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몰이 단속에 숨지고 다치고…] 이주노동자들 “고용허가제 폐기하라”9년간 80명 사상했지만 정부는 단속 강화 계획 … "고용허가제가 불법체류자로 내몰아"
  
▲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정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으로 사상자가 잇따르자 국내외 노동자들이 단속 중단을 촉구했다. 법무부는 "올해 5월 말 기준 불법체류자가 31만2천346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6만1천305명 증가했다"며 "불법체류자 감축 대책을 강화한다"고 지난 15일 발표했다.

민주노총과 이주공동행동·이주정책포럼은 같은날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선거에서 민주정부를 자임하는 집권여당이 압승을 거둔 이 시점에도 야만적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방식은 여전하다”며 “정부는 이주노동자 단속·추방을 중단하고, 이들을 불법으로 내모는 고용허가제도를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반기 8천여명 단속? 단속 뒤에 숨겨진 사상자 보라”

이날 기자회견 참가단체들은 “지난달 법무부가 상반기(2월26일~5월11일)에 정부합동단속을 실시한 결과 불법체류자 8천351명을 단속했다고 실적처럼 자랑스럽게 발표했다”며 “숫자 뒤에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눈물이 숨겨져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근 경상북도 한 공장에서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 ㅁ씨가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옛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을 피하는 과정에서 무릎 부상(전방십자인대 파열)을 당한 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ㅁ씨는 올해 4월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과정에서 단속반원을 피해 1.5미터 높이의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무릎을 다쳤다.

이들 단체는 “출입국은 단속반원 30여명과 버스·승합차를 동원해 공장 입구를 에워싸는 소위 토끼몰이 식 단속을 했다”며 “ㅁ씨가 궁지에 몰려 이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구외국인사무소가 통증을 호소하는 ㅁ씨를 외국인보호소에 구금한 뒤 다음날 오후가 돼서야 병원에 데려갔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과정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지난해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80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 중 9명은 숨졌다.

대부분 단속을 피해 도주하다 다치거나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2012년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A씨가 단속반을 피하다 8미터 높이 회사 울타리에서 추락해 병원 치료 중 숨졌다. 같은해 중국 출신 ㅎ씨는 단속반을 피해 해안가로 도주했다가 바닷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백선영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부장은 “순수하게 단속 과정에서 숨진 미등록 이주노동자만 이 정도”라며 “2007년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로 이주노동자 10명이 숨진 사건이나 이주노동자가 외국인사무소에서 뛰어내려 숨진 사건까지 합치면 사상자는 더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조금만 삐끗하면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세”

이들 단체는 이주노동자가 비인권적 단속 상황에 놓이는 근본적 원인으로 고용허가제를 지목했다. “고용허가제가 너무 쉽게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로 만든다”는 지적이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은 3년간 3회로 제한된다. 3년 취업기간이 만료된 노동자는 추가로 1년10개월을 더 일할 수 있는데 사용자가 재고용을 원하지 않으면 체류자격이 박탈된다. 사용자의 폭행·상습적 폭언·성폭행·임금체불 등이 있으면 언제라도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지만,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피해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 채 사업장을 이동하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다.

백선영 부장은 “고용변동·신고·이탈을 비롯한 모든 권한이 사업주에게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조금만 삐끗해도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돼 버린다”며 “열악한 노동조건을 버티다 못해 그만둬도, 일을 하다 다쳐서 잠깐 쉬어도, 크고 작은 일들로 다툼이 생겨도 협상할 능력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곧바로 체류자격을 상실한다”고 우려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존중을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이 이전 정부와 달라지지 않았다”며 “정부가 올해 2월 발표한 3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2018~2022년)에 이주노동자 단속 강화 계획이 포함돼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발표한 기본계획에는 만기도래자 출국유도 방안 마련, 체류자격 변경 심사기준 강화나 사증 신청시 가족관계 자료 수집·관리를 통한 장기체류 억제와 불법체류자 관리 강화 같은 내용이 담겼다.

이들 단체는 “정부는 야만적인 단속을 중단하고, 고용허가제를 폐지해야 한다”며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자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한국 정부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에 데려왔으면서도 범죄자 취급을 하고 강제로 추방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체류자가 된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생각하고 단속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나영  joi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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