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의 호소문 “중국인 입국금지 여론, 부끄러운 일”

 
 
기사입력2020.02.26. 오전 10:50
최종수정2020.02.26. 오전 11:18
천주교 제주교구장 “과도한 위기의식과 공포심 조장 말아야
중국인들, 우리 동포와 임시정부 이웃으로 맞아준 역사 있어
고통과 불행에 대한 감수성·공감 상실은 가장 무서운 고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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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천주교 제주교구장이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관련해 위기의식과 공포심을 조장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강 교구장은 26일 발표한 사순절 사목서한을 통해 “지나친 위기의식과 공포심의 조장은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전염병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과도한 경계심과 혐오 바이러스의 심리적 증식”이라며 위기의식과 공포심을 조장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강 교구장은 “혐오는 차별을 가져오고 차별은 폭력으로 발전한다”며 1923년 9월 일어난 일본의 간토대지진을 예로 들었다. 강 교구장은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 약탈을 하며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는 거짓 뉴스가 퍼지자 일본 군경과 시민들이 흥분하여 6천여명이 넘는 조선인과 이방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는 심리적 혐오 바이러스가 일으킨 참극이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고 적대감을 드러내거나 비난하고 배척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구장은 일부의 중국인 혐오 발언과 행동에 대해서도 부끄러운 일이라며 자제를 호소했다. 강 교구장은 “유럽 내 식당이나 상점에서 중국인을 사절하고 손가락질을 하거나 비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설 연휴 기간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들이 승차거부로 택시를 타지 못하거나 싸움일 벌어지기도 했다”며 “중국인을 향한 혐오 발언과 행동이 속출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강 교구장은 최근 정치권 등의 ‘중국인 입국 금지’ 여론에 대해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잃고 땅을 빼앗겨 난민이 됐을 때 중국인들은 많은 우리 동포를 이웃으로 맞아주었고, 임시정부도 그 땅에서 오래 신세 지고 있었다”는 한·중 간의 역사적 관계까지 설명했다.

강 교구장은 또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경계심과 불안 심리에 시달리고 있으나, 그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힘든 현실이 주변에 널려 있다”고도 했다. 강 교구장은 “해마다 산업재해 사고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들이 2천명이 넘고 교통사고로 죽는 이들이 3천명이 넘는다. 독감으로 사망하는 이는 국내에서 해마다 4천~5천명에 이른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상실해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고 안타까워해야 할 우리의 고질병이다”라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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