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감금에도 일터 못 옮기는 이주노동자 "노예와 다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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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사업장 즐비, 직장 이동 권리 없어 “150만원 내라”는 사업주… 신체·노동 자유 침해하는 ‘위헌’ 고용허가제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매일 오전 6시~오후 5시40분 11시간 가량 근무. 휴게시간은 40분. 한 달 2일만 쉬는데 이마저 휴무라며 하루 10만원 임금 삭감. 하루 3초에 1장씩 12시간 따야 채울 수 있는 '깻잎 1만7000장' 수확 못하면 또 임금 삭감. 계약하지 않은 다른 농장에 파견노동까지. 이렇게 일해 받는 월급은 약 160만원. 지난 3년간 체불된 임금만 2300여만원."(캄보디아 출신 붠(VRON)씨 사례)

"'200만원 내라.' 농장을 옮기려고 하니 사장이 말했다. 2016년부터 미나리 농장에서 일했다. 같은 동작을 오래 반복하다보니 허리에 이상이 생겨 병원을 다녔지만 낫지 않았다. 일을 계속하기 어려웠다. 일하는 농장을 바꾸고 싶었다. 사장은 200만원을 요구했다. 그만큼 줄 수 없다고 항변하다 결국 150만원을 주고 농장을 바꿨다."(네팔 출신 퍼우델씨 사례)

지난 3월 시민단체들이 이주노동자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한 고용허가제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데 이어, 이번엔 당사자들이 증언대회를 열고 고용허가제에 따른 강제 노동 피해를 고발했다. 직장 이동의 자유를 요구하는 이들은 내달부터 피켓시위 등 직접 행동도 시작한다.

50여개 이주노동 관련 단체가 모인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추진모임(이하 추진모임)은 18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피해 증언대회'를 열고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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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에 온 베트남 출신 청년노동자 안00(24)씨가 18일 열린 강제노동 피해 증언대회에 나와서 자신의 피해 사건을 고발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현행 외국인고용법상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에겐 직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 △사용자가 먼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회사가 휴업·폐업했거나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한 '일부 근로기준법 위반'에 한해 예외로 이동이 '허가'된다. 이마저 2~3회로 횟수도 제한됐다. 추진모임은 나아가 "이런 위헌적인 법마저 지키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입국해 용접 일을 시작한 베트남인 A씨(24)는 지난 6월 사장에게 감금·폭행까지 당했으나 3개월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임시 사업장 변경 신청'을 했다. A씨는 용접가스로 건강이 극도로 상해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고 사장은 '1년 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1년이 지나 다시 요청하니 사장이 거부했고 '3년 동안 성실 근무하겠다'는 서약서에 서명까지 강제했다. A씨가 거부하자 '코로나19' 환자로 몰리면서 감금됐고 폭행도 당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지역 고용센터가 긴급히 사업장 변경 임시 처리를 해주지 않아 시일이 더 걸렸다.

최저임금법을 위반하거나 인간적 모멸감을 주는 사업장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은 문제 사업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2017년부터 경기 김포시에서 용접 일을 하는 베트남인 B씨(30), 2018년 입국해 포항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베트남인 C씨 모두 한국인 직원에게 폭행을 당했다. 고용센터는 B씨에게 '사장에게 다시 일 시켜달라고 해라'고 권했고 C씨에겐 '사장이 폭행해야 변경할 수 있다'고 반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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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사장으로부터 강제 서약을 강요당한 서약서(왼쪽)와 코로나19 환자로 몰려 감금당한 흔적(오른쪽). 사진=강제노동 피해 증언대회 자료집 갈무리.
이들은 자기 건강을 챙기기도 힘들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네팔노동자 C씨 사례를 들었다. 3년 전부터 모 채소재배농장에서 일하던 C씨는 면마스크만 쓰고서 매일 살충제, 제초제를 비닐하우스에서 뿌렸다. 그러다 두통이 극심해져 다른 농장으로 가겠다고 농장주에 말했으나 거부당했다. 김 대표는 "C씨는 오늘도 두통을 참으며 농약을 뿌리고 있다"고 말했다.

공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해 트라우마에 시달린 한 이주노동자는 7개월 간의 애원 끝에 공장을 옮겼다. 김달성 대표는 "지난 1월 한 가죽공장에서 보일러 폭발사고가 나 2명이 죽고 8명이 크게 다쳤다.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은 직원 D씨는 숙면을 하지 못하고 작은 소리에도 놀라며 불안에 떨었는데 사업주가 일터 이동을 허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D씨는 병원 진단서를 들이밀며 7개월 간 호소한 끝에 사장 사인을 받고 공장을 옮겼다. 이마저 고용센터 알선에 따라야 했다.

폭행·감금 피해에도 정부 기관 "사장 허가 받아라"

추진모임 구성원들은 각 지역 고용지원센터의 미온적 대응을 규탄했다. 고용센터는 이주노동자들이 일차로 찾는 고충 상담 기관이다. 이주노동 관련 단체엔 이주노동자들이 감금, 폭행, 임금체불 등 문제를 호소해도 "사업주 허가 없이는 행정처리는 불가능하다"고 답하는 고용센터 사례가 흔히 접수된다.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지난 7월 고용노동부가 낸 해명자료를 예로 들었다. 고용노동부는 당시 고용허가제 비판 보도에 대한 대응으로 이주노동자가 "취업활동기간 중 3회까지 사업주 승인없이 이직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우 대표는 이후 사업장을 변경하려는 한 이주노동자와 고용센터를 들러 이 해명자료 출력본을 냈다. 그러나 담당자는 '사업주 승인 없인 어렵다'고 답했다.

원옥금 이주민센터 동행 대표는 긴급 보호 조치 제도도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사업장 변경 사유 확인에 한 달 이상 걸리거나, 성폭력·폭행·상습 폭언 등이 발생한 곳에 한해선 시급히 사업장을 변경해주는 '임시 사업장 변경 제도'가 있다. 원 대표는 "이주노동자 혼자 가면 폭행사건 접수증과 상해진단서를 제출해도 제대로 안내해주지 않는다"며 "또 신청을 접수한 날부터 1달 간 심사하는데 긴급 피신을 시켜야 할 경우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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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는 이주노동자에 사업주가 각종 비용 정산 및 '무단결근으로 인해 근로계약을 해지한다'는 허위 서약을 강요한 사례. '근거리 동종업체에 취업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있다. 사진=미얀마노동자복지센터, 강제노동 피해 증언대회 자료집 갈무리.
근로기준법 보호조차 못 받는 이주노동자

이는 모두 추진모임이 지난 3월18일 사업장 변경 사유와 횟수를 제한한 고용허가제를 두고 위헌 심판 청구 소송을 헌법재판소에 낸 이유다. 추진모임은 이 제도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신체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근로할 권리를 모두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근로기준법상 강제 근로 금지에도 위배된다. 추진모임 대리인단의 정진아 변호사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에 따르면 '근로자 퇴직은 근로자 자유 의사에 의해야 하며, 사용자가 사무상의 이유로 퇴직하려는 자를 계속 근로케 하는 건 강제근로 금지 조항(근로기준법 7조) 적용을 받는다'고 정한다"고 밝혔다.

사업장 변경을 허가해주는 근로기준법 위반 사유도 제한적이다. 임금 체불 경우 "월급의 30% 이상을 2개월 이상 체불하거나, 월급 10% 이상을 4개월 이상 체불하거나, 최저임금을 위반해야" 한다. 근로시간을 변경해도 "근로시간 20% 감축 기간이 2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근로자 동의 없이 2시간 이상 앞당기거나 늦춘 행위가 1달 이상 지속돼야" 한다. 달리 말하면 '격월로 임금체불을 하거나 1달만 근로시간을 임의로 변경하면' 사업장 변경을 요구할 수 없다.

국제노동기구가 1930년 택한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에도 반한다. 이 협약 2조 1항은 강제노동을 "어떤 제재의 위협으로 강요된 것이며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모든 작업과 복무"라고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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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개 이주노동 관련 단체가 모인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추진모임이 18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피해 증언대회'를 열었다. 사진=추진모임 제공.
추진모임은 궁극적으로 고용허가제의 근본 설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9년 8개월' 동안 같은 사용자를 위해 일하도록 설계됐다"는 이유다. 애초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정주를 막기 위해 취업 기간을 최장 3년까지로 정했으나 기간을 늘려달라는 사용자 측 요구에 1년 10개월(총 4년 10개월) 더 연장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이중 '성실 근로자'에 한해 사업주가 '재입국 후 고용허가'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신청이 된 이주노동자는 출국한 후 3개월 후부터 한국에 재입국해 취업할 수 있다. 그런데 재입국 전 4년 10개월 간 사업장 변경을 하지 않아야 성실 근로자가 될 수 있다. 또 재입국 후엔 처음 계약한 사업장에서 1년 이상 계속 일해야 한다.

재외동포, 방문취업자 등 다른 이주민과 형평성도 맞지 않다. 정 변호사는 "2018년 기준 취업 상태 이주노동자는 88만4000명이고, 이중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26만2000명, 그 외 재외동포는 19만9000명, 방문취업자가 17만1000명, 영주권자가 7만8000명"이라며 "이미 제도적으로 입국해 자유롭게 취업하는 외국인이 상당수 있다. 다른 이주민들의 상당수가 사업장 이동이 자유로운데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노동자들만 사업장 변경을 제한할 이유가 뭔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 변호사는 "이주노동자는 한국 입국 전 어떤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는지, 근무환경은 어떤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다.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어려운 조건임에도 입국 후 사업장 변경 기회가 제한되며 한 사용자에게 복무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며 "노동자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근로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손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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