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일하고 계시는 최근정 선생님으로부터 온 소식입니다.



우리 동네엔 텐트가 없어요

고빈다 씨 집에 아주 큰 천막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영국에 있던 가족이 보낸 이 천막은 마침 지진 전날 딱 도착해 마치 지진 때 쓰라고 보낸 듯 요긴했습니다

하늘만 가려 이슬을 막았을 뿐 사방이 트인 잠자리는 무척 추웠습니다

언제 지진이 또 날지 모르니 사방을 막지 않는 게 누구든 달려와 앉을 수 있으니 오히려 나았습니다

갑자기 바닥이 갈라져 그 속에 함몰되는 끔직한 상상을 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해졌습니다

오늘 아침은 새소리도 들립니다

새들이 돌아왔나 봅니다

뒷집 까마귀들도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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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 피었건만...둘째날, 이웃 사람들은 저에게 한국에 언제 가냐고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얼른 가라고 말했습니다

"하미 틱처웅" 괜찮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뇨, 사실은 괜찮진 않아요

린도 흔들리는 기미가 있으면 단박에 뛰어오고 저도 머리가 어지러워 자꾸 오른쪽으로 몸이 쏠리는 느낌이에요

두려운 게 없는 사람같았던 커겐도 집안으로 들어가길 겁내요

그래도 우린... 이렇게 같이 있잖아요, 괜찮은 거잖아요

이미 엿새째고 그 사이 사흘이나 비가 내렸습니다

고르카 지역 어느 마을엔 삼백 가구 중 세 가구만 남아 있다는데...네팔의 지형상 접근이 쉽지 않아 사망자는 계속 늘고 있고

시신 수습도 시간이 한참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검이 너무 많아 퍼수퍼티 사원 화장터만으로는 모자라 물마른 박머띠 강 어느 곳에서나 불을 얹고 있습니다

먼 곳에선 수습된 주검들을 그 자리, 그대로 불을 얹고 있고요




어제 낮에 사무실에 잠깐 갔다왔습니다

고우살라, 짜벨, 조르빠띠 도로 곳곳에 무너진 집들과 벽돌, 금간 건물들... 아, 네팔......

사무실 근처 카펫공장에서 나흘 밤을 지내고 있는 우리센터의 직원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태어난 지 이제 두 달이 된 울밀싸는 자고 있었습니다 울밀싸의 엄마 재봉공동작업장의 메하 총괄자는 예의 조용하게 앉아 있었어요

고향에서 이번 지진으로 팔을 다치신 할아버지가 오신 컴퓨터 교사 텐지도 만났습니다

텐지네는 시골 유지라 그나마 헬리콥터를 타고 카트만두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할아버지가 오실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있습니다 텐지네 시골집은 무너졌습니다

새로 들어온 공부방 교사 나왕의 할아버지가 이번 사고로 돌아가셨고

도서관 체튼 사서의 친척 두 분도 돌아가셨습니다

공부방 아시스 교사의 아버지도 집에서 탈출하시다 넘어져 다리가 다쳤습니다

청소하시는 시타 언니의 아이들 네 명이 버선다라로 놀러가 연락이 끊기는 바람에 언니는 애가 탔는데 다행이 아이들은 무너전 버선다라에 올라가지 않고

그 주위에서 놀았다고 합니다 아이들 네 명은 버선다라에서 걸어 조르빠띠 집에 도착했습니다

현지코디네이터이자 우리 센터 대표인 다와 라마 씨 시골집이 바로 신두발촉입니다

다와 라마 씨 부모님 집도 무너졌습니다

한국봉사단원인 고진은 박타푸르 골목을 돌아나와 광장에 서자마자 죽음을 목격했고 김나희는 무너지는 건물 더미에 깔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뛰었습니다

꽃은 피었건만....

아이들은 이 와중에도 좋아하는 크리켓 놀이를 합니다 그리고 여진이 오면 잽싸게 천막으로 뛰어왔습니다

토요일이라서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다른 날이었다면 공부하고 까불던 아이들이 학교에서 얼마나 더 다쳤을까요?

조그마한 아이들이 놀라 우왕좌왕 했을 생각을 하면 너무나 끔찍합니다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를 얻을 먹을 수도 있고 학교에도 안가도 되서 그런 걸까요?

아이들에겐 천막 생활이 더 재미있어 보입니다

어른들은 수심이 깊습니다

성금을 보내고 싶다는 분들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노들 장애인 야학 박경석 교장 선생님, 성금을 모아 주시겠다니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커겐, 라진, 썬토스 삼형제를 비롯해 청년들이 어젯밤 주머니를 털어 백만원 정도를 만들었고 오늘 아침 몇몇 사람들이

물건들을 사서 쉐염부나트 뒷 동네로 갔습니다

저희 동네 청년들도 구호활동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한번에 큰 돈을 만들 수는 없지만 어젯 밤에도 천루피, 이천루피, 만루피까지 각자의 사정대로 모았습니다

네팔 사람들은 늘 홍차를 마십니다 설탕을 담뿍 넣은 달콤한 찌아도 자주 마십니다 홍차는 네팔 사람들에게 위안 같습니다

쌀도 필요하고 물과 담요, 텐트도 계속 필요할 것입니다

무엇이든 도움이 다 되겠지만 지금은 돈을 보내주시면 여기서 필요한 것들을 사서 바로바로 공급하는 게 제일 나을 듯합니다

제가 보낸 내용들을 널리 퍼뜨려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우리은행 1002 441 933547 최근정입니다

멀리서 기도해주셔서 고맙고...이제야 더 실감이 나서 눈물이 납니다

아, 네팔... 그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면 얼마나 걸릴지...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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