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 이정호 신부 “기계처럼 일하지만, 이주노동자도 사람”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이정호 남양주시 외국인복지센터 관장. 김재룡 제이콥스튜디오 제공

이정호 남양주시 외국인복지센터 관장. 김재룡 제이콥스튜디오 제공

“저는 그저 함께 어울려 놀았을 뿐인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네요.”

이정호 신부(60·남양주시 외국인복지센터 관장)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해온 지난 27년의 시간을 “이웃과 어울려 논 것뿐”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이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가구공단에서 ‘파더 콜롬바(이정호 신부의 세례명)’의 역할은 한둘이 아니었다. 떼인 임금을 받아주고 산재 처리를 도와주는 ‘해결사’도 됐다가, 이주노동자들과 그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기도, 때로는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생활을 꾸려가는 ‘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세계인권선언 69주년을 맞아 ‘2017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동백장) 수훈자로 이 신부를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의 인권 보호와 제도 개선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정작 이 신부는 수훈 소식에 “세월호 참사나 비정규노동자 문제 등 사회 곳곳에서 보이지 않게 헌신해온 분들이 많은데, 부족한 사람에게 맞지 않는 큰 상이 온 것 같다”면서 “개인에게 주는 훈장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이주민의 아픔도 끌어안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 같아 다행이고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센터는 영세 가구공장 수백 곳이 밀집해 있는 마석가구공단 초입에 있다. 이 신부가 마석에 터를 잡은 것은 이곳에 공단이 들어서기도 전인 1990년이다. 막 사제 서품을 받은 초임 신부로 성공회성당에서 사목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예전에는 이곳이 한센인 환자들의 정착마을이었어요. 연로한 한센인들을 섬기는 사목을 시작했다가, 이곳이 점차 공단으로 바뀌고 이주노동자들이 유입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함께하게 됐습니다.” 

현재 마석가구공단에는 700명 남짓의 이주노동자들이 체류하고 있다. 대부분 필리핀과 방글라데시, 네팔 국적으로 그들의 가족과 결혼이주여성까지 포함하면 이주민 숫자만 2000여명에 달한다. 이 중 대다수가 이른바 ‘불법 체류자’라 불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다. 긴 시간 동안 한센인들의 ‘친구’에서 이주민들의 ‘파더’로 함께하는 동안, 그가 일궈낸 성과는 많다. 공단 형성 시기, 이 신부가 맨손으로 이끌어온 이주민 쉼터 ‘샬롬의 집’은 2005년 남양주시의 지원을 받아 ‘외국인복지센터’로 자리 잡게 됐다. 그만큼 할 일도 많아졌다. 노동현장에서의 고충 처리는 물론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한국어 교실, 이주민 아동을 위한 복지와 보육시설까지 센터의 하루하루는 정신없이 돌아간다.

마석공단 이주민들과 함께해온 이 신부에게 고향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의 미래를 보듬는 것도 숙제다. 지난해 방글라데시에 친교센터를 설립하고 한국에서 강제추방돼 다친 몸과 마음을 갖고 고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과 지속적으로 끈을 이어가고 있다. 청소년 등으로 구성된 한국인 봉사단과 강제추방된 이주노동자들이 방글라데시 현지에서 만나, 함께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를 하고 그들이 한국에서 받았던 ‘아픈 상처’를 보듬는 일도 한다. 그는 지난해 1월 현지 친교센터 사무실을 찾았을 때 벽에 붙어 있던 ‘리멤버 0416’ 문구와 노란 리본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저 이주노동자를 ‘외국인’ ‘이방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 역시 한국인이 겪은 큰 아픔을 나누고 기억하고 있었어요. 세월호를 잊어선 안된다는 추방된 이주노동자의 말에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리면서도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이 신부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여건이나 기본권 문제가 시급하게 개선돼야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 역시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흔히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로 이주노동자들을 인식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원치 않는 위험하고 힘든 일들을 묵묵하게 하며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한 주체이자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합니다. 어느 가난한 나라에서 기계가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똑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 온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052156005&code=100100#csidx66c4ca85f9c5fdab24725d3debe2e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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