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자, ‘뿌리 뽑힌 삶’의 경험 비슷해 돕고 싶어”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ㆍ미국서 이주민·빈민 운동 펴는 입양아 출신 에밀리 케셀

에밀리 케셀(28·사진)은 1986년 서울 근교에서 태어나 생후 4개월째에 미국 미네소타주의 교사 부모에게 입양됐다. 양부모는 사려깊게도 케셀의 첫돌에 한국식 돌잡이도 하게 해줬다.

케셀 가(家)의 유일한 키 작은 아시아인인 그가 지금 하는 일은 미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강제 추방을 막는 이주민·빈민 운동이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의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 사무실에서 만난 케셀은 “좋은 부모에게 입양된 데다 마침 그곳이 진보적인 미네소타주였다는 점은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네소타주는 캘리포니아주 못지않게 진보적 성향의 주라고 그는 말했다. 학교에서 자신과 같은 한국인 입양아들뿐만 아니라 라오스 몽족 난민 친구들이 많은 환경에서 생활한 그는 문화 다양성을 체화할 수 있었다. “왜 너는 가족들과 다르게 생겼니?”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다른 입양아들에 비해 정체성 위기를 덜 겪은 편이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뿌리를 찾고 싶어했고, 10대 후반부터 한국을 오가는 생활을 시작했다.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전공했고, 2010년엔 풀브라이트 재단 파견 영어교사로 강원도 평창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뿌리 뽑힌 삶’을 살게 된 케셀이 결국 정착한 곳은 지금 일하고 있는 단체다. 한국계뿐만 아니라 미국 내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정치적 권익 신장을 위해 일하는 단체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미등록 이주자들의 강제추방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미국 내 운동의 전면에 서있다. 2012년 미등록 이주자의 자녀들에게 추방을 유예해주는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이끌어낸 데 이어 지금은 포괄적 이민개혁법안의 통과에 전력하고 있다.

그는 최근 윤대중 사무국장과 함께 오리건·워싱턴·아이다호·콜로라도주 등을 버스로 돌면서 가족을 위한 단식(Fast for Families) 캠페인을 하면서 이민개혁법안 통과를 호소했다.

입양인들이 단체를 만들기는 하지만 자신을 받아준 국가에 무엇을 요구하는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계급운동의 성격이 강한 이민자 운동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는 “미등록 이주자들과 입양인으로서 내 경험을 서로 나누면서 똑같지는 않지만 겹치는 것이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몇 십년을 미국에 산 미등록 이주자들은 그들이 ‘미국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자신은 당당하게 ‘아시아계 미국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경위는 다르지만 가족과 흩어져야 하는 점도 비슷하다고 했다.

최근 메릴랜드주의 미국 가정에 입양됐다가 사망한 3세 아동 현수의 얘기에 매우 가슴 아파했다.

그는 “이상적으로는 한국이 이제 해외입양을 중단하는 것이 맞겠지만, 아직 싱글맘의 양육 여건 등 한국사회가 많이 준비돼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2012년 현재 한국은 중국, 에티오피아, 우크라이나, 아이티,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등에 이어 미국에 13번째로 많은 입양아를 보내는 나라다. 2011년 미국에 귀화한 한국인이 1만2664명이었던 데 비해 627명의 한국인이 미국에 입양됐다.

케셀의 한국 이름은 김인아이다. 아직 생모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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