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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법 개정안’ 회의록으로 살펴본 문제적 장면 12가지

등록 :2018-06-03 10:46수정 :2018-06-04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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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개정안 의결해 본회의에 올린 환경노동위원회 회의
“도시락 먹고 깜빡 조느라” 의견 조율 못 하고 
460만명에 적용되는 법률안은 30분 만에 ‘뚝딱’ 만들어
지난달 25일 국회 환노위 소속 의원들이 고용노동소위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의결한 뒤 찍은 사진을 놓고 일부 누리꾼들이 ‘최저임금 삭감 기념사진’이라는 제목으로 공유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지난달 25일 국회 환노위 소속 의원들이 고용노동소위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의결한 뒤 찍은 사진을 놓고 일부 누리꾼들이 ‘최저임금 삭감 기념사진’이라는 제목으로 공유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지난달 28일 매달 1회 이상 지급되는 정기 상여금과 식대·교통비·숙박비 등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새로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국회의원 찬성 160, 반대 24, 기권 14표로 법안이 가결되자 누리꾼들은 노동자의 실질적인 임금수준을 떨어뜨리는 이번 개정안에 거센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국회 본회의가 열리기 직전인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논의해 의결한 국회 고용노동소위원회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내년부터 저임금 노동자 21만6000여명(고용노동부 발표)의 지갑을 더 가볍게 만드는, 지갑이 가벼워지는 노동자가 매년 더 늘어나게 만들기도 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어떤 논의 과정을 거친 걸까요? <한겨레>는 제3·4차 환경노동위원회 회의록(고용노동소위원회)을 통해 당시 의원들의 ‘문제적’ 발언과 논의 과정을 들여다보겠습니다.

■ 2018년 5월24일 밤 10시5분에 열린 3차 회의

1. 국회 4개 교섭단체 간사가 고용노동소위가 열리기 전 의견 조율을 못했던 이유

-고용노동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제가 이정미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 간사님께 연락을 드렸어야 되는데 8시까지 환경 관련돼서 소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늦어짐에 따라서 우리가 오늘 9시에 하기로 했던 것이 10시로 됐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정미 간사님께 제가 연락을 한다는 걸 깜빡했어요. 그리고 제가 도시락 먹고 깜빡 졸았습니다. 조는 바람에 연락 못 드렸고 아까 연락 오셔서 제가 다시 전화 드렸는데……”

▶임이자 의원(자유한국당)의 이 발언에 앞서 서형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날 “4개 교섭단체(정당) 간사님들이 다 모여서 (최저임금법) 산입범위에 대한 하나의 의견을 모아 논의를 시작”하길 바랐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회의에 참여한 각 정당 간사들은 ‘의견 조율을 못했다’는 답변을 내놓습니다. 저임금 노동자 460만명(노동계 추산)의 삶을 흔들 법안 심사를 앞두고 “도시락 먹고 깜빡 조느라” 의견 조율할 시간을 놓쳤다는 임의자 의원의 해명은 국민들에게 허탈감과 분노를 안겨줍니다.

2.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이용득 위원(더불어민주당)

“그 다음에 아까 이정미 위원님이 민주당을 얘기하셨는데 민주당이 당론으로 결정한 것도 아니고 지금 일부 위원이, 극히 일부 위원이 얘기를 하고 진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민주당 오늘 의총에서도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첫 번째는 이때까지 최저임금 인상률은 최임위(6월 열리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했지만 최임위에서 가산 임금 되는 것을 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정부에서, 고용노동부에서 항상 시행규칙으로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꼭 국회에서 자꾸 하려고 하는 이유가 뭔지, 그것도 5월 내에, 거기에 대해서도 제가 문제 제기를 했는데 다른 민주당 의원들 다 맞다, 더군다나 우리 정치조직이니까 큰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 당론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얘기가 대다수였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민주당이’ 또는 ‘민주당 위원들이’ 이런 표현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애초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당론 법안’으로 정해 입법의 무게를 더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24일 이 고용노동소위에 앞서 열린 당내 의원총회에서 ‘사안이 복잡해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는 데다 의원들 다수가 자리를 뜨면서 의결 정족수가 확보되지 않아 당론 채택이 무산됐습니다. “극히 일부 위원이 얘기를 하고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는 이용득 의원의 말은 이날 의원총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결국 지난달 28일 열린 본회의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가운데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76명,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2명, 기권한 의원은 12명으로 의견이 갈렸습니다.

당론으로 의견이 모이지도 않은 법안 통과에 더불어민주당은 뭐가 그리 급했던 것일까요. 혹시 올해 1월부터 16.4% 오른 최저임금에 화가 나 있던 ‘사장님’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선거를 앞두고 법 개정을 서둘렀던 건 아니었을까요?

3. 바른미래당 김삼화 의원이 최저임금에 숙박비를 산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

-김삼화 위원(바른미래당)

“숙식비와 관련해서도 외국인 노동자하고 내국인 노동자 사이의 역차별 문제를 그동안 많이 언급을 해 왔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숙식비가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음으로 인해서 내국인 노동자에 비해서 외국인 노동자가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문제, 그리고 많은 부분이 외국으로 송금되면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부 시책하고는 이게 안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고요. 그리고 지금 외국인 노동자 같은 경우는 대부분 사업주가 숙소를 제공하고 그 부담을 거의 한 85% 이상이 100% 부담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일하기 위해 찾아온 이주 노동자들의 숙박 실태는 심각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 이주노동자 3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조업 분야 여성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남녀가 분리되지 않은 숙소·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등 성희롱·성폭력이 취약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의 33.3%는 ‘남·여 화장실이 구분돼 있지 않다’고 답했고, 24.3%는 ‘남·여 숙소가 분리돼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상당수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잠금장치가 없는 숙소·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관련 기사 : 여성 이주노동자 4명 중 1명 “남녀 숙소 구분 안돼 있어”)

게다가 이미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3월부터 ‘외국인 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서면 동의를 전제로, 숙식비를 월 통상임금에서 최대 20%까지 사전 공제할 수 있다는 게 뼈대입니다. 이 때문에 이미 공장이나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등 열악한 시설을 숙소로 제공하고 숙박비를 왕창 떼어가는 사업주들이 곳곳에서 생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지침이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제42조 제1항)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결국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안으로 숙박비가 복리후생비 차원에서 최저임금에 산입되도록 바뀌면서, 위법 논란까지 싹 지우게 됐습니다. (▶관련 기사 : 이주노동자 두번 울리는 고용부 ‘숙식비 공제 지침’)

4. 기업의 위기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대기업 독점 구조에서 온다는 걸 알고 있던 환노위원들

-서형수 위원(더불어민주당)

“현재 대기업에 근무하는 고임금 근로자에 대한 상여금을 산입범위에서 제외해서 인건비가 줄어들면 거기에 대한 혜택을 대기업이 받습니다. 그러면 대기업이 그 혜택만큼 상생을 위해 중소기업에 이익을 내려보내줘야 되거든요. 거기서 중소기업 지불능력을 키워야 되는 것이고요. 실제로 장기적으로 지불능력이 없는 사업자는 경우에 따라서 퇴출시켜야 됩니다. 전체 산업구조에 대한 그런 장기적인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우선 한시적으로 넘어가는, 한 2~3년 동안 필요한 부분이 있잖아요. 이것이 결국 구조적으로는 산업구조 개편이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전체적인 상생구조를 통해서 당연히 답을 찾아야지요. 그 길을 찾고 있는 것이고요.“ (중략)

-장석춘 위원(자유한국당)

“그러면 제가 또 한 번 제안할게요.”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잠깐만요.”

-장석춘 위원(자유한국당)

“기업에 유보금 많잖아요, 그렇지요?”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위원장한테……”

-장석춘 위원(자유한국당)

“잠깐만요. 지금 발언하고 있어요. 가만있어 봐요.”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위원장한테 발언권 좀 얻고 하십시오.”

-장석춘 위원(자유한국당)

“(기업) 유보금 많잖아요. 그것을 끌어내 가지고 투자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정부가 내놔야지요. 그렇잖아요? 그것도 하나의 해소하는 방법이거든요.”

▶환노위원들은 사실 핵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아니라 대기업의 독점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점 말입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하러 지난 21일 국회를 방문했던 중소기업중앙회 쪽 관계자마저도 “뿌리업종은 100% 다 대기업 납품을 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납품단가가 반영되어야 되는데 그것도 안 되지 않느냐”고 정곡을 찌르기도 했죠. 모두가 알아도 국회만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걸 아는 사람들이….

5. 3일 회의하고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안다는 환노위원들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고민을 여러 가지 많이 하고 또 ‘여기서 하지 말고 차라리 노사정 대타협으로 넘기자’, ‘아니다. 해 보니까 이렇게 첨예한데 또 한다’라고 계속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데 한 3일 동안 우리가 아주 엄청나게 했지 않습니까? 서로 눈빛만 봐도 압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정부에서 ‘국회가 해 주는 대로 하겠습니다’ 이런 말씀 마시고 정부가 어떤 의지를 갖고 있으신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3일 동안 아주 엄청나게 회의”를 했으며 “서로 눈빛만 봐도 안다”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왜 이날 회의 전까지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 조율을 하지 못했을까요?

6. “순한 양처럼 앉아 있다”는 이정미 의원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그렇게 해서 우리가 과격하게 가지 마시고…… 이정미 위원님, 마음 좀 푸시고……”

-이정미 위원(정의당)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순한 양처럼 앉아 있습니다.”

▶이정미 의원(정의당)은 고용노동소위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의결된 이후인 지난달 2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에서) 저의 반대의견을 소수의견으로 하고 합의로 이 안이 통과되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법안 소위에서 교섭단체 간사 중 한 명인 저에게 표결처리 여부에 대해서 미리 협의도 하지 않고 회의 도중에 일방적으로 처리가 강행된 법안이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국회 안에 많은 교섭단체가 있는데 진골, 성골인 교섭단체가 따로 있는가.’ 정말 모멸감을 느끼는 시간이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임이자 소위원장(자유한국당)이 던진 “마음 좀 푸시고…”라는 말에 “순한 양처럼 앉아 있습니다”라고 말한 이정미 의원 답변의 행간에는 진보 정당 대표이자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 교섭단체 간사로서 존중받지 못했던 이정미 의원의 분노가 담겨있었습니다.

■ 2018년 5월25일 새벽 0시24분에 열린 4차 회의

7. 어떻게든 최저임금법 개정을 막아보려 했던 이정미 의원, 그리고 ‘이정미 패싱?’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이정미 위원님은 이것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시종일관 반대이십니다.

-이정미 위원(정의당)

“제 의견도 말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냥 툭 잘라 가지고 무조건 반대다라고 하면서….”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반대 아닙니까?”

-이정미 위원(정의당)

“아니, 반대입니다. 그런데 왜 반대하는지는 얘기할 기회를 주셔야 될 것 아니에요? (중략)”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이정미 위원님, 잠깐 기다리세요. 정부 얘기 좀 들어 보고….”

-이정미 위원(정의당)

“아까부터 왜 저한테 발언 기회를 안 주십니까?”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아니, 기다리시라고요. 왜냐하면 정부 얘기 좀 들어 보고….”

-이정미 위원(정의당)

“회의 내내 저한테 발언 기회 한 번도 안 주셨어요.”

▶24일 밤 10시께 시작한 3차 회의 초반 모두 발언을 했던 이정미 의원(정의당)은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두 번째 발언 기회를 얻었습니다. 시종일관 최저임금법 개정을 반대했던 이 의원은 다시 한 번 반대 의견을 내놓았죠. 극단적이라거나 급진적인 의견을 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최저임금에 산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달에 한 번 주던 상여금을 한 달에 한 번 ‘쪼개기’로 주는, 노동자에게 불리해질 가능성이 큰 취업규칙을 노동자 의견만 들으면 기업 홀로 바꿀 수 있도록 만든 특례 조항을 반대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정작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도 우려를 표한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정기 상여금이 아니라 복리후생비까지 산입하는 법률안도 반대했는데, 이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환노위원들도 회의 초반부터 반대하고 나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정미 의원의 호소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8. 환노위에서 12년 일한 수석전문위원조차 모르는 산입 비율이 법안에 들어갔다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전문위원님, 전문위원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너무 갑작스럽게 나온 얘기라서, 그래도 어쨌든 똑같이 들었으니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김양건

“저도 새로운 안인데요.”

-서형수 위원(더불어민주당)

“잠시만요. 사실 첫 회의부터 지속적으로 저희가 상여금 100%, 200%, 300% 이렇게 문제 제기를 했고 거기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사실은 그때부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접근 방법을 달리 해야 된다는 그런 복안을 가지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이정미 위원(정의당)

“그런데 그런 접근이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잖아요. 위원님이 그런 접근을 얘기했을 때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여기서 제대로 다루어진 적이 없다가 막판에 몰려 가지고 이제 막 두드려야 되니까 그런 안들을 내놓고 여기서 지금 판단해라…. 도대체 그 임금 구간에서 어떤 변화가 어떻게 생기는지 실질적인 지표도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예측만 가지고 하는 겁니다. 법률을 어떻게 그렇게 해서 결정을 하느냐고요. (중략) 위원장님,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어쨌든 저임금 노동자들의 문제에 착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저는 긍정적인 신호라고 봐요. 그런데 이것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제도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금 너무나 즉흥적이고…. 솔직히 얘기해서 (정기 상여금) 25%, (복리후생비) 10%가 임금 노동자들에게 어느 수준에서 어디까지 적용되고 그 이상의 문제는 어떤 것이 있을지 지표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날 고용노동소위에 출석한 국회환경노동위원회 김양건 수석전문위원은 환노위에서만 12년 넘게 일한 전문가입니다. 입법조사관과 전문위원을 거쳐 현재 차관보급인 수석전문위원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을 거친 주요 법으로는 고용보험제도 도입 관련 법, 정년연장법,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등이 꼽힙니다.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최저임금액 25%를 초과하는 정기상여금과 7%를 초과하는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한 건데, 애초에 이 25%와 7% 비율이 무슨 근거로 산출된 것이냐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국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된 뒤에야 고용노동부 쪽에서 “서형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안했다. 중위소득인 연봉 2500만원 근로자들이 최저임금이 인상되더라도 산입범위 개편에 따라 손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며 “연봉 2500만원은 최저임금 기준(월 157만원, 연 1884만원)으로 봤을 때 연 300%의 상여금(471만원) 지급 정도까지가 해당하는데, 연 300%를 12개월로 나누면 25%가 된다. 여기에 여야 간 협상 과정에서 상여금뿐만 아니라 복리후생비도 다뤄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고, 중위임금 2500만원 기준과 중식비 비과세 소득(10만원) 등을 감안해 7%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관련 기사 :“연봉 2500만원이하 최저임금 불이익 없다”?…사실과 달랐다)

그런데 이정미 의원(정의당)에 의하면, 이 비율은 고용노동소위에서 법률안이 의결된 지난달 25일까지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었고, 심지어 어느 임금 구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실태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채 제안된 것이었습니다. 이에 12년 동안 일한 환노위 전문가인 김양건 수석전문위원조차 견해를 묻는 임이자 고용노동소위원장(자유한국당)의 질문에 “저도 새로운 안”이라고 답하고 있는 겁니다.

9. 산입범위 제한 비율을 차츰 없애자는 안은 고용노동부 차관이 제안했고 하태경 의원이 덥석 물었다

-고용노동부 차관 이성기

“(서형수) 위원님께서 정확하게 생각이 같으실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부분들의 문제, 범위, 수준의 문제까지 갖고 기간의 문제까지도 고려한다면 저희가 일정 기간을 두고 페이드아웃(점점 사라짐) 해 나가는 방법, 그러니까 조금씩 조금씩 줄여 나가 가지고 없애 나가는 방법도 생각을 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중략)”

-하태경 위원(바른미래당)

“잠깐만요. 제가 한 말씀…. 정부에서도 중요한 추가적인 제안을 하셨기 때문에 그 부분을 상기를 하면 10%, 25%의 범위를 연도별로 조금씩 줄여 나간다, 페이드아웃 해서 결국은 복리후생비 전체와 상여금 전체를 최저임금 범위에 산입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다들 기억을 못 하시는 것 같아서…. (중략) 그렇지요. 그래서 중요한 추가 제안을 하셨기 때문에 이것을 종합해 가지고 조금 협의할 시간을 가지시지요.”

▶최저임금의 25%를 초과하는 정기 상여금과 최저임금의 7%를 넘는 복리후생비만 내년 최저임금에 포함되도록 법률을 정한 건 앞서 여야가 설명했듯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용노동소위 막판인 25일 새벽 갑자기 고용노동부 차관이 이 비율을 점점 없애자는 제안을 합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보호막을 없애자는 얘기를 노동자를 보호해야 하는 고용노동부 차관이 말한 겁니다. 결국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이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 정도로 언급해 별달리 주목받지 못했던 말을 하태경 의원(바른미래당)이 적극적으로 상기시켰고, 어영부영 이 ‘페이드아웃’ 방안이 법률안에 담기게 됩니다. 고용노동소위에서 법률안이 의결되기 약 30분 전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9년은 최저임금의 25%를 초과하는 정기 상여금과 7%를 넘는 복리후생비만 최저임금에 산입할 수 있게 되지만, 이 비율은 매년 점차 줄어들어 2024년에는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전체가 최저임금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기대수익에서 불이익을 보는 저임금 노동자는 해가 갈수록 그 숫자가 늘어나게 된 겁니다.

10.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30분만에 만들어졌다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잠깐만요. 일단 그게 어떤 형태로 접근해서 갈지는 두고 봐야 되니까, 그래도 안들을 만들어 내고 하셨으니까 일단은 한번 만들어 가지고 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으니까 김왕 국장님(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하고 전문위원은 한번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만들어 보도록 하십시오. 안을 만드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이정미 위원(정의당)

“아니, 이것은 합의를 위해서 합의를 하려고 하는 것이지 무슨 내용을 합의하려고 하는 겁니까?”

-고용노동부 차관 이성기

“20~30분 정도 안에….”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20~30분이요?”

-장석춘 위원(자유한국당)

“아니, 잠깐만. 20~30분 만에….”

-이용득 위원(더불어민주당)

“20~30분 가지고…. 거기에 허점들이 많아, 오히려. 시간을 가지고….”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그러면 정회를 선언하고 1시 반에 속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정회를 선언합니다.”

▶당시 국회 고용노동소위는 부산스럽게 굴러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과 서형수 의원(더불어민주당), 이들의 보좌관, 그리고 고용노동부·최저임금위원회 관계자들은 고용노동소위 소회의실과 20m 쯤 떨어진 수석전문위원실 사이를 급박하게 드나들며 귀엣말을 나누었습니다. 그 시간이 30분 정도로 얼마나 짧았던지, 어느 여당 관계자가 기가 찬다는 듯 웃으며 “이런 법안은 또 처음 보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여당 관계자의 말이 아니었더라면, 법안을 만드는 중이었는지도 모를 뻔 했습니다. 여당 관계자조차 “처음 볼” 정도였던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이렇게 졸속으로 만들어졌습니다.

11. 하태경 의원은 이날 국회의 ‘생산성’에 감동했다

-하태경 위원(바른미래당)

“환노위 소위가 오늘로 거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한 말씀 드리면 약 2년 전에 환노위 처음 시작할 때 환노위 했던 선배 분들의 ‘환노위에서는 되는 게 없다. 가지 마라’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태까지 나름대로 많은 갈등도 있었지만, 욕도 많이 먹었지만 최대한 노력을 해서 많은 성과를 내었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오늘이 사실상 마지막 회의라고 하면 생산적인 국회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그런 모범을 저는 서형수 위원님(더불어민주당)이 보여 주셨다고 생각하고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이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그러면 어려운 문제도 충분히 돌파할 수 있다, 다음 어느 상임위를 가든, 환노위를 계속 하든 그런 자세로 앞으로 국회에서 일을 해야겠다 하는 다짐을 다시 하면서 저는 서형수 위원한테 개인적으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날 자정이 지나기 전만 하더라도 하태경 의원(바른미래당)은 최저임금법 개정안 처리에 회의적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표결을 강행할 마음이 없고,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들어가지 않으면 바른미래당 쪽에서도 합의는 어렵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약 3시간만에 하태경 의원은 환노위의 ‘생산성’에 감탄하며 “그런 자세로 앞으로 국회에서 일을 해야겠다 하는 다짐”까지 하게 됩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기대 수익을 줄이는 법안 의결이 바른미래당과 하태경 의원에게는 너무나 감동적인 일이었나 봅니다.

12. “이의 있습니다” “이의 있으신 분들은 소수의견 남기시고요” “자러 갑시다 이제”

-이용득 위원(더불어민주당)

“보석이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이 내용이 아무리 좋고 이래도 여기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가지고 정확하게 검토도 안 됐고 새벽 1시에 20분 만에 만들어 오라고 그래 가지고 이것을 여기서 통과시키자고 그러는 겁니까?(중략)”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위원님들의 의견을 반영한 위원회 대안을 제안하고자 하는데 위원님 여러분 이의 없으십니까?”

(“예” 하는 위원 있음)

-이용득 위원(더불어민주당)

“이의 있습니다.”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이의 없으시면….”

-이정미 위원(정의당)

“이의 있다니까요!”

-소위원장 임이자(자유한국당)

“이의 있으신 분들 소수의견으로 남기시고요. 이의 없으시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하태경 위원(바른미래당)

“수고했습니다. 가서 잡시다, 이제.”

▶2018년 5월25일 새벽 2시9분. 정의당 이정미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위한 제4차 고용노동소위원회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결정을 졸속으로 통과시키고 회의를 마칩니다. 매년 최저임금의 25%(올해 기준 월 39만3000원)를 초과하는 정기 상여금과 최저임금의 7%(월 11만원)를 넘는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켰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데이터를 가지고 정확하게 검토도 안 된” 개정안이 표결에 부쳐졌고 의결된 겁니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의원들은 자신들이 통과시킨 법이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 460만명(노동계 추산)의 삶에 끼칠 영향을 얼마나 고려해봤을까요. 이들이 진정으로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고민했다면 “이의 있으신 분들은 소수의견 남기시고요”, “자러 갑시다 이제” 같은 발언을 할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선담은 이지혜 기자 su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7426.html#csidxe014bcc37b2f606a5bab32f0a95a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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