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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 여성노동자들 저임금·차별에 겹시름…절반이 ‘기러기 엄마’

등록 :2016-01-12 16:03수정 :2016-01-1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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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시(연줄)가 있어야지. 중국 사람이 아무리 여기서 일 잘해도 승진하기 어려워요”

중국동포 ㄱ(52)씨는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먼저 자리를 잡은 남편을 따라 4년 전 영주권자 가족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속옷공장에서 일한다. 중국동포가 대부분인 이 공장에서 한달에 116만원을 받는 ㄱ씨는 “중국 사람들은 아무리 잘해도 괜히 시비를 거는 것 같다”며 “중국 사람에 대한 차별이 분명히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중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영주권자인 남편과 한국에서 살면서 인쇄공장에서 일하는 ㄴ(33)씨도 “월급이 최저임금을 못 벗어난다”며 “말투가 달라서 사무직은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같은 민족’, ‘동포’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노동해 온 중국 출신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비슷한 지역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한국 출신 노동자들에 비해 열악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중국 출신 노동자들에 대해 ‘동포적’ 차원이 아닌 ‘노동권’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로구근로자복지센터가 박우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팀에게 연구용역을 맡긴 ‘중국 출신 여성 노동자의 노동시장과 생활세계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이 연구는 중국동포가 밀집해 있는 서울 구로·금천·영등포 등 서울 서남부권 중국 출신 여성 노동자 278명과 한국 출신 여성 노동자 198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9~10월에 진행됐다.

연구 결과를 보면, 중국 출신 여성 노동자들은 한국에서의 정착을 위해 서울 남서부지역 공장에서 월 평균 165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주당 56시간씩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출신 노동자의 시급은 5549원으로 한국 출신(5850원)에는 물론, 법정 최저임금(5580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규직 비중은 26.6%로, 한국 출신(51%)의 절반에 그쳤다. 중국 출신 제조업 노동자들은 가장 시급한 환경개선 과제로 임금(19.1%)보단 승진(37.1%)을 꼽았다. 한국 출신 노동자 28.9%가 임금을 꼽은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들이 인식하는 ‘승진’은 정규직 채용이기 때문에 이같은 답변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인권침해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응답한 중국 출신 노동자는 73.9%였는데, 한국 출신의 40.9%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특히 ‘왕따를 경험’한 한국 출신 제조업 노동자는 3%에 그쳤지만, 중국 출신은 20.5%가 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한국 국적으로 휴대폰 케이스 공장에서 일하는 ㄷ(26)씨는 “(관리자와 문제가 생겨도) 한국 사람한테 얘기 못해고 그냥 우리(중국 출신)끼리 얘기하고 만다. 나이가 어려 친구도 별로 없다”고 했다. 실제로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중국 출신 노동자들이 문제해결의 대화상대로 꼽은 ‘동료’는 중국동포가 52.5%, 한족이 24%인 반면 한국인은 6.1%에 그쳤다. 그만큼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중국 출신과 한국 출신 사이에 소통이 안 된다는 뜻이다.

또 응답한 여성 노동자의 상당수는 ‘기러기 엄마’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40대 여성 노동자의 경우 95%가 아이가 있다고 응답했지만,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절반(50.8%)에 그쳤다. 응답자 대부분(65%)은 가족이 5명이었지만, 혼자 산다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에 가까웠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본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다른 이주노동자들과는 달리, 체류하는 기간이 늘수록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점을 들어, 한국으로 가족을 불러들여 ‘정착’하려는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이는 방문취업·가족방문·재외동포비자 등 체류·왕래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연구에 참여한 박준도 ‘노동자의 미래’ 정책기획팀장은 1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동포적 동질성에 기반한 산업인력 정책은 한국계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시혜적 정책인 듯했지만 사실상 중국 출신 노동자들은 다른 이주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내국인 노동자보다 더 열악한 노동과 생활환경에 노출됐다”며 “‘동포적’ 차원보다는 ‘노동권’적 차원으로, ‘비숙련 외국인 산업인력’보다는 ‘주민’으로 보고 사회·복지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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