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명절에 왜 쉬냐며 일 시키기도” 차별대우에 고통

게티이미지뱅크

“보상금 지급일을 또 넘겼네요. 고향으로 언제 되돌아갈 수 있을지….”

사장은 산업재해 보상금을 4번에 걸쳐 나눠주겠다고 했다. 약속한 마지막 보상금 지급일은 지난달이었다. 보상금 날짜가 자꾸 미뤄지면서 태국에서 온 워라차이(32)씨는 고향집 대신, 외국인 지원 민간기관인 성남이주민센터에서 벌써 네 번째 ‘우울한 명절’을 보내게 됐다. 2018년 8월 이곳에 입소한 그는 “태국으로 나가면 보상금을 주지 않을까 봐 못 나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워라차이씨는 그해 울산 자동차공장에서 오른손 손가락 4개가 잘렸다. 프레스 기계의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이다. 이후 회사 측의 미온적인 조치로 봉합수술 받을 ‘골든 타임’도 놓쳤다. 그에게 하루 12시간씩 일을 강제한 사업주는 “노동자 책임”이라고 발뺌했다. 이주민센터의 도움으로 소송 끝에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당장 밥벌이부터 막막하다. 그는 “이런 손으로 고국에서 뭘 할 수 있을지 두렵다”고 말했다.

네팔에서 온 나라 바하드루 마갈(25)씨는 다시는 가족과 명절을 지낼 수 없게 됐다. 그는 충북 충주의 주물공장에서 일요일인 지난 12일에도 일을 하다가 지게차 포크(물건을 싣는 앞부분)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은 “유가족이 급히 한국에 왔지만 보상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사업주가 유가족과 이주노조의 만남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먼 이국으로 건너온 외국인노동자들에겐 우리의 설 명절은 더욱 고통이다. 차별대우는 당연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금ㆍ임금도 지급받지 못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더욱이 산재 사망자도 급증하면서 이들에게 한국은 ‘근로 지옥’이 되고 있다.

연휴와 상여금은 명절 때마다 불거지는 문제다. ‘한국 명절에 외국인이 왜 쉬고 보너스까지 받아야 하느냐’는 업주들의 인식은 여전하다. 파키스탄에서 온 20대 남성 A씨는 “한국 명절이면 외국인은 쉴 이유가 없다고, 무슬림 명절 때는 여긴 무슬림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휴일 없이 일을 시킨다”며 “상여금은 그간 구경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2018년 내놓은 ‘경기도 외국인 근로자 지원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노동자의 59.2%가 차별대우를 겪었다. 그들 중 72.2%는 이에 대해 “그냥 참았다”고 답했다. 외국인노동자 688명을 설문한 결과다.

사망사고가 난 사업장인데도 외국인노동자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허점 가득한 사업장 평가도 문제다. 특히 농축산업 등 소수업종의 경우 사망재해 사고발생 시 감점은 1점에 불과한 데 반해, 숙소 최저기준을 못 맞추면 최대 5점까지 감점된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사업장인데 숙소만 그럴 듯하면 외국인근로자를 우선 배정받는 셈이다. 라이 위원장은 “오래 전부터 ‘한국에 죽으러 오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다”고 열을 올렸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최근 5년간 내 외국인별 산업재해 발생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로 사망한 외국인노동자는 114명이었다. 2014년(74명)보다 54.1% 급증했다. 임기 내 산재사고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90명)과 비교해서도 26.7% 늘었다. 이에 반해 산재로 목숨을 잃은 내국인 노동자는 2014년 918명에서 지난해 857명으로 6.6% 줄었다. 박선희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국장은 “외국인노동자도 한국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라며 “이들을 이방인으로 보는 시선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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