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차별과 편견을 넘어
김철수  | 
 
   
 

10여 년 전 어느 날 저녁 필자는 노동상담이 있어 공단지역에 갔다가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켜지고 두세 명의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그 때 한 대의 차량이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다 행인들을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차량 운전자가 피해자를 살피려고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피해자 중 한 사람이 재빠르게 도망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필자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가는 피해자를 따라 잡았고 잔뜩 겁먹은 그 사람에게서 내막을 들어보니 필리핀에서 온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미등록이주노동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치료도 받기 전에 강제출국당할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 우리나라에는 동남아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와 우리 제조산업 분야에 부족한 일손을 채우고 있다.

청년실업률의 수치가 계속해서 늘어가던 때도 우리 청년들은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수출공단의 제조공장은 이주노동자 없이는 공장을 돌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IMF시기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고 줄도산 할 때도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공장들은 여전히 불을 밝혔다. 공장에 기숙사를 만들어 놓고 라면으로 연명하면서도 그들은 일하기를 원했고 결국 공장을 지켜낸 일등공신들이었다.

그러나 IMF가 끝나고 한국경제가 살아났을 때 누구하나 이주노동자들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법체류자라고 범죄자 취급을 하거나 값싼 중고 기계처럼 부려먹으면서 인권, 노동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비단 공장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친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치료가 우선인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피를 흘리면서도 도망을 쳐야만 했을까.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는 범죄피해를 당하더라도 합법적으로 구제받을 길이 막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입국관리법 제 84조를 보면 모든 공무원들은 민원서비스 도중 불법체류자들을 발견할 경우 1시간 내로 출입국에 통보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다문화사회로 깊숙이 들어선 대한민국에 거주외국인 숫자는 벌써 15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다행인 것은 최근 경찰이 늘어나는 거주외국인의 숫자만큼 늘어나는 외국인 대상 범죄를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열악한 인권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천명하고, 지난 3월부터 범죄피해를 입은 외국인이 소위 불법체류자라고 할지라도 피해자의 신상을 출입국에 통보하지 않고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다.

암담하기만 했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데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이 본연의 사명에 충실히 법 앞에 평등이라는 보편적 인권수호를 위한 지속적인 자구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 2010년 5월 인천지역의 이주노동자 센터에 ‘외국인 도움센터’를 만들어 범죄피해자인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까지도 민간단체와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해왔다.

우리는 UN 사무총장이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좋아하고 있다. 그러나 UN이 정한 국제기준들을 외면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기본적인 권리문제다.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서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은 경찰이 우리에게 보여준 새로운 모습과 같이 성숙한 시각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

차별과 편견을 넘어 이주노동자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던가 아니면 세계의 흐름에 역행해 여전히 현대판 노예제도를 고수하던가 우리가 답을 내려야 할 때다.

/김철수 목사,사랑마을이주민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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