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도 사람이고, 좋은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고, 누군가의 가족이기 때문에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방글라데시 출신인 섹 알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은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죽음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밝혔다.
이주노동자들이 잇따라 생명을 잃었다. 지난달 27일 경기도 여주의 한 양돈농가 축사에서 분뇨를 치우던 중국인, 태국인 이주노동자 2명이 사망했다. 지난달 12일 경상북도 군위 양돈장에서 정화조 청소 일을 하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2명도 사망했다. 이들은 황화수소에 질식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위험한 작업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이주노조는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돈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실태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섹 알마문 부위원장은 “기계가 했어야 하는 일인데 사람이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며 “충격적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주노조는 농가 측이 법을 지키기만 했어도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
‘산업보건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군위에서 벌어진 사고의 경우 정화조 작업은 애초에 기계를 통해 했어야 하지만 기계고장을 이유로 수작업을 지시해 사고가 났다. 해당 정화조에선 기준치의 2.5배나 되는 황하수소가 검출됐다. 밀폐된 공간에서 분뇨 작업을 할 경우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마스크를 지급하는 등의 예방조치를 취해야 하지만 군위와 여주에서 이 같은 조치는 없었다.
이주노조는 “양돈장 한 두곳만의 문제는 결코 아닐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규제가 있어도 지켜지지 않은 비규제 상황에서 법전에 적힌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조항들은 활자 이상의 이미를 갖고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주노조는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법을 어기면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이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색알마문 부위원장은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사고 사건들이 나올 때마다 보도가 나오고 문제제기를 하면 (과거 정부는) 조금 하는 척만 하고 후속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 이게 반복돼왔다”면서 “개선해 제대로 감독됐다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노조는 △해당 사업주 구속과 처벌 △ 축산업 사업장 특별근로감독 및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 △사고 작업장 작업중지 △산업안전법 위반 사항에 대한 시정조치 등을 요구했다.
또한,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도 사업주의 허가 없이는 사업장을 옮길 수 없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사월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의 그늘에 권리가 훼손되고 있다”면서 “고용허가제는 사업자로부터 받는 불합리한 인권침해도 참을 수밖에 없게 해 이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때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해 음지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을 막기 위해 도입됐지만 사업자 허가 없이 직장을 옮길 수 없다는 조항이 악용돼 노동자 통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농업 전반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천연옥 민주노총 부산본부 비정규위원장은 깻잎밭 노동착취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9월 밀양 깻잎밭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찾아왔다. 하루 10시간~ 11시간 일하고 한달에 1~2번 밖에 못 쉬는데 월급은 100만 원, 110만 원에 불과했다”면서 “숙소는 비닐하우스였다.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고 악취가 넘치는 재래식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