얻어 혜택을 누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19대 때는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를 주도했는데도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필리핀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난과 항의를 다 뒤집어쓰고 인신공격까지 받았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아동은 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게 유엔협약의 정신"이라면서 "이주아동들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국에 살게 된 만큼 최소한의 권리와 체류 자격을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외국인이 일자리를 빼앗는다거나 범죄를 저지른다는 등의 인식은 대부분 잘못된 선입견 탓입니다. 외국인들은 내국인들이 꺼리는 3D 업종에 종사하고 있고 외국인의 범죄율은 내국인보다 낮습니다. 직접 겪어보지도 않은 채 막연히 공포감이나 거부감을 품는 분도 많죠. 저희 후원자 가운데 이주노동자를 고용했던 분이 계시는데 '함께 지내보니 다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돕고 싶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김 변호사는 얼마 전 나라 안팎을 떠들썩하게 만든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관해서도 한 사례를 들려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공장에서 일하던 태국 출신 이주여성이 한국인 남성 동료에 의해 14시간 동안 차에 감금돼 폭행당한 뒤 살해되는 끔찍한 일이 있었습니다. 미등록자임을 알고 있던 가해자가 단속을 피해야 한다며 차에 타라고 유인한 거죠. 유족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감동은 합법적 체류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범죄 피해자 지원제도의 혜택을 입지 못하는 문제점에 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한편 다른 이주민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미투'조차 외칠 수 없는 이주여성들의 현실을 폭로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출신국에 따라 이주민은 물론 재외동포들에 대해서도 차별적 시선이 존재함을 느낀다. 모든 사람의 인권이 골고루 보장되고 다름이 인정되는 사회를 이루는 데 자신의 이주민 경험과 법률 지식이 보탬이 된다면 아낌없이 나누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

"가장 약자는 이주아동이에요. 이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또 난민은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오죽하면 자기가 살던 땅에서 탈출할 수밖에 없었겠어요. 이들을 처우 개선을 돕는 게 제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와 동행'의 김진 변호사는 "주변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며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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