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

 

인종, 피부, 국적에 따른 차별 금지 선포 성명서

“우리도 붉은 피를 가진 똑같은 사람이다”

 

196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적인 여권법(흑인에게 신분 여권 소지를 의무화시킨 법률)에 반대하며 평화적 시위를 벌이던 69명이 경찰의 발포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 이후 1966년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세계 민중의 지속적인 투쟁에 의해 UN은 이날을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로 지정하였다.

이에 우리는 오늘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한국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인종적 차별에 경종을 울리며, 특히 정부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차별정책을 규탄하고자 한다.

현재, 한국사회는 다문화·다민족사회에 진입하였다고 다문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다문화·다민족사회가 무색할 정도로 이주민에 대한 인권침해와 차별의 수위는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이명박 정권 이후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은 안전장치가 완전히 해체되어 가고 있다. 근로기준법 42조에서 밝히고 있는 임금지급의 4대 원칙(통화지불의 원칙, 직접지불의 원칙, 전액지불의 원칙, 정기지불의 원칙)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최저임금 내에서 숙박비를 공제하는 등 이주노동자의 생존권마저 위협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로 이주노조 활동을 하는 미셀 위원장을 강제출국조치를 시켜 이주노조를 무력화하고 봉쇄하려는 구시대적인 노조 탄압 행위를 일삼고 있다. 정부는 내국인과 동일하게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에게도 노동 3권을 보장한다고 한다. 하지만 미셀 위원장의 이조노조에 대한 탄압에서 보듯이 이는 정부의 거짓과 허위임이 증명되고 있다.

더 나아가 지난 2월부터는 귀화자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체제 인정 서약서’를 강요하고 있다.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귀화 자격을 주지 않겠다고 한다. 법무부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천안함, 연평도 사건 이후 귀화 대상자를 국가 위협 세력으로 규정하여 국가 안보 차원에서 시행한다는 것이 명분이다. 과연, 국가 안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보장하는 귀화자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마저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져 있으며, 국가 안보의 무능을 이주자에게 전가시키고자 하는 가증스런 작태라고 할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대다수의 귀화자는 국제결혼 이주여성이다.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경우 4년 이내 이혼율이 79%에 이르고, 이혼사유에 있어 정신적·육체적 학대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마련은 없다. 단지, 사회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동화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책의 틀 속에만 가두어 두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결혼 이주여성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주아동에 있어서도 약 40%만이 중등교육과정을 수료할 뿐 교육현장에서 이탈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등록 이주아동의 상황은 더 더욱 열악하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사회적 안전망에서 벗어나 교육권과 건강권이 보장되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다. 또한, 미등록자의 단속 과정에서는 인권에 대한 인식 없이 인종적 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단속 과정에서 적법절차 없이 무차별적인 폭행과 인종적 모욕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런 차별적인 정책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에서는 최근 1월부터 6월까지 10년 이상 미등록체류 재외동포에 대해 한시적인 합법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정부에서는 재외동포의 고충해소 차원에서 시행한다고 하지만 이는 이미 2004년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재외동포법에 따른 자유왕래의 보장을 숨기려는 기만적인 조치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시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한시적인 합법화는 재외동포의 자유왕래 보장을 막는 위장술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부는 재외동포에 대한 차별적인 조치를 철회하고, 당장이라도 재외동포법의 자유로운 왕래, 취업, 체류를 보장해야 한다.

아울러, 재외동포의 합법화 조치와 관련하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비동포 미등록 이주자에 대한 배제는 분명한 국적과 인종에 대한 차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재외동포의 ‘고충해소의 방안’으로 나온 조치라면 비동포 미등록 이주자의 경우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비동포 미등록 이주자 역시 재외동포들이 겪고 있는 고충과 차별에 있어 다르지 않다. 단순 미등록 이주자라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인권이 무참하게 배제된 채 인권의 사각지대에 내 모는 것은 국제사회 내에서도 비판을 받을 것이다.

지난 2007년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에서도 “한국사회에 ‘단일민족’, ‘순수혈통’, ‘혼혈’과 같은 용어들과 더불어 인종 우월적인 관념들이 널리 퍼져 있다.”며 “인종차별의 정의를 조약의 관련 규정에 맞게 헌법이나 법률에 포함시키고 이주노동자, 혼혈아 등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제거하고 관련법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제 한국사회는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다문화·다민족사회에 걸맞게 차별을 철폐하고 이주자에 대한 인권적 관점으로 정책을 전향하여야 한다.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에서 밝히고 있는 인종, 피부색, 민족이나 종족의 기원에 근거를 둔 어떠한 구별, 배척, 제한 또는 우선권에 대한 차별적 정책은 중단되어야 한다. 또한, 모든 이주자 역시 평등하게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인정받고 향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세계인종차별의 날을 맞아 한국사회의 인종, 피부, 국적에 따른 차별을 종식시키고, 평등한 사회가 실현될 때까지 끝까지 싸워 나갈 것이다.

 

우리의 요구

미등록 이주자 전면 합법화하라!

재외동포의 자유 왕래-취업-거주를 보장하라!

이주노조 탄압을 중단하고 노조활동을 보장하라!

인종·국적에 따른 차별정책 중단하라!

모든 차별을 중단하고 이주민의 권리를 보장하라!

2011년 3월 21일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