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기사] 공항 난민 '루렌도 가족'의 뒷이야기, 이건 모르셨을 걸요 http://omn.kr/1ogvh

2018년 12월의 어느 추운 겨울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찾은 아이가 인천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됐다. 어머니는 난민 신청 의사를 밝혔지만,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은 명백히 이유가 없는 난민 신청이라며 난민인정심사로 회부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날 밤 본국으로 송환지시가 내려졌지만, 어머니와 아이는 변호사 접견의사를 밝혀 겨우 송환을 면할 수 있었다.

송환이 저지된 후 어머니와 아이는 공항 탑승동으로 옮겨졌다. 당시 아이는 두 돌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어머니는 어린 아기를 데리고 출국장에 방치되었다. 무섭고도 불안한 밤이었다. 당장 먹을 것도 없었다. 잘 곳도 마땅치 않았다. 어머니는 간신히 수유실을 찾아 그곳에 아이를 재우고 본인도 새우잠을 청하려 하였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공항 관계자가 달려와 이들을 쫓아냈다. 밤이 되면 추웠고, 또 공항의 건조한 환경으로 인해 아이가 열이 오르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심정에 밤낮으로 SNS로 단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의 발 사진 건조한 공항에서 생활하다 갈라지고 상처난 아이의 발 사진
▲ 아이의 발 사진 건조한 공항에서 생활하다 갈라지고 상처난 아이의 발 사진
ⓒ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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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오고, 메시지와 사진이 계속해 전송됐다. 하지만 당장 한밤중에 공항에 갈 수도 없고, 간다 한들 이들을 만날 수도 없었다. 공항 약국 위치를 찾아서 알려주고,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것이 변호사와 활동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공항 내에 어머니와 아이가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알아보았는데, 인천공항 내에 있는 캡슐호텔이 너무 비쌌고, 항공권과 여권을 가지고 있어야만 이용할 수 있었다. 당시 어머니와 아기의 여권은 항공사가 압수하여 보관하고 있었는데, 항공사에 여권을 본인에게 반환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여권 사본을 줄 수 있을 뿐이라 하였다. 호텔에서는 이런 경우에는 이용이 어렵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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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약 열흘이 지난 뒤인 크리스마스 이브날 다행히 입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추운 겨울 공항에서의 열흘 밤은 참 길었다. 춥고 건조한 공항은 아동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한국의 난민법이 보장하는 출입국항 난민 신청 제도 안에 아동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그날 이후에도 아무런 개선은 없었다. 같은 정책이 운용되던 중 2019년, 10세 미만의 아동 4명이 있는 가족이 무려 287일 동안 공항에 방치되는 일이 발생했다.

출입국항 난민 신청 제도의 현재와 아동의 인권

난민 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에 대해 소송을 통해 다투고자 하는 경우, 그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공항의 난민신청자는 탑승동 또는 출국장 등의 구역에서 머무르게 된다. 사실상 '방치'되어 숙식과 건강의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송환 지시가 내려지면 항공사가 당사자의 여권을 압수하는 관행으로 인해 여권과 탑승권을 제시해야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면세점을 이용할 수도 없다. 식비가 소진된 경우에는 사실상 끼니를 거를 수밖에 없다. 항공사는 입국이 거부되는 등으로 송환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경우에 송환할 때까지 숙식 제공 의무가 있고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88조에 그 근거가 있다. 난민신청자가 불회부결정을 받으면 인천공항에 올 때 타고 온 항공사가 출입국으로 송환지시를 받게 되고 그때부터 숙식 제공 의무를 지게 되는 구조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장기간 숙식 제공 의무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서 부당한 측면이 있긴 해서 사실상 그 의무를 방기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잠을 잘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불복 및 구제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제대로 누워 잠을 잘 수도 없고, 씻을 수 있는 공간 역시 마땅치 않다.
 
공항에 머무르는 아동 사진 누구도, 특히 아동이 거주하기 적합하지 않은 공항의 환경
▲ 공항에 머무르는 아동 사진 누구도, 특히 아동이 거주하기 적합하지 않은 공항의 환경
ⓒ 사단법인 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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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누구도 공항에 장기간 방치되어서는 안 되지만, 학교나 어린이집 등 교육을 받을만한 기관이 없고 적절한 영양 섭취가 어려우며, 수면의 질 저하 및 스트레스 등 건강을 위협하는 환경인 공항 터미널은 아동에게는 특히 적절한 장소가 아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심각한 제도적 결함으로 인해 공항에 도착한 아동들은 탑승 구역에서 노숙에 가까운 생활을 하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적절한 수면, 위생, 의료 환경과 관련된 생존권, 교육권, 사생활을 보호받지 못하였으며, 휴식과 여가·문화생활을 보장받을 권리 모두를 박탈당했다.

2019년 9월, 유엔 아동 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협약에 따라 아동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 대한민국 국가보고서에 대한 제5차~제6차 심의를 진행했다. 당시 공항에 머무르고 있던 아동 4명의 사례는 아동권리위원회 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심의 중 한 위원은 난민 신청을 한 10세 미만의 아동 4명이 있는 가족이 인천공항 환승 구역에 방치되어 제대로 된 식사도 못 하고, 언제나 열려있는 공간인 공항에서 조용히 잘 수도 없는 현실을 지적하며, "한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어떻게 이러한 인권 문제들이 발생하는지 의아하다"고 평하기도 하였다. 

이어 2020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이 아동들이 진정을 제기한 사건에서 난민 신청 아동의 인권 보호를 위한 의견 표명을 결정했다(진정 조사 중 불회부 결정이 취소되고 입국이 허가되어 진정에 대해서는 각하하였다). 이 의견표명을 통해 국가인권위원회는 법무부 장관에게 난민 인정심사 불회부 결정 이후 소송 등으로 처분의 정당성을 다투는 사람이 아동인 경우, 이 기간에 기본적인 처우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하고, 특히 "아동 최선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입국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령 및 제도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이와 같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책권고와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개선 촉구 및 국제사회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제도 변화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 가장 많은 국가가 비준한 국제조약이자 한국 역시 당사국인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정부가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함을 선언하고 있다(제3조). 또한, 당사국 내 모든 아동은 차별 없이 협약이 보장하는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제2조). 아동은 어떤 상황에서도 공항에 구금되고 방치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아동 권리협약과 난민협약, 그리고 기타 국제사회가 정한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진(사단법인 두루, 외국변호사)과 김연주(난민인권센터, 변호사)가 함께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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