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부, 실제론 불법체류자 추방 가장 많아”

등록 : 2014.06.08 21:17수정 : 2014.06.08 21:17

홍주영(25)씨

오바마 연설 때 “추방 멈추라”던
‘서류 미비 이민자’ 홍주영씨 방한

“12살에 미국 땅을 밟은 뒤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지만,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투표 한 번을 하지 못하는 처지네요.”

6·4 지방선거 전날인 지난 3일 <한겨레>를 찾은 이민 1.5세 홍주영(25·사진)씨는 씁쓸하게 말했다. 그는 2001년 어머니와 누나(29)의 손을 잡고 미국으로 떠났다. 구제금융 사태 전후에 많은 이가 그러했듯 사업 파산과 이혼을 겪은 뒤 홍씨 어머니가 남매를 데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 이민을 떠난 것이다. 그의 가족은 6개월짜리 관광비자로 미국에 간 뒤 6개월 비자 연장을 했지만, 이후로는 10년 넘게 ‘서류 미비 이민자’로 불리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살아왔다.

홍씨는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 이민자 사회를 찾아 이민개혁법안 통과를 얘기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 도중 “추방을 멈추라”고 외쳐 주목을 받았다. 그는 오바마 정부가 이민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200만명 넘는 이민자를 추방했다는 점을 지적하려 했다. 역대 정부 중 최대 규모다. 테러리스트 체포 등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만들어진 오바마 정부의 범죄 이민자 단속 프로그램이 무단횡단 등 사소한 법 위반을 한 서류 미비 이민자들을 마구잡이로 추방하는 그물로 사용되고 있다고 홍씨는 지적했다.

“고교 졸업반 때 대학 입학을 준비하다가 처음으로 제 처지를 알았습니다. 성적이 괜찮아서 좋은 대학에서 입학 허가도 받았지만, 시민·비시민을 따지지 않는 초·중·고 과정과 달리 대학에 가려면 합법적 신분 없이는 법적·금전적 장애물이 너무 많았어요. 우회 경로로 대학을 간다 해도 제대로 된 취직도 어렵습니다.”

미국에선 2012년 홍씨처럼 서류 미비 이민자인 부모를 따라 이주해 미국에서 성장기를 보낸 청년세대에게 2년간 추방을 유예하고 취업 허가도 내주는 다카(DACA, 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 프로그램이 시행됐다. 15살 이전에 미국에 온 56만여명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시적이지만 합법적인 신분을 얻었고, 홍씨도 마찬가지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누나는 미국에 올 때 16살이었기 때문에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어머니와 함께 항상 추방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홍씨는 합법 신분을 얻은 뒤에야 13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달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이민자 권리 운동에 쓸 생각으로 자신의 귀국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한인사회의 이민자 권익 단체에서 일하고 있고, 대학원을 졸업한 뒤에는 연방의회나 주의회에서 이민자 정책 지원 일을 하려는 꿈을 꾼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세금도 내지만, 권리는 거의 없습니다. 서류 미비 이민자는 한국 이민사회에서 7명 가운데 1명꼴입니다.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도 경찰에 신고를 못 했고, 머나먼 다른 주에 갈 때도 남들 다 타는 비행기를 못 타고 육로로 가야 합니다. 한국의 미등록 이주자와 이들의 아이들도 마찬가지 경험이 있을 겁니다. 한국 사회와 한국 정부가 이들의 인권에 대해 좀더 많이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글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