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가 된 제도, 줄지 않는 불법체류자

[ 커버스토리 ] 외국인 고용허가제 10년

수정: 2014.06.13 22:48
등록: 2014.06.13 13:42

생산유발효과 10조원 넘어 내국인 기피 3D 업종에선 절대적 "안산 시흥공단 외국인 없으면 마비"

애초엔 3년 단기체류 목적 설계 9차례 개정 거치며 취지 달라져 6년8개월까지 체류 '정주화'

23%나 불법체류자로 전환

자신이 관리하는 선반CNC 기계를 살펴보고 있는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닝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103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 본회의에서 우리 정부와 노동단체간 설전이 벌어졌다. 기조연설에 나선 정현옥 고용노동부 차관은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두둔한 반면,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며 “코리안드림을 좇아온 외국인노동자들이 저임금 장시간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산업재해율도 높다”고 비판했다.

고용허가제에 대한 평가는 이렇듯 상반된다. 분명한 것은 이 제도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노동자들로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가 이전과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외국인노동자 생산유발 효과 10조원대

고용허가제 시행 첫 해인 2004년 3,167명이 이 제도를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고, 지난 해 말 41만5,241여명이 체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규모가 늘어난 만큼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도 늘었다. 2012년 고용노동부의 용역보고서 ‘고용허가제 시행 평가 및 제도개선 방안’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의 생산유발효과는 2011년 9조9,160억원에 달했다. 생산유발효과는 외국인 노동자가 직접 생산하거나 소비함으로써 다른 생산을 유발시킨 효과를 합한 것이다.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GDP)에서 아직 0.23% 정도를 차지하지만 2005년(5,710억원)과 비교해서는 17.4배에 이른다. 보고서는 2012년 이들의 생산유발효과를 10조원 이상으로 예상했다.

내국인 인력을 쓰기 어려운 3D업종에서 이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최종만 안산 지구인의 정류장 사무국장은 “안산, 시화, 기흥 같은 주요 공단이나 대규모 농장에서 외국인노동자가 없으면 업무가 마비된다”라며 “이제 중간 관리자도 외국인이 맡는 경우가 많아 그 밑에서 일할 한국인 신입 채용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고용허가제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한 사용주 567명을 대상으로 한 법무부의 ‘2013년 체류외국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체 근로조건 개선 시 내국인 고용 가능성에 대해 묻는 질문에 51.4%가 ‘국내 청년 고용 가능성이 없다’, 62.3%가 ‘국내 여성 고용가능성이 없다’고 답했다. 농축산업체는 이보다 더 심각해 86.5%가 근로조건이 개선 돼도 ‘국내 청년 고용가능성이 없다’, 77%가 ‘국내 여성 고용가능성이 없다’고 답했다.

9차례나 개정… 최장 9년8개월 체류 가능

전문가들은 시민단체, 노동계가 지적한 사업장 변경 제한에 따른 각종 부작용은 오히려 지엽적인 사안이라고 일축한다. 문제는 고용허가제로 상황이 저렇게 바뀌는 동안, 제도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제도가 누더기가 됐다”고 말한다. 고용허가제가 10년간 9차례 개정을 거치며 애초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처음 고용허가제는 3년의 단기 체류를 목적으로 설계됐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사업주에게 저숙련 노동자를 공급하면서도 내국인 고용시장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불법체류’로 대표되는 외국인노동자 정주화 현상을 이 제도를 통해 차단한다는 목적도 작용했다. 정주화를 막기 위해 만든 ‘가족초청 금지’ 방안도 3년의 한시적 체류를 전제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체류기간이 지속적으로 늘며 문제가 생겼다. “숙련공이 필요하다”는 중소기업들의 볼멘소리에 “돈 벌만 하니 떠나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의 요구가 맞물린 결과다.

체류 기한은 2009년 사용자가 재고용 허가를 요청한 경우에 한해 1년10개월 취업활동기간 연장을 받을 수 있도록 늘었다. 2012년 12월 개정 후 현재까지 외국인노동자가 합법적으로 국내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최장 9년 8개월(중간에 출국 6개월 조건)에 이른다. 사실상 정주화가 시작된 셈이다.

합법적 정주화를 준비하는 외국인노동자도 늘고 있다. 특례 고용허가제(방문취업제)로 들어온 재외동포는 요건을 갖춰 재외동포비자(F-4)를 취득해 출입국 제한 없이 한국을 드나들 수 있는데, 법무부 실태조사에서 방문취업제 재외동포의 79.3%가 이 비자를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74.2%는 영주권 취득을 준비하겠다고 답했다.

이렇게 되자 관광비자 등으로 가족을 입국시켜 한국에서 함께 사는 우회적인 방법도 늘었다. 역시 법무부 실태조사에서 일반 고용허가제 외국인노동자의 15%가 배우자와, 21%가 기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고 답했다. 방문취업제 재외동포는 81%가 부모 형제자매, 형제자매의 배우자와 함께 지낸다고 답했다. 설 교수는 “10년 가까이 가족 동반 없이 일하도록 한 제도는 인권의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불법체류자를 막는다는 애초 목적도 달성 불가능하게 됐다. 지난해 6월 기준 일반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가 불법체류자로 전환된 비율은 23.2%에 달했다. 제도가 시작된 2004년 8월 18만 948명이던 불법체류자는 지난해 12월 18만 758명으로 10년간 전혀 줄지 않았다. 오경석 경기도 외국인인권지원센터 소장은 “불법체류자 18만명은 대부분은 노동자다. 한국에 고용돼있고 노동하지만 정부가 관리할 수 없는 사람이 그 정도 수준이라면 정책 실패”라고 말한다.

설 교수는 “외국인노동자 정착이 가능한 상황에서 정부가 제도 수습국면으로 가야 한다”며 “사회적 논의를 통해 외국인노동자 정주화 인정 범위와 규모를 합의하고 정주화불가라면 제도를 되돌리고, 정주화로 가야 한다면 관련 제도를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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