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한 차별의 그물 … ‘졸부적 인종주의’ 넘어서려면
책을 말하다_ 『한국인의 국수주의 그리고 인종주의(Nouveau-riche Nationalism and Multiculturalism in Korea: A Media narrative Analysis)』 London and New York|Routledge|2015
2015년 10월 19일 (월) 15:53:22 교수신문 editor@kyosu.net

한국사회 내에는 외국인들이 이주해서 삶의 기회를 찾기 이전에 이미 ‘토종 한국인들’이 서로 차별하는 문화가 깊이 정착돼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사회에 외국인이 ‘끼어들기’는 매우 어렵고 그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 바로 한국적 인종주의다.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모나쉬대 언론정보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한국계 호주학자 한길수 교수가 최근 루틀리지출판사에서 Nouveau-riche Nationalism and Multiculturalism in Korea: A Media narrative Analysis를 출간했다.

한 교수는 이 책의 집필 배경과 동기, 책의 의미와 방법론, 시사점 등을 정리해 <교수신문>에 기고해왔다.

인도와 호주에서 공부한 그의 개인적 전력에서 알 수 있듯, 한 교수의 이 책은 다인종·다문화사회로 접어든 한국사회의 이민정책, 다문화정책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한국의 다문화주의를 가리켜 ‘졸부적 국수주의·인종주의’라고 개념화한 한 교수의 이 책이 공론화될 수 있기 바란다.

집필동기와 배경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나그네의 길을 걷게 된다.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살거나, 타향에 정착하거나, 또는 ‘남의 나라’를 제 2의 고향으로 선택해서 살고 있거나 상관없이 그렇다. 한국 땅을 떠나지 않아도 한국인의 국수주의적인 태도에 비판적 시각을 키우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필자는 20대 중반에 인도에서 유학을 하면서, 그리고 인도를 여행하면서부터, 한국에서의 교육과정을 통해서 마음 깊숙이 주입된 나의 국수주의는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1985년 비행기를 타본 것도, 해외에 발을 디딘 것도 처음이었던 필자는,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간직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을 계속 간직한다는 것은 나 개인의 노력이어야 할뿐만 아니라 이미 체계화된 사회·정치적 그리고 인종적 위계질서에 의해서 밀접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됐다.

필자가 공부했던 인도 네루大에는 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일본이나 미국, 선진 유럽 국가보다는 아래, 대부분의 아시아·아프리카 대륙의 나라들보다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 출신국가들의 학생들이 대화하는 내용들을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시아·아프리카 친구들이 경제적으로 도약하는 한국에 관심을 가져주는 덕분에 나의 조국에 대한 자부심도 부분적으로 지켜질 수 있었다.

1988년 필자는 호주에서 유학을 계속하게 됐다. 유럽의 백인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호주에서는 그나마 인도에서 간직했던 자부심마저 더욱 왜소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호주 정부는 1973년 악명 높은 백호주의를 폐지하고 다문화주의의 새 시대를 열었다.

호주의 다문화주의는 지난 40여 년 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비교적 국제적으로 귀감이 되는 다문화주의를 이끌어 가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호주의 다문화주의에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다양한 문화 출신의 사람들이 호주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백인들과 교류하면서 서로 간에 존중하고 삶의 기회를 공유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다양한 문화·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난민, 유학, 또는 이민을 통해서 나름대로의 ‘오스트레일리안 드림’을 이루고 만족스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호주의 다문화주의는 본래의 취지를 고려해 볼 때, 특히 실천적인 면에서 수정 보완해야 할 부분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호주의 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의 고민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필자도 그중의 한사람으로서 호주의 인종주의에 대한 ‘불평’과 개선을 위한 제안을 학술지를 통해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데, 필자가 한국을 떠난 이래 경제발전을 거듭하면서 한국사회도 어느덧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1990년대 중반 한국을 방문해 지하철을 타 보면서부터다. 전에 없었던 영어 안내방송 그리고 다양한 문화 출신의 사람들을 지하철에서 접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중반엔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에 여행하면서 ‘돈의 위력’을 과시하며 추태를 부린다는 신문보도를 셀 수 없이 접했다. 또한 성공회대의 인도인 연구교수 후세인 씨를 비롯한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겪은 인종주의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보도됐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다문화사회를 표방한다는 것을 알고 호주의 학자들도 한국의 다문화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한국사회에는 다인종이 존재할 뿐이며, 한국인이 말하는 다문화주의는 일반적으로 학자들이 말하는 다문화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한국인들만의 다문화주의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필자는 한국의 다문화주의, 특히 인종주의에 대해 학문적 관심을 갖게 됐고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

또 다른 동기는 필자가 한국계 호주인으로서 한국사회가 발전, 변화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이래 국제사회에서 정치·경제학적 위상이 높아졌으며,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해 어엿한 선진국이 됐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를 극복했지만 그 이후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과 고통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됐다. 다르게 말하면 여타의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넘어야 할 고개들이 많다.

이러한 측면에서, 필자는 한국계 호주인 학자로서 고국을 ‘사랑’하는 표현의 한 방법으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 이 책의 결론에서 희망하듯이 한국이 더욱 발전하고 홍익인간의 이념이 구현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기존 연구의 문제점과 책의 핵심내용

한국의 다문화주의에 관한 연구문헌을 보면 한국으로의 이주자들이 누릴 수 있는 정치·경제적 권리에 대한 법률 제정 등이 여타의 나라들 못지않게 앞서 있으며, 외국인 신부 등이 한국사회에 잘 동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제도가 확립 실천되고 있음은 매우 귀감이 되는 사실이다. 한국에 3년여 이상 거주한 이래 한국으로 귀화한 새 이주자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것도 그 한 예다.

이 같은 현상은 정부로부터 막대한 연구비를 받아 정책수립에 기여하고자 하는 학자들의 ‘자연스런’ 반응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한국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기 위한 노력은 있었지만, 한국의 다문화주의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고민과 토론의 장에서는 ‘새 한국인들’이 제외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동안의 한국의 다문화 연구는 대부분이 정책연구를 통한 다문화주의 확립에 치중돼 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의 다문화주의의 현주소는 무엇이며, 특히 한국으로 이주한 ‘새로운 한국인’이 경험하는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어떠한지에 대한 성찰(reflection)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한국의 다문화정책과 연구는 한국사회와 한국인이 어떻게 변화해 ‘새로운 한국인들’이 기존의 한국인들과 서로 협력해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심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정책개발을 위한 연구를 잠시 중단하고, 다문화주의의 근본 원리라 할 수 있는 다인종간의 ‘포함, 존중 (inclusion, respect)’에 관심을 두고, 한국에서 외국인이 경험하는 인종주의, 다문화주의에 대해 고찰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삼아 이 책을 집필했다.

필자가 나름대로 이론화 작업을 통해 발전시킨 개념이 이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경제발전을 근거로 한 ‘졸부적 국수주의·인종주의’다. 이 개념은 이미 19세기 전후의 식민주의를 통해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 미국, 일본, 호주에 의해서 실행된 바 있고,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근년에는 싱가포르나나 홍콩,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나의 나라’가 경제발전을 통한 위치상승을 하면서 ‘나의 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후진국의 사람들을 차별하게 된다는 개념이다.

어느 나라든지 차별과 배타의 근거가 되며 타인의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문화적·역사적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한국인들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일본인들과 미국인들을 접하면서 나와 타자를 구분 짓는 경향이 형성된 것으로 학자들은 말한다. 1970년대나 1980년대에 흑인병사들을 차별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근거로 한 차별이라기보다는, 외부세계와 비교적 단절됐던 한국인의 무지나 편협한 소견에 근거한 것으로 판단된다.

게다가 지난 20여 년 간 한국의 인종주의가 극단적인 모습을 띠기 이전의 한국사회가 가지는 특성을 고찰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테면 한국의 지역주의, 순혈주의, 학벌주의, 이념논쟁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특성들이 한국의 정치·경제·문화적 발전의 발목을 쥐고 있는 요소들 중의 하나임은 물론이고, 수많은 개인들의 삶의 기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도 물론이다. 말하자면, 한국사회 내에는 외국인들이 이주해서 삶의 기회를 찾기 이전에 이미 ‘토종 한국인들’이 서로 차별하는 문화가 깊이 정착돼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사회에 외국인이 ‘끼어들기’는 매우 어렵고 그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 바로 한국적 인종주의인 것이다. 199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발전된 한국사회에서 외국인들이 정착해 살면서 경험하는 차별들이 ‘졸부적 인종주의’에 근거한다는 시각이 이 책의 주요 논지다.

접근 방법론과 책의 시사점

이 책은 로이 바스카가 제창한 비판적 사실주의에 근거한다. 한국사회에 오랜 세월 뿌리내린 구조적 특성을 먼저 고찰하고, 특정 사회현상이 어떻게 해서 출현하게 됐는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책에는 천여 개가 넘는 미디어 리포트를 엔비보(NVivo)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그라운디드 이론(grounded theory)의 원칙을 바탕으로 분석했다.

한국사회에서 한국인과 이주인이 주어진 사회의 틀 안에서 어떻게 삶의 기회를 추구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한국사회의 다문화주의·인종주의를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또한 이 책은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미디어 리포트를 한국계 호주인 학자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의 이민자로서 그리고 이민 사회학자·미디어 학자로서의 관점이 반영돼 있음은 물론이다.

흔히 다문화를 비판하는 말에 ‘다문화주의가 제대로 실천되는 나라는 없다’는 게 있다. 이는 다문화주의가 도입돼선 안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언급자체는 역사성이 지극히 부족하다. 다문화주의를 ‘도입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질문은 세계화의 흐름을 거슬러서 한 나라의 경제가 건재할 수 있느냐는 질문과 맥을 같이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질문은 ‘어떻게 하면 다문화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을까?’다. 또한 이 책은 인종주의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경험돼지는지 사례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필자가 ‘한국사회야말로 지독한 인종주의 국가라고 주장한다’는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한국의다문화주의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져 보는 것은, 필자 못지않게 이미 한국의 미디어와 소수의 학자들이 한국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앞으로의 방향을 제안했듯이 정부의 이민자 정책이 정부 부처의 실적위주보다는 이민자들의 실질적인 혜택을 기준으로 성공여부를 평가해야 할 것이며, 지역정부가 나름의 정책을 펼 수 있는 기회를 증진해야 하며, 국회에서 오래도록 표류하는 차별법이 통과돼야 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역시 해결해야 하며, 미디어가 외국인들에 대해 보다 공정한 보도를 시작한다면 한국의 다문화 사회는 희망을 가지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그 결과의 열매를 누리는 것은 한국에 사는 나그네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다.

한길수 호주 모나쉬대 언론정보학과

필자는 인도 네루대에서 사회학 석사를 하고 호주 뉴잉글랜드대에서 사회학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연구분야는 종교·의료·이민·미디어 사회학이다. Gil-Soo.Han@monash.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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