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한국 땅 밟았건만…이주노동자 죽음으로 내모는 고용허가제
김태규 기자  |  ssagazi@ntoday.co.kr

승인 2017.09.21  18:03:33

   
▲ 지난 8월 20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전국이주노동자 결의대회 <사진 출처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홈페이지>
이·퇴직하고 싶어도 사업주 허가 없으면 안 돼
이직 요청 땐 사업주가 교육비 반환 요구하기도

10년 간 네팔 이주노동자 36명 스스로 목숨 끊어
이주노조, 고용노동제 폐지· 노동허가제 도입 주장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해 결국 자살을 택하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이주노동자들의 얘기다.

대한민국 국민에겐 이직의 자유가 적용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는 고용허가제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기려면 사업주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그 횟수도 사실상 3차례로 제한돼 있어 이직은 쉽지 않은 선택지다. 사업주의 명백한 잘못이 있을 경우에는 횟수의 제한이 없지만, 이를 입증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고용기회 보호와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효율적 고용관리를 위해 이주노동자의 무분별한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을 중의 을’로 불리는 이주노동자가 악덕 사업주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고용허가제는 악법이 될 수밖에 없다.

   
▲ 네팔 이주노동자 케서브 스레스터씨의 유서 <사진 제공 = 청주네팔쉼터>
돈 벌러 왔다가 주검 돼 떠나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어도 안 됐습니다. 제 계좌에 320만원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달 7일, 충북 충주의 한 자동차부품 공장 기숙사 옥상에서 네팔 국적의 이주노동자 케서브 스레스터(27)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유서 내용이다. 그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지 1년 4개월 만에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는 아프지만 치료를 받지 못했고,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사업장 변경을 원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보인다.

청주네팔센터 대표 수니따(38)씨는 “12시간 주야 맞교대 근무에 적응하지 못해 불면증을 앓던 케서브 스레스터씨가 최근 회사에 사업장 변경을 요청하는 한편 네팔로 잠시 돌아가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용허가제로 인한 자살은 케서브 스레스터씨 뿐만이 아니다. 그가 숨진 날, 충남 홍성의 돼지 농장에서 일하던 다벅 싱(25)씨도 자살했다. 또 지난 6월에는 대구 달서구의 한 이불공장에서 일하던 케이시 사문드라(22)씨를 포함해 대구에서 2명, 경산에서 1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여름에만 네팔 노동자 5명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이처럼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잇따라 자살한 원인으로 고용허가제가 대두되고 있다.

경남이주민센터 김광호 상담실장은 “주한 네팔대사관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로 네팔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2007년부터 지금까지 36명이 자살했다”며 “집계되지 않은 다른 나라의 이주노동자 사례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을 것“이라 강조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 전에 고용허가제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경남이주민센터가 주한 네팔대사관으로부터 받은 통계자료 <자료제공 = 경남이주민센터>
노동자 발 묶는 ‘현대판 노예제’

이처럼 이주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 ‘현대판 노예제’로도 불리고 있는 고용허가제는 지난 2004년부터 시행됐으며 미등록이주민 감소, 인권 유린 등 산업연수생 제도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고용허가제는 순수 외국인을 고용하는 일반고용허가제와 외국국적 동포를 고용하는 특례고용허가제로 구분된다. 일반고용허가제의 경우 MOU를 체결해 E-9(비전문취업)비자로 입국하는 16개국(베트남, 필리핀, 태국, 몽골,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중국,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캄보디아, 네팔, 미얀마, 키르기즈스탄, 방글라데시, 동티모르, 라오스) 국적의 외국인만 취업이 가능하다.

특례고용허가제와 일반고용허가제는 대상에도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사업장 변경 제한이다. 특례고용허가제로 입국한 경우 사업장 변경에 제한이 없는 반면, 일반고용허가제로 입국한 경우 사업장 변경이 제한된다.

바로 이 사업장 변경 제한이 일반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이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3년간 최대 3번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만일 사업주가 원할 경우 취업기간을 1년 10개월을 연장할 수 있는데, 이 기간 동안 2번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사업장을 옮기거나 퇴직할 경우 사업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혹은 임금체불, 근로기준법 위반 등 사업주의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수니따씨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옮기려고 하면 사업주들이 ‘내가 너 데려올 때 400만원이나 들었으니 돈 가져오면 허락해주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로 입국할 경우 국내 취업활동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교육을 받는데, 이 교육비용을 고용주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 ⓒ게티이미지뱅크
재입국하려 부당 대우에도 대응 못 해

사업장을 쉽게 옮길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다. 바로 ‘성실근로자 제도’다. 성실근로자 제도는 4년 10개월 동안 한 번도 사업장을 옮기지 않은 이주노동자에 한해 본국에 돌아가서 3개월만 있으면 고용허가, 한국어능력시험 등 절차를 면제받고 바로 재입국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주노동자들은 이 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 사업주가 차별과 폭행, 임금체불, 퇴직금 미지급 등 불법행위를 해도 이에 항의하거나 대응하지 못한다. 근로조건 위반 등 사업주의 책임이 명확하다면 사업장을 옮겨도 성실근로자에 해당될 수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어가 서툰 경우가 많아 이를 제대로 입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를 이유로 지난 2012년 8월 유엔 인종차별 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고용허가제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 지난 8월 20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전국이주노동자 결의대회 <사진 출처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홈페이지>
잇따른 자살에도 개선 의지 약한 정부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한 통계, 예방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는 제도의 도입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만큼 이를 폐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외국인력담당관 관계자는 “고용허가제의 취지는 규모가 작고 열악해 인력난을 겪고 있는 사업장에 인력을 수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업장을 자유롭게 변경하도록 한다면 이주노동자들도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로 가려고 할 것이고, 내국인과 경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규모가 작아 열악한 사업장은 계속해서 인력난에 시달릴 것이고, 결국 제도의 취지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자체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고용부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해당국에서 한국으로 보낼 때 발생하는 송출 비리와 국내에서의 미등록이주민 비율 감소 등의 성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외국인근로자가 한국으로 들어올 때 필요한 비용인 송출비는 산업연수생제가 시행되던 2001년 1인당 3509달러(약 400만원)에서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인 2015년 942달러(약 100만원)로 크게 감소했고, 미등록이주민 비율은 2003년 80.0%에서 지난해 13.9%까지 낮아졌다는 것이다.

고용부는 사업장 변경 허용 사유도 ▲근로계약 만료 ▲근로계약 해지 ▲휴업 ▲폐업 ▲고용허가 취소 ▲고용 제한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사용자의 부당한 처우(최저임금 위반, 체불,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근로조건 저하) 등이 있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이 원천적으로 막힌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사업장변경의 사유가 문제가 된다면 이에 대해서는 전향적으로 검토를 하려고 생각은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1년 9월 고용허가제의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 금지 조항에 대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청구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헌재는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지만 기본권 주체성의 인정문제와 기본권 제한의 정도는 별개의 문제”라며 “외국인에게 직장 선택의 자유에 대한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곧바로 이들에게 우리 국민과 동일한 수준의 직장 선택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 지난 8월 20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전국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서 배포한 피켓 <사진 출처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홈페이지>
‘노동자 권리 보장’ 노동허가제 도입 한목소리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헌재 판결 당시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조합(이하 이주노조) 등 이주·인권단체들은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일하고 사업장 이전의 자유를 가지는 노동허가제를 실시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동허가제는 고용허가제가 논의되던 2002년 이주·노동계에서 고용허가제의 독소조항을 지적하며 제시한 방안으로 처음 입국할 때부터 4년 10개월을 취업기간으로 보장하고 노동자의 자유로운 사업장 변경과 노동권 보장을 골자로 하는 제도다.

하지만 이주·노동계의 요구사항은 아직도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이주노조, 민주노총 등은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이주노동자결의대회’를 갖고 고용허가제와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 등을 요구했다.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 권리가 없고, 성실근로자 제도로 한국에 재입국하려면 사업주 말을 잘 듣는 노동자가 돼야 한다”며 “열악한 근로 환경에도 버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노동 협약에 따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고용허가제의 폐지와 노동허가제의 도입을 주장했다.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고용허가제를 실시했지만 한국만큼 성공적으로 미등록이주민 비율을 감소시키지는 못했다. 때문에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모범사례’라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범사례의 뒤편엔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이 깔려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자살을 막지 못한다면 이주노동자들의 ‘코리안 드림’은 ‘악몽’이 되고 말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투데이신문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www.ntoday.co.kr)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