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의 졸속처리를 규탄한다

 

 

지난 32일 밤 야당의 필리버스터 중단 후 여당은 사회적 논란과 우려를 전혀 해소하지 못한 채 기다렸다는 듯이 국회 본회의를 열어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다. 같은 날,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테러방지법과 마찬가지로 개인정보보호의 기본원칙들을 가볍게 무시한 또 다른 법안이 국회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법무부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다.

 

정부가 제출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은 처음부터 문제투성이였다. 출입국 관리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이유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보장의 최소한의 원칙들을 너무나 쉽게 무시했다. 심지어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외국인이 있을 수 있다는 의심만으로, 출입국관리공무원이 사업장, 영업장, 사무실 기타 이와 유사한 장소에 관리자의 동의 없이, 영장도 발부 받지 않고 마음껏 출입하여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있었다. 이처럼 영장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배척한 조항은 시민단체와 법조계의 문제제기로 겨우 삭제되었지만, 개정안의 다른 내용들 역시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많음에도 충분한 토론과 논의 없이 원안 그대로 통과되었다.

 

가장 문제되는 조항은, 정보화기기에 의한 출입국심사를 위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타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얼굴과 지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 제3조 및 제6, 그리고 출입국관리공무원이 필요한 경우 내 · 외국인을 불문하고, 관계기관에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범죄경력정보 및 수사경력정보 외에도 여권발급정보, 주민등록정보, 가족관계등록정보, 사업자등록정보, 자동차등록정보, 관세사범정보, 납세증명서 등의 방대한 정보제공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 제78조 제2항이다.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관리하는 기관이 해당 정보를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함부로 제3자에게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확립된,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원칙이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 어디에도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법무부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위 조항들에 대해 내놓은 설명은 가관이었다. 자동화출입국심사를 위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얼굴과 지문정보를 제공받는 것은 자동화출입국심사에 대해 동의를 받으므로 문제없고, 개정안 제78조 제2항에 따른 광범위한 정보는 각종 신청이나 심사를 위해 당사자 본인들이 어차피 제출해야 하는 것이므로 출입국관리공무원이 정보보유기관에 직접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국민이나 외국인의 부담을 오히려 덜어준다는 것이었다. 국민의 편의를 위해서라지만, 정작 당사자는 자기의 개인정보가 제공된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법조단체와 시민단체에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 거듭 우려와 반대의사를 표명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조항은 행정부에서 필요하다는 말 한마디에 별다른 논의 없이 원안 그대로 통과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입법기관의 현주소다.

 

형사처벌규정과 강제퇴거사유의 무분별한 신설(개정안 제26) 역시 불명확한 구성요건으로 인한 죄형법정주의 형해화와 자의적 법집행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 양산의 우려가 있다. 각종 신청시 허위서류 제출자를 제재하겠다는 것이지만, 처벌이 필요한 행위가 무엇이며, 그 중 현행 형법문서에 관한 죄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도 처벌되지 않는 행위가 무엇인지의 규명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결과는 이 두 번이나 등장하는, 최소한의 명확성도 갖추지 않은 범죄구성요건이다. 강제퇴거명령을 도깨비방망이처럼 활용하는 것도 문제다. 강제퇴거는 특히 국내에 가족이나 생활기반이 있는 사람에게는 형사처벌보다 가혹한 경우가 있다. 행위의 위법성과 제재의 중대성 간의 비례와 형평성이 무너지기 쉬운 이유다. 따라서 그 어떤 처분보다 신중하게 판단되어야 함에도, 현행 실무는 출입국관리공무원이 강제퇴거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일단 단속해서 외국인보호소에 구금해버리는 식이다. 미공개 지침으로 운영되고 법적 통제가 거의 없다보니 자의적 판단이 배제되기 어렵고, 사후적 구제 또한 쉽지 않다.

 

그동안 출입국관리의 명목으로 행해지는 행정작용은 행정절차법, 인신보호법 등 개인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법률이 제정될 때마다 그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특수한 지위를 누려왔다. 출입국관리법이 외국인의 출입국만 관리하는 법이 아니며,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과 국민의 생활에 깊숙이 관여하는 법률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출입국을 관리한다는 이유로 그 어떠한 영역보다 폭넓은 재량권이 인정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광범위한 행정기관의 재량은 언제나 개개인의 인권보장보다 오로지 출입국관리의 편리성을 위하여 사용되어 심지어 인신매매, 폭행 등 불법행위 피해자가 강제추방 대상이 되는 등 인권침해의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렇다면 출입국관리행정의 여러 기능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 광범위한 재량권을 통제하고, 국민 및 외국인이 출입국 관리 행정절차에서 보장받아야 할 절차적 권리를 보완함과 동시에 출입국관리법 위반자들에 대한 제재수단 중 형사처벌과 강제퇴거의 대상은 비례의 원칙에 충실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졸속적으로 통과된 정부의 개정안은 위와 같은 필요에 오히려 역행하고 있음에도, 입법기관인 국회는 이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행정당국의 입맛에 맞는 법률을 서둘러 통과시켰다.

 

우리는 정부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졸속적으로 처리된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 또한,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국회가 출입국관리법 문제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를 통해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이번 국회에서 졸속적으로 통과된 정부제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은 국민과 외국인에게 보장된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잘못된 개정안임을 분명히 하며, 이에 대한 반대의사를 명확히 밝힌다.

 

2016. 3. 4.

 

이주정책포럼 (감사와 동행,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외국인 이주·노동운동 협의회, 이주인권연대, 이주공동행동, 이주노조,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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