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씨가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최근에 건네받은 사진.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두 명은 충남 논산에 있는 한 농장에서 9개월여간 일하다 더 참지 못하고 나왔다. 사진 속 비닐하우스 안의 농기계 뒤쪽에 있는 작은 가건물이 이들에게 제공된 숙소다.

장시간 노동에 최저임금도 못받는 현대판 '농노'

<※ 편집자주 = 국내 농축산업 분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수가 2만 명에 달합니다. '3D' 업종으로 꼽히는 국내 제조업의 노동력 공백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웠듯, 우리 농축산업 역시 외국인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 기반 자체가 영세한 농축산업 현장에서 이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이주노동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및 인권 실태와 제도적인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특집 기사 3건을 24∼26일 사흘에 걸쳐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경기 이천의 농장에서 일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차이 스레이 오운(24·여) 씨의 하루는 아침 6∼7시 시작됐다.

그는 비닐하우스에서 치커리, 상추, 겨자, 시금치 등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일을 했다. 6월부터 9월까지 비닐하우스 안은 찜통처럼 더웠고, 허리를 펴고 쉴 수 있는 시간은 점심을 먹는 30∼40분 정도였다. 10월에는 특히 일이 많아 하루 11시간씩 29일을 일하고 이틀밖에 쉬지 못했다. 한 달간 일한 시간은 309시간이었다.

하지만, 가장 일을 많이 한 10월에 차이 씨가 받은 월급은 118만5천100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법정 최저임금인 시간당 4천860원 기준으로 계산하면 그가 받아야 할 월급은 150만1천740원이다.

비닐하우스 일은 겨울로 접어든 11∼12월에도 별로 줄지 않아 하루 9∼10시간씩 꼼짝없이 일했다. 이렇게 두 달 동안 각각 246시간씩 일하고 받은 돈은 107만3천320원과 102만4천770원이었다. 법정 최저임금대로라면 119만5천560원을 받았어야 했다.

1월이 되어 일감이 확 줄자 고용주 이모(62) 씨는 열흘간 "일이 없다"며 차이 씨를 강제로 쉬게 하고 달랑 66만9천940원의 월급을 줬다. 차이 씨가 "휴업 급여를 주든지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근로계약을 해지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될 일이 아니었다.

이 씨는 "쉬는 동안 다른 곳에 다녀오라"며 숙소의 전기와 난방을 끊어버렸고, 차이 씨는 비닐하우스 가건물 숙소에서 혹독한 추위에 떨며 한겨울 추위를 견뎌야 했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씨가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최근에 건네받은 사진.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두 명은 충남 논산에 있는 한 농장에서 9개월여간 일하다 더 참지 못하고 나왔다. 사진 속 가건물 방 안이 이들이 잠을 잔 곳이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농노'와도 같은 삶을 산 차이 씨의 사례는 국내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3D 업종으로 분류돼 내국인 노동력이 빈 제조업 분야를 외국인 노동자들이 채웠듯, 1차산업인 농축산업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 몫을 해내고 있다.

24일 확인한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1월 말 현재 농업 분야 취업 비자로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총 1만7천603명(합법체류 1만4천267명, 불법체류 3천336명), 축산업 분야는 총 1천865명(합법 1천758명, 불법 107명)이다. 농축산업을 합치면 총 1만9천468명에 달한다.

성별 구성은 농업이 남성 1만1천724명, 여성 5천879명이고 축산업이 남성 1천830명, 여성 35명이다. 농축산업 분야의 여성 이주노동자 비율은 30.4%, 농업만 보면 33.4%나 된다. 이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주여성의 비율 9.6%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국내 농축산업에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온 것은 2003년부터다. 국내 농촌의 고령화와 함께 농축산업 분야 노동력의 공백이 생기면서 정부는 농업 부문에도 산업연수제를 도입했다. 첫해 923명이 외국인 농업연수생으로 들어왔고, 2004년 고용허가제로 바뀌면서 농축산업 분야 고용허가 쿼터로 그해와 이듬해 1천 명씩, 2007년 3천600명, 2008년 5천 명이 배정됐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들이 해외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외국인 노동자 쿼터는 계속 늘고 있다.

2012년 4천500명이던 것이 지난해 6천 명, 올해도 6천 명이 배정됐다. 고용노동부는 2012년까지 사업주에게 선착순으로 고용 기회를 줬는데, 농축산업 사업주들이 고용허가서를 발급받으려 고용센터 앞에서 장시간 대기할 정도였다.

지난해부터는 여러 항목의 평가지표에 따른 점수제로 바꿔 이주노동자를 배정하고 있지만, 농촌 일손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이주노동자들의 고용 수요는 여전히 높다.

그런데 사업장별 고용 규모가 2∼3명 수준으로 작고 지역적으로 고립돼 있는 농축산업 특성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고 최근에서야 뒤늦게 알려질 수 있었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인권 사각지대에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씨가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최근에 건네받은 사진.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두 명은 충남 논산에 있는 한 농장에서 9개월여간 일하다 더 참지 못하고 나왔다. 사진 속의 취사도구로 밥을 해먹어야 하는 열악한 생활 환경이었다.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 수가 2만 명에 육박하면서 이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가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지난해 10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조사 대상 이주노동자 161명 중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가 33.5%나 됐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계약 내용 자체가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경우가 61.1%나 됐다. 이 중 90.7%가 근로계약서보다 더 긴 근무시간을 강요당했고 17.3%는 휴일이 근로계약상 일수에 못미쳤다.

이들의 실제 근무시간은 월 평균 283.7시간에 이르고 월 평균 휴일은 2.1일에 불과했다. 이렇게 일하면서 받는 임금은 월평균 127만2천602원(남성 131만8천579원, 여성 117만7천995원)으로, 법정 최저임금 월 137만8천782원보다 적었다.

임금을 늦게 지급하는 경우가 68.9%, 아예 지급하지 않은 경우가 32.9%, 휴일 일당을 임금에서 공제한 경우가 26.1%, 벌금 명목으로 임금에서 일부를 공제한 경우가 12.4%였다. 시간 외 근로와 휴일 근로를 강제로 시킨 경우도 57.8%나 됐다.

특히 농한기가 있는 작물재배업의 경우에는 고용주가 임금을 주지 않거나 마음대로 해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농한기에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일부만 받았다는 응답이 23.1%, 아예 해고됐다는 응답이 12.4%였다.

농장에서 불법으로 노동자들을 다른 농장에 '빌려주고 돌려쓰는' 사례도 많았다. 설문 대상 161명 중 98명(60.9%)이 인근의 다른 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그 횟수가 '네 번 이상'이라는 응답이 71.4%나 됐다.

어느 이주노동자는 "사장이 나를 팔았다. 사장이 일당 6만 원을 받고 내게는 4만 원을 줬다"며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한탄했다.

mina@yna.co.kr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피폐한 현실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씨가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최근에 건네받은 사진.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두 명은 충남 논산에 있는 한 농장에서 9개월여간 일하다 더 참지 못하고 나왔다. 사진 속 비닐하우스 안의 작은 가건물이 이들에게 제공된 숙소다. 2014.3.24.

고용허가제 '사업장 변경 금지' 원칙도 한몫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릴 뿐 아니라, 최소한의 기본권마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작업량을 제 시간에 끝내지 못하면 고용주가 밥을 먹지 못하게 하거나(36.0%), 일 하는 시간에는 화장실도 못가게 했다고(9.9%) 증언했다.

이들이 머무는 숙소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또는 샌드위치패널로 지어진 가건물 형태가 67.7%에 달했고, 그마저도 사용료를 받아 임금에서 제하는 경우도 13.0%였다. 또 잠금장치가 없거나(44.7%), 화장실이 없거나(39.9%), 창문이 없거나(26.7%), 남녀 구분이 안 돼 있거나(16.2%), 난방시설이 없는(11.8%) 등 숙소로서 제 구실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지난해 5월부터 이달 1일까지 경기 이천의 한 농장에서 일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트리 삼밧(32·여) 씨와 함 스레이라뜨(34·여) 씨는 비닐하우스 안에 마련된 숙소에서 10개월 동안 지냈다.

스티로폼 샌드위치패널로 지어진 숙소는 방문에 잠금장치도 없었다. 난방시설이 변변치 않아 겨울에 실내온도가 5∼10℃에 머물렀고, 온수가 나오지 않아 한겨울에도 찬물로 씻거나 물을 조금씩 데워 써야 했다. 욕실은 없었고, 화장실은 실외 간이 재래식이었다. 부엌이나 취사시설도 없어 두 사람은 잠 자는 방에서 휴대용 버너로 음식을 해 먹어야 했다.

고용주 이모(70) 씨는 두 사람에게 6월과 7월 각각 280시간, 290시간 일을 시켜놓고 100만원씩의 월급을 주면서 "숙소 비용을 제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에서 22∼27만원 못 미치는 액수였다.

인권위 조사에서는 또 고용주로부터 폭언(75.8%)이나 폭행(14.9%)을 당하거나, 여성들의 경우에는 성폭력을 당한 경우도 30.8%나 됐다.


또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감기 등으로 몸에 병이 나도 보험이 없어 병원에서 치료받기 어려운 형편이다.

인권위 조사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 부담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경우는 18.5%에 불과했다.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못 갔다"는 응답이 43.5%였다. 병원에 못 간 이유는 비용 때문(57.1%)에, 시간이 없어서(54.3%), 고용주가 보내주지 않아서(18.6%)였다.

산재보험은 이들에게 그림의 떡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원칙적으로 모든 사업장의 사용자에게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시행령에서는 '농업, 임업, 어업 및 수렵업 중 법인이 아닌 자의 사업으로서 상시 근로자 수가 5명 미만인 사업'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사업주의 신청에 의해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임의 가입이 가능하지만, 국내 농촌의 영세한 실정에서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를 위해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다치면 고용주가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지만, 고용주들은 아주 큰 부상이 아니면 이주노동자들을 병원에 잘 데려가지 않는다.

법적으로는 국내 모든 사업장이 직장건강보험 가입 대상이지만, 고용주들은 이마저도 가입해 주지 않는다. 보험료의 절반을 고용주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주노동자들의 건강보험 가입률은 27.3%에 불과하다(국가인권위원회 2013년 실태조사). 이는 제조업을 포함한 이주노동자 전체 건강보험 가입률 70%(2009년 12월 말 기준,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비해 훨씬 낮다.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올 때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는 상해보험이 있긴 하지만, 큰 사고나 재해로 다친 경우에나 적용돼 일상생활에서 발생한 부상이나 질병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용허가제가 '사업장 변경 금지'를 원칙으로 하는 것도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은 기본 3년의 근로 기간에 세 차례까지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근로계약이 끝나기 전에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옮기기는 매우 어렵다.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해도 고용주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고, 고용노동부 지청에 진정을 넣어도 고용주에게 귀책 사유가 있음을 노동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고용주들은 본인의 귀책사유로 근로계약을 해지한 사실이 기록되면 신규 외국인 노동자 고용 신청 시 감점이 되는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본인의 귀책사유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 때문에 고용주들은 일이 적은 농한기에는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지 않으면서 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면 동의해 주지 않거나, 마음대로 노동자를 해고한 뒤 '합의에 의한 근로계약 해지'로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

고용주의 귀책사유일 경우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변경 3회 초과 금지 규정에서 예외 적용을 받지만, 고용주가 '합의에 의한 근로계약 해지'로 신고하면 3회 횟수 제한을 받는다.

이렇듯 이주노동자들의 불리한 여건을 이용해 일부 악덕 고용주들은 사업장 변경 동의를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고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사업장 이탈 신고를 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들은 '다른 사업장으로의 변경을 신청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허가를 받지 못한 외국인 근로자는 출국하여야 한다'는 법 조항 때문에 일부 고용주의 농단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인권위 실태 조사에서 설문에 응한 이주노동자 161명 중 사업장을 한 번 이상 변경했다는 경우는 절반 정도였는데, 이 중 11명이 사업장 변경을 위해 고용주에게 돈(평균 64만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응답자들의 65.0%는 '고용주가 옮기지 못하게 해서'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mina@yna.co.kr



작년12월 2013 세계 이주민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사장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두려움과 걱정없이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만들어 줄 것과 자유롭게 회사를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줄 것" 등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DB)

"제도개선·보완, 관계당국 관리·감독 강화"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이 떠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과 고용허가제 등 제도를 개선·보완하고, 당국이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 근로기준법이나 고용허가제에 대한 인식과 노동권·인권 의식이 미약한 농민 고용주들의 교육을 의무화하고,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기숙사를 만들거나 여성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긴급 쉼터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주노동자 숙소가 갖춰야 할 최소 기준을 마련하고 산재보험 임의 가입률을 높이거나 건강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정부 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 "근로기준법 제63조 개선" = 우선 농축산업을 비롯한 일부 업종에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 적용을 제외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제63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주노동자들은 국내 근로기준법상 엄연히 '근로자'이지만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63조 '적용의 제외' 조항은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업종으로 농림 사업, 축산·수산 사업 등을 명시해, 1일 근로시간 8시간 초과 금지나 1주일 근로시간 40시간 초과 금지, 연장근로 1주 12시간 제한 등의 근로시간 규정이 농축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1주일 평균 1회 이상의 유급 휴일도, 연장·휴일 근로에 대한 통상임금의 50% 가산 지급 규정도 제외된다.

게다가 농장주들은 출퇴근 시간, 노동 시간에 대한 개념조차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근로계약서에 하루 8시간이라고 적어 놓고도 3∼4시간 더 일을 시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0월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 상황 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올해 1월 말 발표한 정책 권고문에서 '근로기준법 제63조'와 관련해 법률 개정을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법 개정과 관련한 인권위 권고에 대해서는 내부 의견을 조율해 방침을 정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 "사업장 변경 사유 입증 책임 완화" = 노동계 전문가들은 사업장 변경 금지 조치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이 더 악화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노동건강연대에서 활동하는 공인노무사 정해명 씨는 "내국인 근로자에게는 사업장 이전의 자유가 당연하게 인식되는데, 외국인 근로자들은 아무리 처우가 나빠도 참아야 하는 실정이어서 고용주들의 횡포가 더 심해지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계절적 농업을 하는 사업주들은 농한기를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시기에 한시적으로라도 사업장·업종 변경 제한을 완화한다든지 하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도 "'외국인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과 관련해 근로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씨가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로부터 최근에 건네받은 사진. 농기계 뒷편의 작은 가건물이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다.

◇ "관리·감독 제대로" = 노동부 산하 각 지역 고용센터가 사업주들의 고용 실태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씨는 "고용센터 직원들이 불법적인 근로계약서에 대해서도 전혀 시정해주지 못한다"며 "얼마전 '지구인의 정류장'을 찾아온 한 이주노동자의 근로계약서를 보니 한 달에 280시간을 일하게 해놓고 임금은 226시간으로 계산해 놓았다. 이런 근로계약서가 노동부 전산망에 버젓이 등록돼 있는 실정"이라며 답답해했다.

그는 또 "이주노동자들의 체류를 보장하는 유일한 합법 서류가 근로계약서이고 이것을 관리하는 곳이 노동부 산하 고용센터인데, 여기서 불법적인 내용의 근로계약서가 시정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임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고용센터가 제 기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부 외국인력담당 관계자는 "1년에 상·하반기 두 번 근로감독관들과 함께 외국인 고용 사업장 3천여 개에 대해 합동 점검을 한다"면서 "최근 점검에서는 농축산업 분야의 최저임금 준수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연장근로, 임금 체불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노동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고, 농축산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 고용 실태 전반에 대한 특별 조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고용주 교육 의무화" = 농민들은 대부분 일당을 주고 한시적으로 일꾼을 써본 적은 많지만, 노동자를 제대로 고용해본 경험이 없어 근로시간에 대한 개념도 제대로 없고 '일꾼을 샀으니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식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에서 활동하는 박선희 공인노무사는 "고용주들의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농축산업의 경우 근로시간 제한이 없다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을 마치 노비 부리듯 한다"면서 "월급제로 누구를 고용해본 적이 없어서 관련 제도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라 근로기준법과 노동자 인권에 대한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외국인노동자 고용 업무를 위탁하는 산업인력공단이 관련 교육을 마련해 이를 수강하는 사업주에게 신규 외국인 근로자 배정의 가산점을 부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고용주들의 교육 참여율이 낮다.

◇ "여성 이주노동자 숙소·쉼터 지원" = 열악한 숙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공동 기숙사 건립을 정부나 농협에서 지원하는 방안도 하나의 대안으로 꼽힌다.

경기 지역의 몇몇 공단에서 제조업 이주노동자 공동 기숙사를 운영하는 사례가 있다. 정부가 산업 전반을 지원하는 측면에서 기숙사 운영을 보조해주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인권·노동단체 활동가들은 조언한다.

특히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숙소 문제가 인권 보호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만큼 숙소 문제 해결이 시급한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안산 이주여성노동자 지원 네트워크'를 꾸려 활동하고 있는 안산여성노동자회 김해정 회장은 "농촌 유휴 시설을 활용한다면 큰 비용 부담 없이 기숙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농협 차원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 일터에서 성폭력 등의 문제가 생기면 그곳을 나와야 하는데, 당장 갈 곳이 없다"면서 "이들이 당분간 거처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공간, 쉼터를 정부나 지자체가 마련해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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