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3천 번의 기적이 일어난 곳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레이버투데이 2005-07-25 16:35]    

양푼비빔밥과 시원한 수박이 테이블마다 한상 가득 놓여졌다. 7월22일,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의 개원 한 돌을 맞아 차려진 조촐하지만 정겨운 생일밥상이다.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1동에 위치한 6층짜리 건물 ‘외국인노동자의 집/중국동포의 집’, 그 2~3층에 위치한 작지만 큰 병원인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 지난 22일로 개원 1주년을 맞았다. 불법, 합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병원을 찾는 모든 이주노동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준다는 이 병원에선 지난 1년 동안 어떠한 기적들이 일어났을까.


▲ 이주노동자들의 안식처,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 매일노동뉴스


1년간 다녀간 환자 1만3,000여명

지난해 한신교회와 한라건설 등의 지원에 힘입어 세계 최초로 이주노동자만을 치료하는 병원이 문을 열었고, 그간 1만3,000여명의 환자가 이 병원에 다녀갔다. 환자의 대부분은 의료보험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등록이주노동자와 중국동포들.

“발뒤꿈치에 복합골절을 당해 실려 오는 환자가 유독 많아요. 단속 나온 출입국관리소 직원들 눈을 피해 공장 2~3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다가 당한 부상이지요.”

10년 넘게 ‘외국인노동자의 집’을 운영하며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1,2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의 장례를 손수 치렀다는 병원대표 김해성 목사의 말이다. 지난해 8월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이후 불법체류자에 대한 정부의 단속 수위가 높아지면서, 단속을 피하려다 부상을 입은 환자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었다.

최근 병원을 찾은 불법체류자 신분의 한 중국동포(36)도 지난 5월 단속반을 피해 공장 난간에서 뛰어내렸다가 다리뼈가 부러진 경우다. 역시 불법체류자인 방글라데시 출신 이슬람(45) 씨는 당료병 증세가 있었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미루다 합병증이 생겨 발가락이 썩어 문드러졌다. 발목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잃었고, 현재는 종합병원으로 옮겨져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을 찾았다가 체류기간이 지나 불법체류자가 된 이들. 그동안 벌어둔 돈은 한국에 들어오게 해준 대가로 중간 브로커에 선불로 내준 빚을 갚는데 다 써버리고, 수시로 단속을 피해 이곳저곳 떠돌다보니 수중에 돈 한푼 없이 몸만 상했다.


▲ 치과 진료 모습. <사진=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인터넷 까페>


십시일반 모인 정성이 생명 살렸다

“갖은 차별과 구타, 임금체불 등에 시달리다 몸에 병까지 얻은 이주노동자들은 하나같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고 있습니다. ‘반한감정’이라는 마음의 병이죠.” 서울 강남에서 소아과 원장을 지내다 병원을 접고, 이주노동자전용의원의 원장으로 온 이완주 원장의 말이다.

“하지만 치료를 마친 이들이 한국에 대한 악감정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고 병원문을 나설 때 보람을 느낍니다.” 이 원장은 자비 3억원을 병원발전비로 선뜻 내놓은 것도 모자라 1년 내내 월급 한푼 받지 않고 '인술'을 펼치고 있다.

치료와 검사, 수술, 입원에 드는 일체의 비용을 받지 않고도 병원이 1년이나 굴러갈 수 있었던 것은, 타지에서 외롭게 죽어가는 이주노동자들을 한명이라도 더 살려보겠다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모아진 결과다. 지난 겨울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독지가가 ‘좋은 일에 써 달라’는 편지와 함께 현금 2,700만원이 든 상자를 소포로 부쳐 온 일도 있었다. 병원 식구들은 대책회의를 거쳐 이 돈을 외국인노동자를 위해 꼭 필요한 데 사용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만들었다.

또 지난 겨울과 봄, 보건복지부에서 5명의 공중보건의를 상근직으로 보내 왔고, 병원에 구비돼 있는 각종 의료기자재와 환자들의 식사를 위한 음식재료 등도 여러 단체와 자원봉사자들에게 지원 받았다. 가정의학과, 내과, 정형외과, 치과, 한방 등의 진료과목을 갖추고, 30병상 규모의 입원실과 수술실, 중환자실, 약국 등을 구비한 준종합병원으로서의 면모를 갖게 된 것은 이렇듯 많은 이들의 관심과 후원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 개원 1주년 기념행사장을 찾은 이주노동자들. ⓒ 매일노동뉴스


정부 할 일 대신하지만 빚만 2억…정부지원금 전무

많은 이들이 십시일반 병원의 운영을 돕고 있지만, 개원 1년이 지난 현재 병원은 2억여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재정 등 병원의 안살림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이선희 목사는 “모든 진료가 무료로 이뤄지다보니 경영적자가 심각한 지경”이라며 “앞으로 얼마나 더 병원을 운영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전했다. 본인의 집을 팔고, 아이들 이름으로 붓던 적금까지 깨 병원운영에 보태고 있지만, 불어나기만 하는 병원 빚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병원이 적자경영에 허덕이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지원금 한푼 없이 무료진료를 강행하고 있기 때문. 병원 개원 초창기에는 2000~3,000원의 진료비를 받았지만, 그마저도 없어 병원 오기를 주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감안해 지난해 11월부터 완전 무료진료시스템으로 전환했다. 공중보건의 5명의 월급까지 병원에서 부담해야 하는 형편이라, 당장에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빚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주노동자를 무료로 진료해주는 병원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최근에는 출입국관리소, 외국인보호소 등에 수용돼 있던 환자들까지 이곳으로 보내지고 있는 형국이지만, 노동부 등 이주노동자 노동정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정부부처의 발길은 전무한 상태다.

“정부는 불법체류자를 치료하는 시설이라는 이유로 병원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지원할 경우 불법체류 자체를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죠.” 김해성 목사는 우리나라의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제1원인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라며,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불법체류자를 지원하라는 게 아니에요, 정부도 나름대로 난처한 부분이 있겠죠. 다만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민간단체나 활동가를 지원하라는 겁니다. 일이 그런 식으로라도 풀려야 맞는 거지요.”


▲ 개원 1주년을 기념해 발간된 두권의 책. 수익금은 병원운영비에 보탤 예정이다. ⓒ 매일노동뉴스


“우리 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길에 동참해주세요”

다시, 양푼비빔밥이 한상 가득 놓여진 개원 1주년 기념식 현장. 이날 행사장에서는 2권의 신간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김해성 목사가 이주노동자, 중국동포들과 함께해 온 20여년의 세월을 글로 정리한 <목사님, 저는…한국이 슬퍼요>와,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의 희로애락을 사진으로 엮은 최순호 조선일보 사진기자의 가 그것. 이날 첫선을 보인 이 책들의 수익금은 전부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의 후원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책이 좀 팔리면 병원운영비에 보탬이 될까 해서….” 시간을 쪼개가며 글을 썼다는 김해성 목사. “50만 외국인노동자도 우리의 소중한 이웃입니다. 이들을 살리는 길에 동참해 주십시오. 그리고, 책도 좀 많이 사주시고요.” 좋은 일을 하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환한 웃음꽃이 김 목사의 얼굴에서 피어났다.


▲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의원에 보관돼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유골들.
<사진=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인터넷 까페>


후원금 보낼 곳 : 외환은행 035-22-04431-7(예금주 (사)지구촌사랑나눔)
자원봉사 문의 : 02)863-9966

<인터뷰> 김해성 목사(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대표)
“합법, 불법을 가리지 않아…사람 살려야 된다는 생각뿐”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의 1주년 기념행사가 있기 하루 전날. 모든 직원들이 행사 준비에 동원돼 분주한 가운데, 그중에서도 회의하랴, 걸려오는 전화 받으랴 유독 바쁜 이가 있으니, 이 병원의 대표 김해성 목사다.<사진>


김 목사는 한신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80년대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 공장에 위장취업하면서 노동운동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망하지 않고 1년을 버텼네요"라고 운을 뗀 뒤, "병원도 살아 남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감당해 냈다는 데 뿌듯함을 느낍니다”라며 개원 한 돌을 맞는 소회를 전했다.



ⓒ 매일노동뉴스


- 개원 첫돌을 맞았다.
“처음 병원을 만들자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완강히 반대했다. 의사도 아니고 돈도 없는 내가 병원을 차리겠다고 나섰으니. 하지만 망하지 않고 1년을 버티고 살아남았다. 병원도 살아 남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감당해냈다는 뿌듯함이 크다. 또 ‘외국인에 대한 인권침해의 나라’라는 오명을 쓰고 실추돼 가는 한국의 국가위상을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무료진료를 감행하면서도 살아남은 것에 대해서는 ‘구사일생’이라고도 생각한다.”


- 병원이 적자 운영되고 있다고 들었다.
“솔직히 말해 운영이 안 돼 죽을 지경이다. 1년 동안 적자가 2억이 났다. 개원 1주년을 맞아 책을 한 권 냈는데, 책이 좀 팔리면 병원운영비에 보탬에 될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 1만3,000여명의 환자가 다녀갔다.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는.
“한 중국동포는 건축현장에서 일하다가 발목이 부러졌는데, 사장이 수술만 시켜주고 곧장 퇴원시켜 버렸다. 그 며칠 뒤 이 노동자가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는데, 부검 결과 수술자리에 혈전이 생겨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다친 사람이 한국사람이었다면 입원비 몇십만원을 아끼자고 환자를 그렇게까지 방치했겠나? 또 다른 중국동포는 자신이 다니던 복도 벽에 ‘김ㅇㅇ 사장 천벌을 받는다. 내 영혼이 영원히 너를 괴롭히겠다. 한국이 슬프다'는 유언을 남기고 분신자살 했다.”


- 지난 겨울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독지가가 2,700만원을 보내와 화제가 됐다.
“보낸 사람 이름도 없이 한약 상자가 내 앞으로 배달돼 왔다. 조심스레 열어보니, 신문지에 쌓인 백만원짜리 뭉치 스물일곱개가 들어 있었다. ‘꼭 필요한 곳에 써 달라’는 보낸 이의 바람에 따라 그 돈으로 중환자실과 수술실, 회복실 등을 만들었다. 또 어떤 분은 본인이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이면서도 정부에서 지원해준 쌀을 아끼고, 폐지를 팔아 모은 돈을 보내 주기도 했다. 또 환자들에게 먹일 것이 없어 가락동시장에 나가 팔다 남은 시든 야채들을 얻어다 음식을 만들곤 했는데, 최근에는 주기적으로 음식 재료를 지원해 주는 분도 있다.”


- 환자 중 불법체류자가 많다.
“우리는 합법, 불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 살려야 된다는 생각 뿐이다. 최근에는 출입국사무소나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돼 있던 환자들도 여기로 보내지고 있다. 어떤 공무원들은 ‘꼭 필요한 일을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한다.”


- 정부지원금 없이 운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공중보건의 5명을 보내준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아직까지도 정부지원금이 없다는 것을 정부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정부는 불법체류 자체를 인정하는 꼴이 될까봐 우려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를 계속 방치할 경우 국제사회의 손가락질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훨씬 더 걱정해야 한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지원이 부담스럽다면, 그들을 지원하는 민간단체나 활동가라도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