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양 한인 1만9천명 이상이 무국적자 
입양 확인되면 한국에선 국적 박탈
미국에서의 운명은 양부모에 달려
허술한 정책, 한미 양국의 합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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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중앙일보]    발행 2017/11/29 미주판 3면    기사입력 2017/11/28 15:19

1950년대 홀트씨양자회가 마련한 전세기를 타고 미국으로 이동하는 입양 대상 아동들. (국가기록원, 홀트아동복지회 기증 기록물)
1950년대 홀트씨양자회가 마련한 전세기를 타고 미국으로 이동하는 입양 대상 아동들. (국가기록원, 홀트아동복지회 기증 기록물)
홀트는 1956년부터 61년까지 26편의 전세기로 2천여 명의 아동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시켰다. 인류가 한번도 보지 못한 입양 형식이었으나, 그는 한국까지 와서 입양해 갈 돈과 시간이 있는 양부모는 거의 없으니, 이런 방식의 ‘대리입양’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미국 입국을 위한 비자 쿼터 확보하기가 최대 난제였다. 미국은 유럽 위주로 국가별 쿼터를 배정하여 이민자 수와 비율을 조정하는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2차 대전 이후 숫자로 통제하는 쿼터제가 이민자격을 규정하는 제도로 전환하면서, 1961년 이민법(INA)에 ‘고아’ (orphan)라는 이민자격이 등장하였다. 미국 시민이 입양 목적으로 입국 신청할 수 있는 외국인 미성년자를 말한다. 친부모가 모두 죽은 경우 뿐 아니라, 실종, 유기, 분리 등 한 부모가 아동을 포기한 경우까지 폭넓고 유연하게 적용되었다. 

“미국 이민법에는 앰네스티가 없다”고 한다. 첫 입국시의 도큐먼트가 불법이었다면, 이후 어떠한 사정으로도 치유되지 못한다. 이런 이민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왜 외국인 고아의 입국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못해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 왔을까. 그 배경에는 미국내 입양수요의 급속한 증가와 그 수요를 미국 아동으로 채우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 

이민법 고아조항은 이 아동의 미국 입양으로 그 ‘친’부모가 미국 입국이나 이민자격을 추구할 수 없다는 조항을 동반하고 있었다. 즉, 아이만 예외적으로 수월하게 미국으로 이주시키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미 국무부 장관의 아동이슈 관련 특별보좌관은 주요 송출국을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매우 외교적인 언어로 이 나라 고아원에 있는 아동들을 미국으로 보내주면 훌륭하게 양육하겠다고 홍보한다. 

외국인 고아들이 받는 IR-4 비자의 실체는 이런 미국의 레토릭과 달리 입양되는 아동의 입장에서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양부모와 입양기관의 편의를 극대화하여, 양부모가 아동을 한번 보지도 않고, 방문하지 않아도 미국 공항에서 아동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아동은 미국으로 홀로 이주하며, 한국 내에서는 입양에 대한 어떠한 사법적 절차도 이뤄지지 않았다. 양부모의 입양 의사를 제외하면, 소위 ‘unaccompanied minor alien’(보호자 없이 발견된 외국 아동)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부모 기록이 전혀 없는 고아호적, 유효기간 6개월짜리 한국 여권, IR-4 비자를 가지고 미국에 입국하면 10년간 유효한 영주권을 받는다. 이후 입양 재판 확정과 시민권 취득은 전적으로 양부모의 의사에 달려있다. 

미국에서 입양이 확정되고, 시민권이 취득되면, 한국 법무부는 직권으로 아동의 한국 국적을 박탈한다. 시민권 취득 여부는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지만, 국적 박탈은 면밀하고 차질없이 집행했다. 

대한민국 법무부가 1954년 제1호로 관보에 고시한 내용이 바로 미국으로 입양된 사람의 국적 박탈이었다. 그 이래로 국적이 박탈된 입양아동 명단은 대한민국 관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중국, 베트남도 자국 아동을 IR-4 절차로 내보내지는 않았다. 

적어도 입양절차는 자국 내에서 마무리하여 최소한의 안전망은 줄 수 있는 IR-3 절차로 내보낸다. 미국에 입양된 줄 알았건만, 시민권도 없는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규모가 1만 9천명 혹은 그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제대로 된 실태조차 모른다. 세계적 경제대국 한국과 미국 사이에 벌어진 이 믿기 어려운 상황은 65년간 이렇게 허술한 입양정책을 설계하고 운영해온 양국 정부의 합작품이다. 

※이경은 박사가 본지 기고에 앞서 한국의 인터넷신문인 프레시안 기자들과 함께 공동취재해 기사화한 ‘한국 해외입양 65년’이 올해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올해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수상작은 ▲경향신문 ‘혐오를 넘어’ ▲뉴스타파 <공범자들> ▲EBS 다큐프라임 ‘2017 시대탐구 청년’ ▲KBS스페셜 ‘전쟁과 여성’ ▲프레시안 ‘한국 해외입양 65년’ 연속보도 ▲한겨레21 ‘난민과 이주노동자를 향한 우리 안의 시선’ 등이다. 특별상은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관점으로 재현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 돌아갔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5일 오후 2시 서울의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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