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이주노동자의 그늘 (상) 열악한 근무환경
언어장벽·산재위험·부당대우에 고통
이곳이 대한민국 맞습니까?
김해 이주노동자 1만7000명
기사입력 : 2013-03-27    

김해시 주촌면의 한 공장 한켠의 컨테이너 박스 내부. 이곳에서 두명의 이주노동자가 생활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김해지역 이주노동자 숫자는 약 1만7000명이다. 경기도 안산시 다음으로 많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인이 꺼리는 3D 업종인 용접, 도장작업 등의 직종에서 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재해를 당할 가능성도 높고 마땅히 쉴 곳도 없다. 김해지역 이주노동자들의 현주소와 이들에 대한 지원대책 등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 27일 산업안전보건공단 경남지도원 등에 따르면 도내 이주노동자 재해자는 2011년 511명에서 2012년 532명으로 증가했다. 사망자도 2011년 10명에서 지난해 14명으로 늘었다.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가 증가하는 것은 이들이 주로 영세한 3D업종에 근무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재해 위험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 학대 등도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노동자 공익 법률 지원단체인 (재)동천이 지난 6일 이주노동자 12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외국인 근로자 주거환경 및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입국 전 기숙사 등 숙소에 관해 안내받은 응답자는 41.4%인 504명에 불과했다. 이 중 안내받은 내용과 실제 기숙환경이 다르다는 응답이 45.0%에 달했다. 특히 여성 외국인 근로자의 10.7%가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를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힘든 취업, 찾아온 산재, 실직 되풀이= 네팔인 하르캐(36) 씨는 입국 전 한국 돈 300만 원 (네팔 공무원 1년 월급)을 들여 한국어 수업을 3개월 들었다.

네팔에 있는 한국어 학원은 한국 입국 시험 대비반이 대부분이다. 한국 이주노동자 출신들이 만든 2000문제로 하는 ‘쪽집게 과외’ 수업이 주종을 이룬다. 이 때문에 비싼 강습비를 투입한 것에 비해 하르캐 씨의 한국어 능력은 거의 바닥 수준이다. 하르캐 씨는 지난 2008년 5월 김해지역으로 입국했다.

그는 김해고용센터로부터 받은 첫 고용알선 문자 메시지를 잊지 못한다. 문자 내용은 ‘JOB CENTER HARKE~ 님을 경남 김해시 소재 사업장(055-###-####)에 추천하였습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그에겐 해석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얼떨결에 문자에 적힌 전화번호를 누른 하르캐 씨는 더듬거리는 말로 ‘여보세요’라고 했다. 사업주가 어떤 설명을 했지만 그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화가 되지 않자 사업주는 전화를 끊어 버렸고 하르캐 씨의 첫 구직도 허무하게 끝났다.

한 달 뒤 하르캐 씨는 어렵게 김해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 취직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된 노동이었다. 처음 며칠을 제외하고 9개월여 동안 지속된 밤낮이 바뀐 야간근무는 하르캐 씨에겐 더욱 고역이었다. 때문에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심각한 우울증까지 겪었다.

하르캐 씨는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사업주에게 며칠 휴가 얘기를 꺼냈지만 사업주는 오히려 한국말로 호통만 쳤다. 하르캐 씨는 이렇게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다 한국에 들어온 지 10개월 만에 철골이 발등에 떨어지는 산재를 당하고 말았다.

그는 병원과 공장을 오가며 통원치료를 했다. 하지만 그의 숙소가 공장 내부 한편에 마련돼 있어 사업주에 눈치가 보여 2009년 4월께 그냥 공장을 나왔다.

그동안 하르캐 씨는 한 달 월급 150만 원 중 130만 원을 네팔로 보냈다. 그가 한 달 쓰는 생활비는 20만 원이 전부였다. 그는 2만 원짜리 여관 등에 살거나 이마저도 안되면 길에서 잤다. 한 달 뒤 새 직장을 구했지만 그의 근무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2012년 3월 방글라데시에서 온 슈만(32) 씨는 지난해 10월부터 김해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지만, 슈만 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살인적인 업무와 야근이었다. 야근 수당도 한국 사람의 3분의 1밖에 못받는데다가 2시간을 그냥 빼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슈만 씨는 지난해 12월 작업 중 팔을 심하게 다쳤는데 3일 통원 치료가 전부였다. 의사는 한 달은 쉬어야 한다고 권유했지만, 업주 눈치 때문에 진통제 몇 알만 먹고 일했다.

슈만 씨는 업주에게 부당한 처우와 열악한 근무환경을 항의하고 싶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업체 변경을 3번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업체를 한 번 변경한 슈만 씨로선 그냥 참고 일할 수밖에 없다. 슈만 씨는 올해도 진통제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경남이주민센터 이철승 소장은 “우리나라의 3D 업종을 책임지는 이주노동자들이 매우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국제 협약에는 이주노동자도 내국인에 준하는 복지를 보장하도록 하는 만큼 이주노동자를 한국 사회의 한 일원으로 대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영진 기자

 

 

김해 이주노동자의 그늘 (하) 대책은

일회성 행사 대신 실질적 지원을
외국인 정책 관련 예산
결혼이주여성에만 치중
기사입력 : 2013-03-29  



2012년 김해시의 외국인 관련 예산 중 다문화가족 지원사업비는 약 6억5000만 원이지만 이주노동자를 위한 지원 예산은 이 가운데 7~8%에 불과하다. 김해지역 이주노동자수가 1만7000여 명에 달하지만 시의 지원사업이 결혼이주여성에 집중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소외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고, 김해시만의 특화된 시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김해시의 이주노동자 지원을 위한 예산은 5200만 원에 불과했다. 이 중 90% 이상인 4600만 원은 일회성 행사인 이주노동자한국문화체험, 이주노동자한마음축제, 이주노동자체육대회 등에 사용됐다. 행사는 한국전통 음식 체험이나 사물놀이, 태권도 시범 등이 주를 이뤘다. 이런 행사는 매년 반복돼 일부 이주노동자는 아예 행사에 참여하지 않거나 보여주기식 행사에 불과하다고 불만이다.

이 같은 불만이 나오는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지원이나 정책을 원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인 자야라(28) 씨는 “지난해 안산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주최하는 크리켓대회가 열렸는데, 이곳에 스리랑카인 5000명 이상 모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시가 준비하는 이주노동자 축제는 한국인의 입맛에는 맞을지 모르지만 이주노동자가 원하고 즐길 수 있는 축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의 예산이 일회성 축제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 이주노동자 교육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김해시가 이주노동자를 위한 한글교실에 지원하는 예산은 600만 원으로 이주노동자 50여 명만 들을 수 있는 수준이다.

때문에 일부 축제 예산을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어 교육에 투입, 이들이 근로현장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한다.

또 이주노동자들이 쉬는 날을 이용해 치안교육, 범죄상황 대처법 등 체계적인 한국사회 적응 프로그램도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최장 4년 10개월 동안 한국 사회에 체류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범죄, 사고 등을 이런 프로그램으로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런 교육은 김해외국인인력지원센터와 민간 종교단체 2~3곳에서 맡고 있지만 시가 주도하는 이주노동자 한국 교육은 전무한 상태다.

김해시 관계자는 “김해지역에 이주노동자 수가 많은데도 창원이나 부산과 비교하면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며 “이주노동자들이 필요한 복지가 무엇인지 여러 각도에서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을 온정주의 시각으로 다루기보다 한국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가진다.

경남대 사회학과 이은진 교수는 “김해 제조업의 큰 축을 이주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적응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며 “이주노동자 예산을 재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분산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배영진 기자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