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오승은] 멸시받는 동유럽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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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브람 스토커가 출간한 소설 ‘드라큘라’는 중세 루마니아의 지도자 블라드 공(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블라드 공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침입에 맞서 자신의 공국을 지켜내고자 싸운 용맹한 지도자였으며, 3차 십자군 전쟁에도 참여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런 블라드 공이 아일랜드 출신 작가에 의해 희대의 흡혈귀로 윤색된 배경에는 근대 서유럽의 부상과 함께 시작된 동유럽 멸시와 천대라는 대중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19세기에 대거 유입된 동유럽 노동자에 대한 반감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1890년대는 산업혁명이 유럽 전역에 급속도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서유럽 사람들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를 이웃한 동유럽에서 충당하였다. 수십만 동유럽인이 서유럽 주요 도시로 이주해 ‘값싸고 괜찮은’ 노동력으로서 서유럽 산업화에 기여했다. 그런 기여에도 불구하고 서유럽 대중이 동유럽 노동자에 대해 느낀 부정적 정서는 커져만 갔다. ‘드라큘라’는 이러한 서유럽 시대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동유럽에서는 죄수를 처형할 때, 쇠꼬챙이에 찔러 피를 흘리며 죽게 한 관습이 있었다. 오래전 동유럽 처형 방식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가는 블라드 공을 실제 그는 한 번도 살지 않은 브란 성의 흡혈귀 백작으로 바꿔놓았다. 그 당시 서유럽 독자들은 ‘동유럽 흡혈귀 백작’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부정적 정서를 표출시킬 출구를 찾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요즘 동유럽 이주민에 대한 공포가 다시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추세이다. 2004년 동유럽 국가들의 유럽연합 가입과 함께 노동시장이 개방되어, 현재 영국에만 66만명의 동유럽 출신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흔히 ‘폴란드 배관공’으로 불리는 동유럽 이주 노동자들은 서유럽 노동자의 50∼60%밖에 되지 않는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 가입 시 동일임금 약속을 받았지만 현실에선 그림의 떡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이라도 벌기 위해서는 ‘복지도둑’으로 몰리는 수모도 무릅써야 한다. 유럽연합 조약에는 동유럽 회원국 국민도 서유럽 이주 시, 교육 의료 주택 등 복지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복지 혜택을 누리는 이주 노동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2013년 영국에서 실업수당을 신청한 이주 노동자는 전체 200만명 중 1만3000명. 100분의 1도 안 되는 수치다. 영국 외국 노동인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동유럽 노동자의 복지수당 혜택 비율은 그만큼 더 적다는 계산이다.

그런데도 서유럽 일부 언론은 동유럽 노동자들을 ‘잘사는 서쪽의 복지혜택을 누리기 위해 동쪽에서 온 도둑’ 취급을 하고 있다. 그 복지제도는 의료, 돌봄 노동 등의 분야에서 싼값으로 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동유럽 노동자들이 있기에 가능한데도 말이다. 여기에 더하여 “현금인출기 강도 사건의 85%는 루마니아인”이라는 근거 없는 통계가 난무하고, ‘결핵과 박테리아를 대량으로 퍼트릴 것’이라는 기막힌 보도도 나온다. 유럽 통합의 시대라지만, 19세기 ‘드라큘라’가 쓰였을 때나 지금이나 동유럽 노동자들이 감내해야 하는 ‘백인 니그로’라는 굴레는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한국의 이주 노동자에 대한 대중 인식은 어떤가? 에이즈를 옮긴다고 ‘외국인 목욕탕 출입금지’를 내건 부산의 한 목욕탕, 하루 4000원의 식대로 아프리카 예술인을 착취한, 그것도 여당 중진의원이 운영한다는 포천 ‘아프리카 박물관’ 노예 노동 사건 등을 보면 한국의 일상에서도 외국인 노동자 차별과 천대는 매일 벌어지는 ‘우리의 일’이 되어가고 있다. 남의 나라 왕을 흡혈귀로 왜곡시킨 소설이 나올 정도로 만연했던 서유럽 대중의 의심과 공포심만큼이나 우리의 이주 노동자에 대한 집단정서도 직시와 성찰이 필요한 때이리라.

오승은 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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