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이주민의 날] 일을 하고 세금도 내고… 저는 한국사회 구성원입니다

"받기만 하는건 아닙니다"…한국서 제 몫하는 이주자들 / 저출산·고령화 심화… 이주자 유입은 불가피… 사회통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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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무원인 팜튀퀸화(35·여)씨는 10년 전 한국에 유학생으로 왔다가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베트남 현지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그는 한국에서 국어교육 석사를 이수하고 서울시에 계약직 공무원으로 취업했다. 이후 5년동안 다문화가정 관련업무를 해오며 이주자들의 정착을 돕고 있다. 학교에 파견되는 외국인 강사를 선발해 관리하고 외국인 유학생들을 지원하는 등의 일이 그의 주요 업무다. 팜튀퀸화씨는 “이주자라고 하면 불쌍하고 얻어먹기만 하는 이미지가 대부분”이라며 “나 뿐 아니라 대다수의 이주자들은 정당한 노동을 지불하고 세금을 내며 한국사회에서 제 몫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8일 서울시 중구 서울광장에 세계이주자의날을 맞아 이환권 작가가 설치한 다문화자녀 3남매의 모습을 묘사한 조각 작품이 설치돼 있다.
*사진제공=국제이주기구(IOM) 제공


◆세계이주자의날 15주년…한 몫하는 이주자들

18일은 유엔 총회가 세계이주자의날을 선포한 지 15주년이 되는 날이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숫자는 2015년 7월 기준 174만 1919명으로 5년 전인 2011년 126만5006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는 아직 이들을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정서가 팽배하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사회의 빈틈을 채우는 이들에게 객관적인 평가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리핀에서 정부추천 장학생으로 국내에 들어온 리고(29)씨는 현재 한국 내 정책관련기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학교에서는 모두 잘해주는 편이었지만 캠퍼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피하기도 했다”며 “그러다가도 내가 영어를 잘하면 다시 존경하는 듯 시선이 바뀌더라”고 말했다. 리고씨는 자신을 포함한 이주자들은 한국사회에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몫을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어를 하지 못하거나 단순 노동을 하는 이주자들은 기여도와 상관없이 차별받는다”며 “대부분의 노동이주자들은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분들이고 경제적으로도 일조하고 있다”고 차별의 부당함을 설명했다.

◆단일민족 인식과 부처간 업무 비효율이 원인

한국이 이주자에 배타적인 데에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단일민족이라는 인식과 이주자를 받아들이는 특별한 기준 및 방향이 없었던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부처별로 나뉜 이주민관련정책이 불협화음을 일으킨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이주민 관련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곳은 법무부, 여성가족부, 행정자치부, 교육과학기술부,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수산식품부, 고용노동부, 통일부, 보건복지부 등 총 9개 부처에 이른다. 관련위원회만 해도 5곳이다. 업무간 중복이 일어나거나 분야가 다른 업무간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주자컨트롤타워를 마련하자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실은 “1993년 산업연수생제도를 도입해 국내 3D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있지만 불법체류와 인권유린 등의 사회문제가 발생했다”며 “다문화가정의 경우에도 이혼, 가정폭력 등의 문제를 통합해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민자와 내국인의 갈등을 해결하고 적극적으로 이민자의 사회통합을 이끌어내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주자에 대한 인식개선 시급

전문가들은 이주자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식개선 노력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박미형 국제이주기구(IOM) 소장은 “매번 이주자 문제가 불거지면 명확한 인과관계 등 사실에 기반한 토론이 이뤄지기보다 편견이나 잘못된 정보가 더 부각된다”며 왜곡된 반이주자정서를 지적했다. 박 소장은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는 현재 상황에서 이주자 유입은 불가피하다”며 이를 위해 “이주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지금과 같이 여론의 눈치를 보는 일시적인 정책은 국내에 들어오는 이주자나 한국인, 한국사회 어느 한 곳에도 좋을 수 없다”며 “열린 자세로 이슈를 공유하고 담론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지수 기자 v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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