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주여성노동자를 죽였나…불법체류자 낙인이 불러온 비극
김태규 기자  |  ssagazi@ntoday.co.kr

승인 2017.11.24  08:47:54

   
▲ 추티마씨가 한국에 방문한 딸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제공 = 화성이주노동자쉼터>
18세에 돈 벌기 위해 한국 온 추티마씨 주검으로
한국인 상사, ‘불법체류자 단속’ 빌미로 유인·살해

추방 두려워 범죄 행위 위협에도 신고조차 못해
이주노동자 단체 “미등록 이주민 인권 보장돼야”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5일, 한 여성이 경북 영양군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경찰에 발견됐다. 경찰은 여성의 턱 등이 함몰된 것으로 미뤄 돌에 맞아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여성은 태국 국적의 이주민 추티마(29)씨였다.

추티마씨는 11년 전인 지난 2006년 18세의 나이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경기 안성시의 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에서 10년을 일한 추티마씨는 정식 고용허가제가 아닌 관광비자로 입국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소위 불법 체류자였다.

추티마씨는 야근을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온 1일 오전, 한국인 직장상사 김모(50)씨에게 전화를 받았다. 김씨는 “불법체류자 단속을 나온다고 하니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주겠다”고 했다. 경찰에 적발되면 본국으로 추방당할 수밖에 없는 추티마씨는 단속을 피해 김씨를 따라나섰다.

이로부터 나흘 뒤인 5일 새벽 3시경, 경찰은 경북 영양군의 야산에서 추티마씨의 사체를 발견했다. 전날 안성경찰서에 자수한 피의자 김씨는 범행과 추티마씨의 시신 위치를 자백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성폭행을 시도하다 피해자가 저항해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 추티마씨의 시신 앞에 선 아버지 삼릿씨 <사진제공 = 화성이주노동자쉼터>
피해자 父 “좋은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화성이주노동자쉼터에 따르면 추티마씨에겐 딸이 한 명 있다. 올해 13세인 추티마씨의 딸은 추티마씨가 한국에 온 뒤 단 두 번 엄마를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겠다고 한국에 온 추티마씨는 “딸을 부족함 없이 도와주고 싶다”며 귀국을 미루고 일하다 끝내 타지에서 목숨을 잃었다.

지난 1일부터 추티마씨와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하던 추티마씨의 아버지 삼릿(56)씨는 한국에 있는 추티마씨의 친구를 통해 추티마씨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9일 한국을 찾은 삼릿씨는 11일 추티마씨의 시신이 안치된 경북 영양으로 가 딸을 마주했다. 삼릿씨는 추티마씨의 시신을 태국으로 송환해 15일부터 3일간 장례를 치렀다.

추티마씨는 한국에서 가족을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하며 지냈다.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보통 160~18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추티마씨는 이중 110만원(3만바트) 정도를 매달 태국의 가족에게 송금했다. 그리고 남는 돈으로 집에 선물도 사 보내고, 본인 생활비로 사용했다고 한다.

삼릿씨가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 태국어 통역을 담당했던 화성이주노동자쉼터 한상훈 대표는 삼릿씨와 나눈 대화 중 “너무 가난해서 공부도 못 시키고…좋은 집에서 태어났다면 딸이 이렇게 됐겠느냐. 한국까지 와서 돈을 벌지도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 대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범죄의 타깃이 되기 쉽다”며 “이들은 피해를 당해도 ‘미등록’이라는 신분 때문에 신고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또 이주노동자들 스스로도 위축돼 있다. 한국에서 쫓겨날 것을 걱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추티마씨의 경우도 이런 맥락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등록 이주민이라고 하더라도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 등을 동일하게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체류 조건 완화와 그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가 급히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추티마씨의 장례식 현장 <사진제공 = 화성이주노동자쉼터>
“미등록 이주민, 피해 신고조차 할 수 없어”

현재 우리나라는 불법체류 단속에 적발된 외국인들을 무조건 추방하고 있다. 그러나 ‘통보의무면제’에 해당되는 몇몇 경우에는 추방을 유예하기도 한다.

출입국관리법 제84조 제1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에 해당하는 때’에 한해 통보의무(출입국관리법 위반자를 발견 즉시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에게 통보할 의무)를 면제하고 있다.

문제는 통보의무면제가 살인, 폭행, 과실치사, 성폭력 등 몇몇 경우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미등록 이주민들은 범죄수사 및 처벌이 끝나면 본국으로 강제 송환되지 않을까 염려해 범죄 피해를 입어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이주노동자단체는 미등록 이주민의 권리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산이주노동자센터의 이재영 상담팀장은 “미등록 이주민들은 피해를 당해도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라며 “이들은 늘 잠재적으로 공포심이나 두려움을 갖고 있다. 비자가 없는 이들은 폭행이나 성범죄 등을 당해도 관리자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어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등록 이주민들을 상대로 한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신분과 거주가 불안정한 이들은 취업알선 사기, 임금체불 등은 물론이고 성폭력, 폭행 등 온갖 범죄의 대상이 된다.

이 팀장은 “이주노동자들이 신고하지 못해서 그렇지 드러나는 일은 전체 사건의 1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상담 진행 결과 여성 이주노동자 2~3명 중 1명은 성추행·강간 등 성범죄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이 단속을 하면 미등록 이주민들이 피해를 입었을 때 갈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나. 경찰은 이들의 피해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단속 완화 등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태국 현지언론 <타이 랏>이 지난 7일 추티마씨 사망사건을 보도한 지면 <사진제공 = 화성이주노동자쉼터>
태국 현지 언론도 추티마씨의 사망사건을 주목했다. 지난 7일 추티마씨의 사망사건을 보도한 태국의 일간지 <타이 랏>은 9일 추티마씨의 사망사건을 후속보도하면서 “태국 여성이 한국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했다”며 “한국 정부는 태국 사람들이 가족의 생존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전했다.

1980년대 말부터 한국에 유입되기 시작한 이주노동자들은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3D업종의 인력난을 해결하는 등 분명히 우리 사회·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민들은 ‘불법체류자’라는 낙인 때문에 인권을 침해당해도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이들이 스스로 위축돼 신고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어 개선돼야 할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들은 체류 또는 취업에 있어 법을 위반하고 있지만, 위법이 인권보장까지 가로막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피해를 입어도 대응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약자 중의 약자인 셈이다. 미등록 이주민들이 이미 우리 사회의 일부를 구성하고 함께 살아가는 만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출처] 본 기사는 투데이신문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www.ntoday.co.kr)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