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내 이주민의 권리 보장: 동향과 쟁점1)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출처: 참여연대

 

한국사회의 이주민

 

오랫동안 단일민족의 신화를 간직해 온 한국사회가 최근 ‘다문화사회’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동질적 문화를 가진 사회에서 이질적 문화를 아우르는 다문화사회로 바뀐 직접적 원인은 이주민의 유입에서 찾을 수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들어 왔고, 1990년대 초부터는 결혼이민자가 그 대열에 합류하였으며, 2000년 이후에는 외국인유학생의 수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이 땅에 존재해 왔던 화교 이외에 다양한 이주민 집단이 늘어나면서 한국사회는 다문화사회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2015년 11월 기준 한국사회에 머무르고 있는 이민자 수는 151.3만 명으로, 총인구 5,106.9만 명의 3.0%에 달한다. 한국의 이민자 중 가장 수가 많은 집단은 이주노동자로, 2015년 그 수는 71.8만 명이었다. 취업사증을 가진 이주노동자 수가 57.3만 명, 단기 사증 서류미비자 수가 14.5만 명이었다. 취업사증 이주노동자 중에도 체류기간 초과자가 포함되어 있어, 한국의 서류미비자 수는 20만 명을 초과한다. 이주노동자의 95%는 저숙련 노동자이고, 5%는 전문직 종사자다. 저숙련노동자는 국내 중소 제조업체, 건설현장, 농장, 양식장 및 어선 등에서 일하고 있고, 전문직 종사자는 회화지도, 산업체의 특정활동, 예술흥행, 연구, 교수 등의 직종에서 일한다.

 

한국에는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23.8만 명에 달하는 국제결혼 이민자가 있다. 2015년에는 외국 국적 결혼이민자 14.5만 명, 혼인귀화자 9.3만 명이 체류하고 있었다. 1990년 이후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 간 국제결혼이 크게 늘면서, 국제결혼이민자 수도 급속히 증가하였다. 2015년 외국인유학생 수는 8.2만 명이었다. 한국정부는 외국인 유학생 정책을 교육정책으로서 뿐 아니라 ‘우수 외국인력 유치 지원’과 ‘유학생들의 한국사회 적응 지원’이라는 숙련 노동력 유치 정책과 이민자 통합 정책과 관련지어 그 위상을 설정하고 있다.

 

아울러,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소지한 외국인 수가 21.6만 명, 기타 합법체류 외국인 수가 20.2만 명이었다. ‘재외동포’ 체류자격은 체류기간 상한이 2년이고, 원칙적으로 연장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단순 노무활동 및 사행행위 등을 제외하고는 국내에서의 모든 취업활동이 허용하는 것으로, 소정 요건을 갖춘 외국국적동포에게만 발급된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재외동포 체류자격은 선진국 출신에게만 주로 발급되었으나, 이명박 정부 이후 그 문호가 점점 개방되어 중국 조선족과 구소련 고려인에게도 발급되고 있다. 저숙련 직종에 종사하는 외국국적동포에게는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곧장 발급하는 게 아니라 국내 노동시장 마찰 방지를 위한 의무 취업 요건을 부과한 후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발급하는 제도는 동포 간 차별을 조장하는 제도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기타 합법체류자 중에는 영주자의 비중이 높다. 2003년 영주 체류자격제도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에는, 대만인(華僑)이 99%를 넘었으나, 2010년부터 외국국적동포의 영주 체류자격 취득을 허용하면서 조선족과 중국인의 비율이 급격히 상승하여, 이제는 조선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중국인, 대만인의 순으로 바뀌었다.

 

이민자 수의 증가와 더불어 그들의 미성년 자녀 수도 급격히 늘었다. 2015년 총인구 중에서 이민자와 그 자녀가 차지하는 비율은 3.4%였다. 이민자 자녀 중 압도적 다수는 결혼이민자·혼인귀화자의 자녀다. 한국정부는 다문화가족을 위한 가족교육, 상담, 문화 프로그램 등 서비스 제공을 통해 결혼이민자가 한국사회에 조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다문화가족이 안정적인 가족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권리 보장

한국 내에 자리 잡은 ‘국민국가 성원자격’의 위계에서 이주노동자가 가장 아래쪽에 머무르고 있다(Seol and Seo, 2014)는 점은 한국인의 자기 성찰을 요구한다. 2004년 외국인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이주노동자에 가해지던 야만적 폭력과 착취는 크게 줄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사회적 권리는 여전히 미약하다. 외국인 고용허가제에 대해 “외국인 인신매매” 또는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이 있기는 하나, ‘과도한 평가절하’라고 본다. 그렇지만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사회 성원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에서는 이주노동자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영역을 건강권과 가족동반권의 두 부분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건강과 안전

“저승사자를 등에 업고 일하는 것과 같다.”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위험한 작업환경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그들의 작업환경을 묘사하는 3D가 “어렵고”(difficult) “지저분하며”(dirty) “위험한”(dangerous) 작업장을 뜻한다는 데서 그 점은 충분히 입증된다. 한국인들이 그 작업장을 기피하는 것은 임금수준이 낮고 사회적 인식수준도 낮을 뿐 아니라, 노동능력의 상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곳이기 때문인데, 그 곳에서 한국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취업하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작업장의 유해환경 노출 정도를 2017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진동’(30.5%), ‘심한 소음’(26.2%), ‘고온’(23.8%), ‘분진 흡입’(27.9%) 등에 “근무시간 내내 노출되어 있다”(설동훈·고재훈, 2017). 이주노동자의 유해환경 노출정도는 그들의 체류자격의 합법 여부와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합법체류 이주노동자든, 서류미비 이주노동자든, 국내 이주노동자들은 3D 직종에 종사한다.

 

3D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재해와 직업병에 노출될 위험이 상존한다. 작업장에서 이주노동자 한두 명이 다치는 사고는 거의 매일, 그것도 여러 건 발생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 와서 작업장에 배치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신참 이주노동자’가 종종 산업재해의 피해자가 된다.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계 작동법도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은 이것저것 만져보면서 기계를 작동하다가 실수로 다치는 사례가 많다. 제조업체뿐 아니라 건설현장이나 식당 주방 등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도 산업재해라는 재앙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전 업종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한다.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안전을 위해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물론이고, 회사에서도 사고 발생을 경고해주는 센서를 설치하고, 위험 상황이 닥칠 경우 노동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기계작동을 즉시 멈출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주노동자 취업 교육 때 산업안전과 산업재해 예방 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정부에서도 기업에 안전사고 예방 교육을 지속적으로 시키는 등 행정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이주노동자에게 산업안전수첩이나, 각국 언어로 된 포스터나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사고예방을 위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함은 두 말의 여지가 없다.

 

가족동반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후 정부는 ‘재입국 희망자 특별한국어시험 제도’ 또는 ‘성실근로자 재입국제도’ 등을 통해 체류기간을 계속 늘려와, 이제는 9년8개월까지 체류한 이주노동자가 생겨났다. 이처럼 이주노동자의 취업기간이 장기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족을 동반하여 한국에서 같이 생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하여, 국민이 가족생활을 유지할 권리와 국가가 그것을 보장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헌법은 모든 인간이 누리는 보편적 권리와 대한민국 국민만 누리는 배타적 특권을 구분하고 있지는 않으나, 가족생활을 유지할 권리를 대한민국 국민의 특권으로 해석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본다. 그러한 점에서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그것도 장기간 취업하는 이주노동자의 가족생활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한국정부가 이주노동자에게 가족동반권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정착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그토록 장기간에 걸쳐 단신 취업만 허용하는 논거로는 너무 빈약하다고 본다. 더구나, 2017년에는 9년8개월 체류한 이주노동자 중에서 다시 4년10개월 취업을 시도하는 사람이 수천 명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성실근로자 재취업 만료자’는 재취업 회수가 한 차례로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만약 그가 40세 미만이면 특별한국어시험을 치러 합격하면 세 번째 취업이 가능하다. ‘특별한국어시험 합격자’는 18세 이상 40세 미만이면 회수 제한 없이 다시 취업할 수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017년에는 특별한국어능력시험을 시행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러한 정책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므로, ‘고용허가제의 외국인근로자 재입국 제도’를 통해 취업하였던 이주노동자 중에서 14년6개월까지 체류가 가능한 사람들이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

 

장기취업 이주노동자의 가족동반권은 그들의 인권, 즉 ‘가족생활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단기체류자에 한해 가족동반권을 제약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어느 정도 고려 가능한 선택지일 수 있겠으나, 장기체류자의 경우 그 사정은 다르다. 대한민국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이 사안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이주노동자의 취업기간과 가족동반권에 대한 진지한 토의를 하여 신속히 결정하여야 한다. 그 때 비국민(외국인+무국적자)에게 허용되는 사회적 시민권의 영역이 꾸준히 확장되어 왔음을 반드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결혼이민자의 권리 보장

가정폭력 예방

결혼이민자가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사람이 많고, 그 중에는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2010년 7월 부산에서 한 베트남 여성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한국인 남편에게 구타당한 후 흉기로 피살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숨진 여성은 남편의 정신질환을 전혀 알지 못했다. 국제결혼중개업자가 그 남편의 정신 병력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비극은 국제결혼중개업자가 결혼희망자에 대한 검증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하는, 기존 국제결혼중개 방식의 제도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국제결혼중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을 걸러내는 실효성 있는 장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결혼 당사자의 신상정보조차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은 게 문제의 근원이었다. 국회는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을 네 차례에 걸쳐 개정하여, 그 규제 수준을 점점 높여 왔다.

 

정부의 국제결혼 규제가 강화되었지만, 결혼이민자의 인권 침해 사례는 계속 이어졌다. 특히, 2014년에는 7명의 여성 결혼이민자가 남편이나 주변 남성에 의하여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월에는 강원도 홍천과 경상남도 양산에서 베트남 출신 여성들이 각각 남편에 의하여 목 졸려 살해되었고, 7월에는 전라남도 곡성에서 남편이 베트남 출신 여성을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8월에는 충청남도 천안에서 임신 7개월의 캄보디아 출신 여성이 보험금을 노린 남편에 의해 교통사고로 위장되어 피살되었다. 11월에는 경기도 수원에서 중국동포 여성이 사실혼관계에 있던 동거남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고, 제주도에서도 베트남 여성이 불임(不姙) 등의 이유로 이혼 당한 후 불법체류하다 사귄 한국인 남성에게 목이 졸려 피살당했다. 12월에는 경북 청도에서 베트남 출신 여성이 남편에 의해 피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들이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제결혼중개를 적절한 형태로 관리하는 게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가족해체 대책

국제결혼 부부의 높은 이혼율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국제결혼 부부의 이혼건수는 2000년 1498건에서 2012년 1만 887건으로 7.7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반 한국인 부부의 이혼건수가 11만 7957건에서 10만 3429건으로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같은 시기 국제결혼 건수도 크게 증가했다. 국제결혼 건수는 2000년 1만 1605건에서 2012년에는 2만 8325건으로, 12년 동안 2.4배 늘었다.

 

한국남성과 외국여성의 결혼 건수는 같은 기간 6945건에서 2만 637건으로 3.0배 증가하였고, 한국여성과 외국남성의 결혼건수는 4660건에서 7688건으로 1.7배 늘었다. 그렇지만 이혼 건수의 증가율 7.7배는 국제결혼 건수의 증가율 2.4배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국제결혼 부부의 연령 차이는 2000년 6.9세에서 2010년에는 12.1세로 확대되었다. 부부 간 연령 차이가 확대된 것은 이혼율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10년 기준, 국제결혼 부부의 평균 결혼 생활 지속 기간은 3.2년으로, 일반 한국인 부부의 14.0년에 비해 현저히 짧았다. 결혼 초기의 불화를 해소하지 못한 채 이혼으로 치닫는 국제결혼 부부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이혼으로 인한 가족 해체는 당사자와 자녀에게 정서적·경제적 고통을 준다. 기존 연구 성과에 따르면, 사람들의 이혼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배우자의 사별로 인한 스트레스보다 더 크다. 이혼한 부부는 물론이고 그 자녀들까지 가족 해체로 인해 극심한 정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해체된 다문화가족은 대다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혼 가족의 94.5%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거생활이 불안정해, 전세·월세를 사는 이혼 가족의 비율은 일반가족보다 2배 정도 높다.

 

이혼한 결혼이민자는 취업조건, 건강 수준 등에서도 열악하고, 차별대우를 경험한 비율도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결혼이민자의 사정은 더욱 어렵다. 그들은 한국사회의 주요 복지수혜 계층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혼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핵심은 부부 간 의사소통의 부재다. 여기서 의사소통은 ‘언어’를 매개로 하는 것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소통은 언어는 물론이고, 다양한 형태의 몸짓을 통해 마음을 공유하는 행위를 뜻한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국제결혼 부부들은 언어가 잘 통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을 여러 가지 형태로 공유한다. 물론, 그 가정의 결혼이민자는 한국어도 쉽게 익힌다.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는 일반 한국인 부부의 이혼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사소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는 결혼이민자의 한국사회 적응을 고취해, 국제결혼 부부의 이혼율을 낮추려는 의도에서 ‘한국어 교육’을 강조하지만, 그 효과는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표본조사 자료를 분석해보면, 결혼이민자의 한국어 능력이 높을수록 이혼 의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설동훈·이계승, 2011). 이러한 역설은 ‘의사소통’이 한국어로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만 설명될 수 있다.

 

국제결혼 부부는 ‘협의 이혼’보다는 ‘재판을 통해 이혼’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김용현 서울가정법원장은 2011년 5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이혼 소송 가운데 여성 결혼이민자 등 외국인이 당사자인 사건이 전체 가사소송의 40%에 이른다.”고 밝혔다(서울신문, 2011·5·2). 이혼으로 인한 가족해체뿐 아니라 본인 또는 배우자의 가출로 인하여 가족해체를 겪기도 한다. 가족해체가 생길 경우 결혼이민자들은 국내 체류자격을 확보하는 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하여, 결혼이민자들은 체류자격 확보를 위해 법원의 조정에 의한 해결을 꺼리고 판결로 한국인 배우자의 잘못을 인정받기를 희망하는 사례가 많다. 소송이 계속 중이면 국내에 체류하는데 유리하다는 인식하에 여러 재판을 형태만 바꾸어서 계속 진행하는 경우가 있고, 재판을 고의적으로 지연하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으며, 동일한 내용으로 또다시 재판을 진행하여 기판력에 저촉된다는 판단을 받은 사례가 늘어나는 등 소송남용 문제도 발생한다.

 

 

이주민 자녀의 권리 보장

양육

젖먹이 아이들이 종종 부모 없이 본국으로 혼자 돌아가기도 한다. 이주노동자 부모들이 본국으로 아동을 보내는 것은 아이의 어머니가 자녀를 돌보느라 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자녀 출생신고 기간인 한 달 이내에 본국으로 보내면 외국인등록 절차와 범칙금을 부과 받지 않은 채 출국이 허용된다. 이러한 법률적 절차와 범칙금 및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상당수 이주노동자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를 신생아 때 본국으로 보내 가족이나 친척에게 아이의 양육을 위탁한다. 한국에 와서 결혼한 이주노동자 부부는 각자 자신들이 입국하면서 지출한 경비를 갚아야 하거나 본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을 해야 하므로 일을 쉴 수가 없어서 자녀를 본국의 가족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어린이집에 보낸다 해도 밤 9시 넘을 때까지 부모의 잔업·야근이 이어지는데 아이를 봐줄 이도 비용도 없어서다(박수지·임세연, 2017).

 

합법체류 이주노동자 가족의 경우 건강보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서류미비 이주노동자 가족의 경우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건강보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그들은 몸이 아프면 참거나 매우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병원진료를 받아야 한다. 가벼운 감기에 걸려도 2만원 가까이 든다. 또한 시군구에서 제공하는 건강 상담이나 건강증진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으며, 응급 상황 시에도 119 서비스를 이용하기 쉽지 않다. 당연히 그 자녀들도 건강보험 서비스를 이용 할 수 없다. ‘아동권리협약’ 제24조, 제25조는 아동 건강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당사국은 아동이 최상의 건강 수준을 유지할 권리와 질병치료 및 건강회복을 위한 시설을 이용할 권리를 인정하며, 이와 관련해 보건의료서비스 이용에 관한 아동의 권리가 침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서류미비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건강보험의 혜택에서 배제되어 있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홍규호, 2016).

 

미취학 아동은 어린이집·유치원·학원 등에서 낮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고, 취학 아동·청소년은 학교에 등교한다. 아이들은 부모님과는 별도로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낮 시간에 자녀를 돌볼 수 없는 부모가 자녀와 쉽게 연락하기 위한 방법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때로 어린 동생을 돌보기도 한다. 부모가 일찍 출근한 경우 취학 아동·청소년은 알아서 아침을 챙겨 먹고 등교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서 지각하는 학생들도 있고, 동생이 있는 경우 동생을 돌봐야 해서 결석을 하기도 한다. 몇몇 아이는 부모 몰래 등교하지 않고 동네 놀이터에서 놀기도 한다.

 

방과 후 취학 아동·청소년의 생활은 한국 학생들과 비슷하다. 사교육을 위해 학원을 다니거나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고, 집이나 PC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한다. 한국 친구들과 함께 놀기도 하나 주위에 모국인 친구들이 있으면 주로 함께 어울린다. 아동·청소년은 부모가 일터에서 돌아오는 저녁시간이면 부모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주로 TV를 보면서 저녁시간을 보낸다. 부모가 저녁시간까지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주노동자 자녀들 중 부모의 퇴근이 늦을 경우 자신들이 저녁식사를 준비해서 먹는다. 아이들은 주말과 휴일에 부모와 함께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거나, 장을 보고, 종교 활동을 한다.

 

교육

이주민 자녀들은 부모의 체류자격의 합법성 여부와 상관없이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국내에서 생활하는 모든 아동·청소년은 그들의 국적·체류자격에 관계없이 ‘아동권리협약’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받을 기회를 부여받아야 한다. 교육부에서도 지침을 통해 초중학교 취업이 가능함을 각급 학교에 알리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주노동자 자녀가 “왜 하필이면 우리학교에 왔는가. 이웃학교에 가 봐라.”는 식의 “뺑뺑이 돌리기” 식의 수용 기피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선진국 출신 외국인 아동·청소년은 대부분 외국인학교·국제학교에 다니고 있고, 일부 일반학교에 다니더라도 취학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개발국 출신, 특히 서류미비 이주노동자 자녀의 경우 종종 “뺑뺑이 돌리기” 식의 수용 기피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외국인 아동·청소년이 제도권 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학습권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학교나 사회에 외국인 아동·청소년을 위한 기본적 언어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도적으로 학교만 개방할 것이 아니라, ‘아동권리협약’에 근거해 국가가 외국인 아동·청소년에게 한국어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후견 교사를 붙여주는 등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국제결혼가족 자녀는 학교 취학에 어려움이 전혀 없지만, 일반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학업중단률과 낮은 학업성취도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학업중단률이 높은 이유로는 가정형편이나 친구·선생님 관계와 더불어, 중도입국 자녀의 한국어 미숙 등으로 인한 학습부진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즉, 복합적인 사유로 발생하는 다문화학생의 학업중단에 대해서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다문화학생들의 높은 학업중단률과 낮은 학업성취도는 그들의 인적자본 축적의 기회를 상실케 함으로써 빈곤의 악순환에 빠질 우려를 낳고 있다.

 

 

이주민 차별 시정과 차별금지법 제정

한국인이 외국인·이민자를 대하는 태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인 중에는 외국인·이민자의 겉모습을 근거로 선진국과 저개발국, 백인과 유색인, 전문직과 생산직 종사자, 부유층과 빈곤층 등으로 사람을 구분해 달리 처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국적·인종·민족·장애 등을 근거로 한 차별이 만연한 사회는 문명이 아니라 야만이다. 정부가 다문화사회 건설을 외치고, 언론에서 세계시민의 자세를 아무리 강조해도 시민의 마음가짐이 바뀌지 않으면 선진사회 구현은 불가능하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의 의식과 태도를 바꾸는 가장 효과적 방법 중 하나는 강력한 제재 조치를 겸비한 법률을 시행하는 것이다.

 

인종차별금지법이 아니라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그런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차별을 초래하는 고정관념·편견의 근저에 인종·종족뿐 아니라 사회계층·직업·빈부·출신국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으므로, ‘인종’차별금지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외모 또는 출신을 근거로 모욕을 하거나 ‘개인 업소’ 출입을 거부하는 행위 등을 규제할 수 있어야 야만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국회는 2007년, 2010년, 2012년의 세 차례에 걸쳐 ‘차별금지법’ 제정을 시도하였으나, ‘동성애차별금지법반대 국민연합’ 등 보수 개신교 세력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모두 좌절되었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운동을 펼쳤던 인사들 중 몇몇은 동성애뿐 아니라 반이슬람을 내세우며 반다문화 운동까지 전개하기도 하였다. 2016년 4월 13일의 국회의원총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20대 국회에서는 아직까지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조차 없다는 점이 아쉽다.

 

차별금지법은 사회적 소수자가 취업, 교육, 재화·서비스의 이용 등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받지 않고 피해 발생 시 구제 받을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다. 그것은 사회적 소수자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로,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를 확보하는 초석 중 하나라는 점에서 반드시 제정하여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도 갈 길은 멀다. 근로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로기준법’이 있어도 사업장에서 노동권 침해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사회의 근본 토양이 바뀌지 않으면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도 차별은 여전히 만연할 수밖에 없다. ‘경제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한국사회가 ‘사회적 다양성이 존중돼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살기 좋은 나라’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소수자 존중’이 시민의 기본자세로 자리 잡아야 한다. ‘우리끼리만 사는 폐쇄적 공동체’에서 배양된 태도를 과감히 버리고, ‘외국인·이민자와 더불어 사는 열린 공동체’에 걸맞은 시민윤리를 정립해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것만이 한국사회가 발전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1) 이 글은 제8회 제주인권회의 발표논문 “한국의 이주민 인권과 인권운동의 과제”(라마다프라자 제주호텔, 2017년 6월 30일)의 분량을 줄여서 수정·보완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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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훈·고재훈 (2017) 2017년 외국인근로자 근무환경 실태 조사. 한국산업인력공단.

설동훈·이계승 (2011) “여성 결혼이민자 부부의 결혼 만족도와 이혼 의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분석.” ≪지역사회학≫ 13(1): 117-147.

홍규호 (2016) “이주노동자가족 인권실태와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방안.” ≪월간 복지동향≫ 209: 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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