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10명 중 8명 “외국인 노조가 뭐예요?”

김해시 동상동 외국인들이 말하는 ‘외국인 노조시대’

▲ 지난 6월 29일 김해시 동상동 종로길(외국인 거리)의 한 음식점 앞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걸어가고 있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외국인 노동조합 시대가 열렸다. 지난 6월 25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외국인이거나 취업자격이 없는 사람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며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인정했다.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2005년 6월 소송이 제기된 지 10년 만의 결론이다. 이 판결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의 심경은 어떨까.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경남 김해시 동상동 외국인 거리를 찾았다. 동상동 외국인 거리는 ‘제2의 이태원’으로 불리는 외국인들의 번화가다. 인근에 근무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퇴근 후나 주말에 우르르 몰려든다.

지난 6월 29일 오후 4시, 동상동과 서상동 경계의 골목 입구에 세워진 흰색의 아치형 조형물을 통과하자 외국어로 된 형형색색의 간판을 단 가게들이 양쪽에 줄지어 나타났다. ‘We love you’ ‘안녕하세요’라고 쓰인 팻말은 이곳이 외국인 거리임을 알렸다. 턱수염을 기른 외국인들이 두셋씩 무리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곳은 주로 동남아인들을 위한 생필품을 파는 ‘아시안 마트’와 외국인을 위한 휴대폰 매장, 음식점 등 외국인 상점 100여곳이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메카’다.

저녁이 되자 외국인 노동자들이 퇴근 후 이곳으로 하나둘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나는 6월 29일 저녁부터 다음 날 오후 6시까지 길거리 혹은 김해이주민선교교회에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에게 외국인 노조 설립에 대해 물어봤다. 2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 중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외국인 노조 설립이 가능하게 됐는데, 알고 있습니까?” 물으면 대부분 “그게 뭔데요?” 하는 반응이었다.

김해에 있는 한 대기업에서 제조업 근로자로 일하는 이주노동자 무시 무하마드(41·방글라데시)씨는 “한국에 들어와 일을 한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노동조합이 뭔지 모른다”며 “돈을 벌어 본국에 돌아가는 게 목표일 뿐 다른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5년 미만을 체류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대해 잘 모른다. 어려운 한자어로 된 관련 문서를 읽을 한국어 능력이 부족한 데다 토요일, 때로는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고된 노동 탓에 여유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로 인해 외국인 노조 설립의 문이 열린 건 맞지만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노조 결성이 허용된다고 해서 취업 자격이 주어지거나 국내 체류가 합법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노동권 인정과 국내 체류의 합법화는 별개의 문제임을 명확히 했다. 소송을 제기한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조(이주노조)의 우다야 라이(44·네팔) 대표는 주간조선에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라고 해도 노동을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면 노동자성이 성립함을 대법원이 인정했다”며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모두가 자신의 권익을 합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공식적으로 열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이들을 돕는 단체들은 이번 판결을 대체로 환영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노조 활동을 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반응이었다. 동상동 외국인 거리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의 노동자 호강억(27)씨는 “우리 입장에서는 반가운 판결이지만 (내국인이라 해도) 노동조합을 세우는 이들에게는 사용자가 해고나 기타 방법으로 보복하는 경우가 많은 걸로 안다”며 “추방당할 위험이 항상 있는 불법체류자가 적극적으로 노조 활동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충남 논산에서 5년 넘게 일하다가 김해로 옮겨온 모한 싱티칼리(34·네팔)씨는 “불법체류자라고 해도 일을 하면 돈을 받아야 하는 만큼 임금이 체불되거나 폭행 등 문제가 생길 때 여럿이 모여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건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불법체류자 단속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김해이주민인권센터의 김형진 대표는 “바람직하면서도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해 제도개선의 역할을 하는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면서도 “현재 외국인 노동자들을 둘러싼 사회적 여건이 우호적이지 않아 현실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산업현장을 생각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해 지역의 기업들과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고용을 알선하는 김해외국인력지원센터의 정명희 센터장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업체는 자금력이 부족한 한계기업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노조를 설립해 ‘8시간 이상 근무 불가능’이나 ‘주말 근무 불가’ 등을 요구하면 바로 공장문을 닫아야 하는 업주들이 많다”고 했다. 또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3년짜리 단기비자로 들어오기 때문에 아무리 길어도 10년, 사업주의 요청이 없으면 3년 이상 입국해 있을 수 없는데 노조를 세운다고 해도 연속성이 유지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이 인권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외국인도 노조를 설립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아직까지 한국 실정에는 시기상조라는 반응도 있었다. 김해시 주촌면에 위치한 공단의 제철설비 업체에서 총괄업무를 담당하는 장모(57)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을 수 있는 임금체불이나 멸시·폭행 등 부당한 처우 개선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는 당연히 노조 설립을 허용해 줘야 한다고 본다”며 “다만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조를 내세워서 과도한 처우 개선이나 요구를 할까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철판소재 절단업체를 운영하는 이정우(50) 대표는 “한국에 체류하는 자체가 불법인 불법체류자가 노조를 설립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현재 최저임금 인상 논의도 있고 종업원들의 요구가 많은 상황에서 이렇게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조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회사와 종업원들이 현실적으로 상생할 수 있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노조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불법체류자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해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쉼터와 교회를 운영하는 수베디 여거라즈(43·네팔) 목사는 “불법체류자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가 생겼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을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앞으로 더 심해지는 과정에서 불법체류자들이 사용자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했다.

수베디 목사는 “노조 활동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단속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만큼 불법체류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활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불법체류자 문제가 먼저 해결된 상태에서 이러한 판결이 나왔다면 훨씬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체류 자체가 불법이라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항의하기 어려운 불법체류자가 많은 게 근본적인 문젠데 이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노조 활동을 허가한다는 판결만 내려진 것은 순서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그는 “불법체류자도 노조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일부 이주노동자들이 ‘앞으로 불체자 단속을 더 이상 안 하는 것 아닌가’라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우다야 대표는 이에 대해 “현행 고용허가제하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용기간을 연장하거나 기간 종료 후 재고용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동의가 필수적이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조 활동을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사업주들에게 몰린 권한을 노동자들에게 분산시키기 위한 고용허가제 개정을 정부에 요구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어 “나아가 근본적 문제인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을 합법화하는 방안을 정부에 정식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김해시 동상동 외국인 거리

주말이면 외국인들로 발 디딜 틈 없어


경남 김해시는 경기 안산 일대와 함께 국내에서 손꼽히는 외국인 노동자 밀집지역이다.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1만7929명(출입국관리소 등록신고자 기준)의 외국인이 김해에 살고 있다. 김해시 인구의 3%가 넘는다. 주로 제조업·건설업·농축산업 등의 분야에서 단순노동직에 종사한다. 이들은 한림면, 주촌면, 생림면 등 김해 외곽의 공단 지역에 거주하면서 주말이면 동상동의 외국인 거리를 찾는다. 공단에는 7000개가 넘는 기업들이 들어서 있다. 사장까지 합쳐도 근로자가 10명을 넘지 않는 영세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1980년대까지 동상동 일대는 김해의 대표적인 번화가였다. 극장과 술집이 즐비해 젊은이가 모여들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내외동과 삼계동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상권이 이동하면서 동상동 일대는 침체에 빠졌다. 내국인이 빠지면서 상가 권리금이 내려간 자리에 외국인들이 하나둘 가게를 열었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 중고 휴대전화 매장이 가장 먼저 문을 열었고, 생필품 매장들이 생기면서 주위에 외국인들이 몰려들자 이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들이 개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인 거리가 조성됐다. 2010년 김해시가 약 20억원을 들여 간판과 도로를 정비하고 차 없는 거리로 꾸미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정식 명칭은 김해 동상동 종로길이지만 김해 로데오 거리 혹은 외국인 거리로 더 알려졌다.

김해에서 나고 자란 상인 류혜영(39)씨는 “김해뿐만 아니라 창원, 부산 등 주변의 대도시 공단에서 오는 외국인도 많다”며 “주말이면 거리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주말이면 수백 명의 외국인들이 생필품을 사고 사교 활동을 위해 방문한다. 재래시장인 김해중앙상가와도 지척이다. 건물 곳곳에 마련된 이슬람 모스크에서는 외국인들이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대부분이 우즈베키스탄과 중국·베트남 등 아시아계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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