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시선]이주노동자 숙소 ‘또 다른 착취’

조영관 |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

집은 모두에게 소중하다. 몸이 유일한 재산인 노동자들에게 집은 특히 소중하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므로 소모된 노동력은 오로지 충분한 휴식을 통해 재충전할 수밖에 없다. 만약 제대로 된 휴식이 불가능한 숙소에서 머물게 하면서 계속 일을 시킨다면 이는 사실상 강제노동이다. 

[별별시선]이주노동자 숙소 ‘또 다른 착취’

1970년대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청년 전태일도 평화시장 사무실에 찾아가 맨 먼저 요구한 것이 일터 다락방에 마련된 노동자 숙소를 폐지하고 정식 기숙사를 설치하라는 것이었다. 일터 다락방에 얼기설기 만든 숙소는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업 이주노동자 중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에 살고 있다고 응답한 노동자가 85%를 넘었다. 

비닐하우스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시설이지 사람을 위한 주거시설이 아니다. 추위와 더위를 제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화장실이나 욕실 등 기본적인 설비도 열악하다. 직원은 30명이 넘는데 화장실이 1개뿐이거나, 한겨울에도 찬물만 나오는 야외 수도꼭지가 욕실이 된다. 좁은 컨테이너에 10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몰아넣거나, 내부에 얇은 합판으로 공간을 쪼개 남녀의 공동숙소로 사용하는 곳도 있었다. 인권과 노동권의 심각한 침해다.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서 이주한 노동자들은 일터 이외에 다른 생활터전이 없고, 지출을 최대한 줄여 돈을 모아야 하므로 열악한 주거환경을 견뎌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한 사용자의 숙소제공을 의무화하고, 안정적인 휴식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숙소의 면적, 안전, 위생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최소한 1인당 9.29㎡ 이상의 수면 공간, 21.1도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난방시설, 목욕과 세탁을 위한 온수 설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전에 숙소를 점검해서 기준에 미달하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도록 했다.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 ‘을’의 지위에 있으므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없는 일자리가 처음부터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얼마 전 발표한 ‘외국인 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에 따르면, 사용자가 비닐하우스와 같은 임시시설을 노동자의 숙소로 제공하더라도 월 급여의 최대 13%까지 숙식비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간단한 동의서만 받으면 숙식비를 월급에서 미리 떼고 지급할 수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비인간적이고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이는 현실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비인간적인 숙소 사용료를 사용자가 월급에서 먼저 떼어가도록 한 것이다.


이번 지침은 근로기준법에서 선언한 임금의 전액지급 원칙에 위배된다. 무엇보다 앞으로 비닐하우스와 같은 열악한 주거 시설을 계속 늘어나게 만들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노동권을 보장해야 하는 고용노동부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휴식과 노동력의 재충전에는 관심이 없고, 사용자들이 보다 쉽게 숙소 사용료를 챙기는 데에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금이라도 고용노동부는 관련 지침을 개정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기숙사의 기준을 마련하고,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점검하는 것이 고용노동부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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