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노동 내몰리는 캄보디아 이주여성들


'지구인의 정류장'에 머물고 있는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

(안산=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12시간 일하면서 쉬는 시간은 고작 밥 먹는 20분 정도였어요. 한 달에 이틀 쉬고 매일 일하고 월급 110만 원 받았어요. 사장님의 동생은 제 엉덩이를 자주 만졌어요."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 라이썬 나이(27.여) 씨는 지난해 경기 포천의 한 농장에서 7개월간 일했다. 상추와 배추 등을 키우는 비닐하우스 일이었다. 한여름 비닐하우스 안은 찜통처럼 뜨거웠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참고 묵묵히 일했다. 고용주의 동생인 50대 남성에게 수시로 성추행을 당했지만, 그마저도 꾹 참았다. 그렇게 견뎠지만 엉성한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추운 겨울을 날 수는 없었다.

"숙소는 난방이 전혀 안돼 너무 추웠어요. 난로 하나 없었어요. 사장님한테 춥다고 말하니까 요를 더 깔라고 했어요. 감기에 걸려서 계속 약을 먹고 일했어요. 도저히 더 버틸 수 없어 캄보디아 친구로부터 '지구인의 정류장' 얘기를 듣고 짐을 싸서 나왔는데, 사장님은 마지막 두 달 반 동안 일한 기간은 돈도 주지 않았어요."

경기 안산의 이주노동자 쉼터인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만난 캄보디아 여성들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자신들이 일터를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털어놨다.

경기 양평의 한 버섯농장에서 1년간 일했다는 깐 버흐(31.여) 씨와 완쏭 나이(35.여) 씨는 무게가 12㎏에 달하는 버섯 상자들을 쉼 없이 운반해야 했다. 원래 남자들이 하는 일이었다. 근로계약서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고 한 달에 4일 쉬는 것으로 돼 있었지만, 고용주는 아침 7시30분부터 저녁 6시30분까지 일을 시키고 한 달에 이틀밖에 휴일을 주지 않았다.

"매일 무거운 버섯을 나르면서 어깨가 너무 아팠다"고 두 사람은 말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느냐고 묻자 두 사람은 "캄보디아에 식구가 많다. 가족들을 돌보려면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지구인의 정류장'에 캄보디아 여성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3년 전부터였다. 과거에는 경기 지역 공단 등지에서 일하는 남성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느 새 농촌 지역에도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많아졌던 것이다.

캄보디아 정국이 불안해지고 경제난이 심해지면서 많은 여성들은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왔고, 노동력 공백이 생긴 농촌에서 더 싼 노임으로 일자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캄보디아 이주여성들에게 코리안 드림은 곧 악몽이 됐다.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우리말도 거의 못해 누구를 찾아가 부당함을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일하면서 묵은 숙소. <<'지구인의 정류장' 제공>>

그렇게 견디다 못해 이주민 쉼터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안산의 한 공동주택에 들어 있는 '지구인의 정류장'에는 지난해 여름 캄보디아 출신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남·여의 공간을 분리했고, 올해 초 여성들을 위한 새 쉼터를 마련했는데, 두 달도 채 안 돼 수용 인원이 30여 명으로 늘었다.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씨는 이들이 보여준 근로계약서와 휴대전화 속 사진을 통해 이들이 얼마나 노예 같은 취급을 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A 씨의 경우 지난해 10월 309시간(29일) 일했고, 지난해 법정 최저임금인 4천860원 기준으로 계산하면 그가 받아야 할 최저임금은 150만1천740원이었지만, 실제로 그가 받은 돈은 116만2천300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규정상 이주노동자들은 작업장을 마음대로 선택하지도, 옮기지도 못하게 돼 있어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다 못해 직장을 나가면 곧바로 '미등록' 상태가 되고 이 기간이 3개월 이상이면 '불법' 체류여서 '지구인의 정류장'에 임시로 머무는 여성들도 기한 안에 다른 일터를 찾아 들어가야 한다.

나이 씨는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 힘들게 일하고 돈도 못 받으니 마음이 너무 안 좋다. 한국 사장님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쁘게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토했다.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이주와인권연구소, 한국이주인권센터 등과 함께 조사해 발표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2년 12월 기준으로 국내 농축산업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는 1만6천484명. 이들은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근로시간과 휴게·휴일에 관한 규정,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가입 규정에서 제외돼 있다.

독립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던 김 씨는 10여년간 이주노동자, 이주민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으면서 안산에 정착해 이주민들에게 영상을 교육하는 '지구인의 정류장'을 만들었고 상담소·쉼터로까지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들려 준 이야기는 믿기조차 힘들었다. "주한캄보디아대사관 직원에게 들었는데, 작년 겨울에 농촌의 컨테이너에서 지내던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3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고용주들은 그냥 자다가 죽었다고 하는데, 고된 노동과 추위를 견디지 못해 앓다가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노동부와 해당 지역 고용센터는 근로기준법 위반 증거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mina@yna.co.kr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