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자도 요양이 필요해

화상 산재 당한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치료·보험 사각지대…
체류 자격 없어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도 손봐야

제1189호
등록 : 2017-11-28 10:48 수정 : 2017-11-2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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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 피로르스(오른쪽 두 번째)와 김성진 포항이주노동자센터장(맨 오른쪽)이 복원 성형수술 비용에 관해 상담하고 있다. 2014년 12월15일 서울 한강수병원.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90일 미만 단기체류 외국인이 약 50만 명 수준이므로, 150만 명을 넘는 외국인이 취업·유학·결혼 등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한국에 장기 체류하고 있다. 이 가운데 노동시장에서 취업 활동이 가능한 체류 자격을 가진 외국인 수는 약 90만~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내국인보다 산재 발생률 6배 더 높아

일정 기간 내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려고 노력했는데도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 신규 인력 채용에 실패한 국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가 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서 관련 절차를 규정하는데 흔히 ‘고용허가제’라고 하는 비전문취업(E-9) 제도가 그것이다. 고용허가제로 외국인을 고용하는 중소기업들은 노동조건이 열악하고 장시간 저임금 구조가 고착된 영세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다보니,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발생률은 내국인 노동자보다 매우 높다. 올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문진국 의원실(자유한국당)이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산재보험에 가입한 내국인 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은 0.18%인 반면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은 1.16%로 6배 이상 높았다(2017년 5월 기준). 이는 외국인 노동자가 내국인 노동자보다 일터에서 6배 이상 더 많이 다친다는 뜻이다. 이 격차는 해마다 커지고 있다.

한국 작업장의 안전 수준은 전체적으로 높아지고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일터는 점점 더 위험해진다는 통계도 있다. 2012년과 2016년 한국에서 전체 사업장의 산업재해율은 각각 0.59%와 0.49%로 4년 만에 0.1%포인트 낮아졌다. 그러나 같은 기간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은 6.9%에서 7.4%로 오히려 0.5%포인트 늘어났다. 최근 5년 동안 산업재해를 입은 외국인 노동자 수는 총 3만3708명인데, 이 가운데 사망자는 511명이었다. 아직은 산업 현장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산재보험 처리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내국인보다 취약한 지위에 있는 외국인의 산업재해가 내국인보다 더 은폐되기 쉬운 사정을 보태 생각해보면 이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현재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는 산재보험이 전면 적용된다. 체류 자격 또는 취업 자격이 없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라도 일하다 다친 경우 산재보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대법원은 1994년 외국인이 사업장에서 작업 중 다쳤을 경우, 그 외국인이 출입국관리법상 취업 자격이 없다 해도 사용종속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온 근로자에 해당하는 경우 산재보상보험 대상에 해당된다는 법리를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근로복지공단도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도 산재보상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안내하고 있다.


그럼에도 체류 자격이 없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가 산재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넘어야 할 현실의 벽이 높다. 먼저, 체류·취업 자격이 없는 미등록 외국인은 스스로 존재가 드러나는 걸 극도로 꺼려 외부와 거의 교류하지 않고 한국어는 물론 한국의 법과 제도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상담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만나보면 산재보험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경우가 드물고, 체류 자격이 없어도 산재보험을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

설령 그 사실을 알아도 사업주의 회유가 이어진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가 산재 신청을 하면,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을 고용한 사업주는 벌금과 외국인력 고용제한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 사업주가 외국인 노동자의 치료비를 일부 부담해줄 테니 개인적으로 다친 것으로 하자며 산재 신청을 막는 이유다. 심한 경우 산재 신청을 하면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하겠다는 협박도 한다.

추가 요양 필요해도 추가 체류는 불가

사업주의 벽을 넘어서더라도, 현행 산재보험 신청 절차가 복잡해 외국인 노동자가 혼자 감당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현행 산재보험 제도는 발생한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사업주나 공단이 아닌 노동자가 모두 증명해야 하는 구조로 돼 있다. 산재로 승인되더라도 평균 30% 이상의 비급여 항목을 부담해야 한다. 무엇보다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은 기초 치료를 받는 동안엔 체류를 허가해주지만, 치료가 끝나면 바로 출국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특히 화상·절단 같은 재해는 최초 요양 뒤 추가 요양이 필요하거나 후유증 등 추가 질병이 생길 수 있지만, 이를 이유로 한국에 계속 체류할 수 없다. 체류 자격이 없는 상태로 한국을 떠나면 재입국하기 어려워 사실상 사후관리도 할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외국인에겐 산재보험에 따른 장해급여를 내국인처럼 ‘연금’이 아닌 특정 일수에 따른 ‘일시금’으로 주는데다, 손해배상금 산정 과정에서도 한국이 아닌 자국 현지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하루 실수입을 산정한다. 산재에 따른 충분한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산업재해를 당한 사람은 참을 수 없는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함께 겪는다. 무엇보다 화상은 기능장애를 가져오는 많은 합병증과 후유증(관절 구축, 말초신경장애, 절단 등)이 동반되는 중증질환이다.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 이뤄지는 치료 과정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연속이다. 치료가 끝나더라도 상처 부위에 심한 외형 후유증이 남는다. 환자들은 심리·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비급여 의료비도 높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발표한 ‘산재보험 비급여 의료비 실태조사’(2015)에 따르면 화상 재해는 의료비 비급여 비율이 22.3%다. 다른 상병과 달리 치료 과정에서 산재보험이 인정하지 않는 고가의 비급여 약제와 치료 재료가 많아 한 건당 평균 비급여 비용이 163만원이나 된다. 결국 화상 입은 외국인 노동자는 비급여 항목을 부담하기 어려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거나, 기초 치료 뒤 심리적 치료나 성형수술 등 2차 치료를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쫓겨나듯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최소 1년 예방관리 기간, 외국인도 적용해야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 화상 재해 관련 치료 중 비급여 항목을 줄여 경제적 형편이 넉넉지 못한 외국인도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지난 8월 말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화상 환자의 비급여 부담 완화를 위해 대한화상학회와 업무협약을 맺은 것은 긍정적 변화로 평가한다. 또한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더라도 요양 종결 뒤 합병증 등에 따른 추가 상병이나 재요양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체류 기간을 늘려줄 필요가 있다. 현행 ‘산재노동자의 합병증 등 예방관리업무 처리규정’에서는 3도 화상 또는 피부이식술 이후 관절 구축 또는 피부 손상이 발생한 경우 최소 1년(필요시 연장 가능)의 예방관리 기간이 필요하다고 정하고 있다. 이 규정이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조영관 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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