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목소리다]네팔서 온 이주노동자 “아파서 병원 간다니 욕설···한국인이어도 이랬을까요”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오자 머두수던(오른쪽) 제공

오자 머두수던(오른쪽) 제공

2014년 12월 혈혈단신으로 네팔에서 온 오자 머두수던(35)은 한국에 사는 약 100만 명의 이주노동자 중 한 명이다. 처음 인천의 공장에서 그는 전기선 자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일도 열심히 하고 한국인 사장에게 ‘90도 인사’도 했다. 화장실도 없는 낡은 컨테이너에서, 처음 본 다른 이주노동자 네 명과 함께 지내야 하는 것도 참을 만했다. 

하지만 ‘코리안 드림’은 곧 무참히 깨졌다. 60㎏이나 되는 작업 재료를 수시로 맨몸으로 들어나르면서 허리에 이상이 생겼다. 너무 아파서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하니 한국인 작업반장은 “네팔로 돌아가라”며 욕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했다. ‘벌’로 무거운 작업 재료를 아무 의미없이 이리로 옮겼다가 또 저리로 옮겼다가 해야 했다. 반장은 누가 오토바이를 타는 사진을 보여주며 ‘너희 나라도 오토바이가 있냐’며 무시하듯 묻기도 했다. 사장은 인사해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를 찾은 그는 “버티다 못해 사장에게 ‘작업장을 옮겨달라’고 요구했지만 이후 넉 달 동안 반장은 일부러 나에게 아무 일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떤 날은 고작 하루 2시간만 일을 시켰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월급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돈을 모으기는커녕 가진 돈이 공장 기숙사비·공과금·식비 등으로 빠져나갔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이 가세하고 나서야 사장은 열네 달 만에 작업장 변경을 ‘허가’해줬다. 사업주들은 자신의 허락 없이는 이주노동자가 회사를 옮길 수 없는 고용허가제를 이런 식으로 악용하고 있다. 머두수던은 “한국 노동자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싸우거나 회사를 나갔을 것”이라며 “작업장 변경이 자유로워지면 이주노동자들이 노동 환경과 기숙사 시설이 더 나은 곳으로 가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정부가 이를 막고 있다”고 말했다.

두번째로 일하게 된 경기 평택에서도 부조리한 일은 계속됐다.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기로 계약했지만 정해진 작업장이 아닌 인근 농장에서 풀을 깎는 일까지 시켰다. 사장은 12개월 이상 같은 곳에서 일하면 지급해야 하는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11개월짜리 계약서을 쓴 뒤 계약기간이 끝나면 같은 공장의 다른 부서 소속으로 계약을 다시 맺는 편법을 썼다. 사장은 ‘11개월 계약서’를 강요하며 ‘체류 기간 연장’을 약속해놓고는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은 최초 3년간 한국에서 일한 뒤 최장 1년10개월간 더 일할 수 있지만, 사업주가 연장을 허락해주지 않으면 고국으로 떠나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제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결국 그는 또 다시 충남 천안에서 새로 터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2개월째 너트·볼트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원래 사장은 따로 기숙사 방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직 지키지 않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온 노동자 네 명과 한 방을 쓰기에 방 안에서는 대화를 한 마디도 할 수가 없다.

오자 머두수던(맨 오른쪽) 제공

오자 머두수던(맨 오른쪽) 제공

비단 일터에서만 차별을 겪는 것은 아니다. 머두수던은 “가게에 가도, 심지어 집회에서도 한국인들이 우리를 보며 무시하는 게 느껴진다”며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신이 의자에 앉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국인이 신경질을 내며 다른 자리로 옮긴 적이 자주 있다며 “한국인들도 예전에 돈을 벌기 위해 사우디 같은 나라에 갔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매 주말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이날도 집회 참석을 위해 1시간 반 동안 무궁화호를 타고 천안에서 서울에 왔다. ‘한국 국민’도 아닌데 어떤 이유 때문일까. 그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해 참석하는 것은 아니다”며 “박근혜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집회에) 갔다”고 말했다. 이주노조 조합원이기도 한 머두수던은 “인력 송출국에서 한국에 오기 전 ‘어떠한 단체에도 가입하지 말고 한국인들에게 잘 보이라’고 교육한다”며 “자기 나라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장이 머두수던의 한국 체류 기간 연장에 동의해주지 않으면 그는 올해 말 네팔로 돌아가야 한다. 그는 “이주노동자들도 한국의 경제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고용허가제 대신 가족이 함께 한국에 올 수 있고 사업장 변경이 자유로운 노동허가제를 도입해 인간답게 살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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