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S-TOPIK 아시나요] “79점? 어휴, 한국행 1년 재수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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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의 문을 두드리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겐 반드시 넘어야 하는 장벽이 있다. 고용허가제 한국어능력시험(EPS-TOPIK·Employment Permit System-Test Of Proficiency In Korean)이다. 지금까지 150만명 이상 응시했지만 합격자는 40%를 넘지 않는다. 이 시험에 합격해야만 한국행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이 시험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으로 근로자를 송출하는 15개국 현지에서 실시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중국 방글라데시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네팔 미얀마 키르기스스탄 몽골 필리핀 스리랑카 동티모르다.

◇수능시험 방불케 하는 열기=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지난 10∼11일 미얀마 양곤에서 시행한 EPS-TOPIK에는 1만4420명이 몰려들었다. 제조업 분야에서 5200명을 선발하는 이 시험은 1년에 단 한 차례만 시행되기 때문에 시험장으로 지정된 학교 주변은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응시자들은 전날 시험장 인근에서 숙박한 뒤 아침 일찍 나섰다. 수험자들은 일찍 시험장에 들어가기를 바랐지만 부정행위를 우려한 미얀마 당국이 시험 시간에 임박해 출입을 허가했다. 시험장 입구에서 금속탐지기 등을 동원해 전자기기를 수색하는 등 삼엄한 통제가 이뤄졌다.

지난해 10월 캄보디아 4개 주 9곳에서 시행한 제10회 EPS-TOPIK에는 3만8829명이 응시했다. 전년 응시생보다 배 가까이 늘어난 인원이다. 캄보디아는 최저임금이 월 80달러에 그치기 때문에 한국은 캄보디아 젊은이들에겐 매력적인 곳이다. EPS-TOPIK에 합격해 한국에 입국한 캄보디아 젊은이는 2만6000여명에 달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이 시험을 보는 날에는 시험장 인근에 수험생을 싣고 온 전세버스가 몰리면서 교통체증이 빚어지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에선 수도 자카르타에만 크고 작은 한국어 학원이 100곳 넘게 운영되고 있다. 한 달 수강료도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최저임금 수준과 맞먹는 220만 루피아(약 20만원)에 달하지만 학원당 수강생이 100∼200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좋다.

지난해 세계 각국에서 EPS-TOPIK에 원서를 접수한 구직자는 모두 23만9374명에 이른다. 2005년 첫 시행 당시 원서 접수자는 4만7025명이었으니 8년 만에 5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시험 시행 이후 지난 4월까지 원서 접수자는 모두 151만552명이었고 54만3831명이 합격했다.

◇4지선다형 읽기·듣기 평가=시험은 모두 70분으로 진행된다. 듣기·읽기 영역 25문항씩 모두 50문제를 풀게 된다. 듣기 평가는 30분, 읽기 평가는 40분으로 각각 100점씩 배점된다.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어업 서비스업 등 5개 분야 종사자를 선발하기 위한 시험이기 때문에 업종과 관련된 문항이 종종 눈에 띈다. 읽기 영역에선 삽을 사진으로 예시한 뒤 용도와 명칭을 묻는 질문이 나오는 식이다. 이 문제에는 ‘①이를 닦을 때 사용하는 칫솔입니다. ②물건을 집을 때 사용하는 집게입니다. ③바닥을 문질러 때를 뺄 수 있는 솔입니다. ④땅을 파고 흙을 뜨는 데 사용하는 삽입니다’라는 지문이 제시된다.

수험생 가운데 성적이 높은 순으로 합격이 결정된다. 국가별로 배정된 고용허가제 도입 예정 인원에 따라 고득점자 순으로 합격자가 결정되는 것. 선발 예정인원에 미달돼도 총점 80점을 넘지 못하면 한국행 티켓을 따낼 수 없다. 이 때문에 한국에 오려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고득점을 노려야 한다.

EPS-TOPIK은 직업 현장과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 능력을 중점적으로 살피기 때문에 문학, 문법, 맞춤법 등 까다로운 내용은 묻지 않는다.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하는 유학생 대상의 일반 TOPIK과는 다른 점이다.

국가별 통계를 보면 한국의 고용허가제에 가장 많은 인원이 몰린 나라는 네팔로 4만7690명이 원서를 접수했다. 캄보디아(3만8829명)와 인도네시아(2만8821명)가 뒤를 이었다. 응시자 전체 평균 점수가 높은 국가는 중국(112점) 미얀마(105점) 방글라데시(103점)이고 업종별 커트라인이 가장 높았던 부문은 스리랑카의 제조업으로 148점을 기록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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