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구제절차 기간 일 못하면 취업비자 연장해줘야"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리호우씨가 머물던 열악한 비닐하우스 |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리호우씨가 머물던 열악한 비닐하우스 |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국내에 취업비자를 받고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와 갈등을 겪어 각종 행정절차나 소송을 진행하는 등 사실상 일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체류기간이 정지되지 않아 일부 이주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권리구제를 위해 소송을 하게 되면 1년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6일 시민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에 따르면 스룬 리호우씨(21)는 지난해 4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고용허가제 시험에 합격해 최장 4년10개월까지 한국에서 일할 수 있는 취업비자(E9)를 받아 한국에 입국했다. 하지만 리호우씨는 고용주의 폭언·불합리한 대우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8월 일하던 사업장을 이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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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의 정류장’에 따르면 이후 리호우씨는 외국인보호소 억류, 취업비자 말소와 회복 등 우여곡적을 겪은 끝에 지난달부터 경남의 한 농장에서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리호우씨는 8개월 만에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이하 외국인고용법) 제18조에 따라 보장하는 최대 노동기간 4년10개월 중 8개월 동안 일도 못하고 임금도 받지 못하게 됐다.

외국인고용법 제18조를 보면 ‘외국인근로자는 입국한 날부터 3년의 범위에서 취업활동을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같은 법 제18조2항에는 ‘조건을 충족한 이주노동자는 1회에 한해 2년 미만에서 취업활동 기간을 연장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입국한 날을 기준으로 2년 미만을 10개월로 해석해 최장 4년10개월을 취업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의 노동기간으로 적용하고 있다. 

고지운 ‘감사와 동행’ 변호사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기본적으로 취업활동 기간을 제한하고 ‘입국한 날(로부터)’을 기산점으로 삼기 때문에 소소 등 권리구제절차를 밟더라도 기간이 공제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예외조항 통해서라도 이주노동자 구제해야” 

‘감사와 동행’에 따르면 리호우씨와 같이 행정절차·소송 때문에 취업비자가 보장하는 최대 4년10개월을 꽉 채워 일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취업비자(E9)를 받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와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ㄱ씨(44)는 소속돼 있던 ㄴ건설사와 계약 문제로 2014년 7월 소송을 시작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15년 7월17일 ㄱ씨의 손을 들어줘 ㄱ씨는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ㄱ씨의 한국 체류기간은 10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사업장에서는 한국 체류기간이 10개월 정도 남은 ㄱ씨를 채용하려 하지 않았다.

고지운 ‘감사와 동행’ 변호사는 “ㄱ씨 같은 경우 소송을 진행할 때 취업비자 대신 임시체류비자(G1)이 나왔는데 법적으로 G1 비자로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며 “ㄱ씨는 생활비가 부족해 주변에서 돈을 빌려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결국 빚만 안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담당 부처인 고용노동부와 법무부는 현행 제도상으로는 이주노동자가 소송을 하거나 행정절차로 밟아 일을 할 수 없을 때 체류기간을 일시 정지하는 방법은 없고, 제도 개선도 쉽지만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외국인고용법 등 법률과 법률 외 여러 규정을 살펴봐도 소송, 행정절차 때문에 일시적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을 연장해주는 제도는 현재로선 없다”며 “만약에 소송기간 동안의 체류기간을 추가적으로 보장한다면 부작용도 우려된다. 체류기간 연장을 위해 소송이나 각종 구제절차를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도 “만약 소송에서 8개월이 걸려 4년10개월에 8개월의 체류기간을 더 보장해준다고 하면 5년 이상 체류자에게 주어지는 일반 귀화 신청 자격이 나온다. 다수의 이주노동자에게 귀화 자격을 부여하는 것에 아직 사회적 합의가 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며 “이주노동자들 중 상당수는 일을 하면서 소송을 진행한다. (리호우씨·ㄱ씨와 같은 경우는) 1000명 중 1명 나타날까 말까한 드문 케이스”라고 밝혔다. 

이같은 담당 부처의 조심스러운 입장에 대해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리호우씨와 같은 사례가 적더라도 반드시 제도 개선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지운 ‘감사와 동행’ 변호사는 “소송 중에 임시체류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들은 혹시나 당국에 걸릴까봐 일도 못하고 대부분 지인들에게 빚을 내 지낸다”며 “담당 부처에서 예외적인 케이스라고 본다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제도가 아닌 예외 조항을 만들어서 구제할 수 있다.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5170942001&code=940100#csidx17c9deb4e25d70db8ebd19a6de040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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