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메이드 인 재팬’

시급 3900원에 인권침해당하는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 
정부는 제도 개선 ‘모르쇠

제1198호
등록 : 2018-02-0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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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시민들. 한겨레 이정아 기자

“때리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인간입니다. 노예가 아닙니다.”

비통한 외침이 울려퍼진 1995년 1월 어느 날이었다. 서울 명동대성당에 네팔인 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했다.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의 농장 등에서 일하던 네팔인 13명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자신들을 정식 노동자로 대우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른바 ‘명동성당 농성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많은 한국인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저임금 노동을 강요당하는 산업연수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수’란 이름의 ‘노예’

‘국제 공헌’과 ‘기술 이전’이라는 명목으로 도입된 산업연수생 제도가 실은 싼값에 편하게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자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사실에 한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산업연수생들이 ‘노예’와 다름없는 인권침해 상황(열악한 노동조건뿐 아니라 상사에 의한 직장 내 따돌림이나 성추행 등도 만연했다)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진 결과, 2000년대 들어 이 제도는 사라졌다.

그 결과 한국에선 2004년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노동법(근로기준법)을 적용하기로 약속하는 ‘고용허가제’가 도입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나는 한국의 외국인지원단체 등을 취재해, 인권적 관점에서 볼 때 고용허가제도 반드시 이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진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도 외국인 차별은 무시할 수 없는 큰 문제로 떠올라 있다. 그렇더라도 ‘연수’라는 이름으로 ‘노예’ 상태를 강제하는 제도가 철폐됐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이렇게 악명 높은 연수생 제도는 애초 일본이 운용했다. 일본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 젊은이들의 생산직 기피, 임금 상승 등의 사회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외국인연수생제를 도입했다.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이 이와 비슷한 제도를 만든 것이다.


(외국인연수생제가 도입되자) 당연히 일본에서도 많은 문제가 생겼다. 위법한 저임금 노동, 고용주의 폭력, 성추행 등 인권침해 사례는 쓸어버릴 정도로 많다. 문제의 밑바닥에 있는 것은 외국인 편견과 차별이다.

최악의 인권 감수성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제도로 발생하는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국가의 태도다. 한국은 이 제도를 폐지했다. 그 뒤 제정된 고용허가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제도를 뿌리부터 바꾸는 작업을 했다.

일본은 어떤가. 외국인연수생제는 2000년대 들어 ‘기능실습제’라고 이름을 바꾸었지만, 실제 내용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최장 3년의 실습 기간에 직장을 옮길 자유가 없고, 노동자로 대접받지도 못한다. ‘저임금에 단기간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이란 상태는 변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지난해 말부터 기능실습생 인권침해가 다시 한번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기후현에선 노동법을 무시하고 시급 400엔(약 3900원)으로 노동을 강요당하던 중국인·베트남인 봉제노동자가 드러났고, 가나가와현에서도 노동조합에 가입한 베트남인 실습생에게 회사가 노조 탈퇴를 요구하는 사건이 터졌다. 작업 중 다쳐도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재해 사건도 잇따른다.

나는 한 공장 경영자와 인터뷰하면서 왜 노동법을 무시한 처우를 강요하느냐 물었다. 그는 “외국인도 노동법 적용 대상이 되냐”며 되물었다. 두려워해야 할 인권 감수성이다. 그들은 외국인 실습생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일부 경영자는 외국인 실습생에게 ‘무단외출 금지’ ‘노조가입 금지’, 때로는 ‘연애 금지’라는 말도 안 되는 취업규칙을 강요한다.

일본 정부는 ‘외국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라며 입으로만 지시할 뿐,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정하지는 않는다. 정규 외국인 노동자가 유입되면 일본인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 쇄국’ 정책을 사수하고 있다. 하지만 일손 부족과 인건비 급등에 대처해야 하기에 경영자에게 유리한 ‘기능실습제’로 구멍을 메우는 것이다.

농촌이나 영세기업의 경영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외국인을 희생하는 제도를 계속 유지해도 좋을까. 이는 영세기업을 고통받게 하면서 원청 대기업의 내부유보만 늘리는 결과를 낳지 않는가. 일본 산업구조의 모순이 가장 처지가 취약한 외국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인 것이다.

메이드 바이 차이니즈

지금 내가 입은 셔츠엔 ‘메이드 인 재팬’ 태그가 붙어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옷이 ‘메이드 바이 차이니즈’라는 사실을. 외국인 노동자들 없이 우리 생활은 유지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배려하는 정책을 이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는 주장하는 바다.

야스다 고이치 일본 독립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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