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 이민자 유입으로 해결될까?고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다른 유럽 국가보다 심각한 독일 정부가 발상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노인의 사회 활동을 권장하고, 이주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독일에서 자리 잡도록 최대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허은선 기자  |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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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호] 승인 2013.03.28  01:47:44
‘더 오래 산다(Wir leben langer). 인구가 줄어든다(Wir werden weniger). 구성원은 더욱 다양해진다(Wir werden vielfaltiger).’ 취재 중 만난 독일인은 모두 독일이 처한 인구 변화의 양상을 위 세 문장으로 요약했다. 노인 인구의 증가와 출산율 저하, 그리고 독일로의 이민자 수가 증가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문구들이다.

이번 취재는 독일 정부가 ‘독일의 인구 변화’라는 주제로 세계 각국 기자 12명을 초청해 이루어졌다. 취재단은 한국과 일본 등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 중인 아시아 국가들과 벨라루스·불가리아·체코·스페인 등 기타 유럽 국가의 기자들로 구성됐고, 한국에서는 <시사IN>이 참가했다. 취재진은 2월24일~3월1일 독일의 정부 부처 인사들과 하원의원 등을 만나 독일의 인구 변화에 대해 토론했다. 독일의 인구 변화 문제를 심층 보도하는 유명 블로거 저널리스트 비욘 슈벤트커의 강연도 있었다.

   
ⓒ시사IN 허은선
2월26일 요한나 반카 독일 교육부 장관이 “인구 변화를 기회로 삼자”라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자국의 고령화와 저출산이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심각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2030년이 되면 독일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50세 이상이고, 인구 3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2010년 현재 독일의 합계출산율은 1.39명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수이다. 합계출산율 1.23명(이는 초저출산국 기준인 1.3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으로 OECD 34개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한 한국보다는 나은 수준이지만 독일 정부의 눈높이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수준에 맞춰져 있었다. 출산 장려 정책에 힘입어 출산율이 1.5명에서 10년 만에 현재 1.98명으로 뛴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독일의 롤모델이다.

독일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출산율이 더 높은 이유에 대해서는 취재 중에 만난 독일 정부·의회·노동계·언론계 관계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독일의 양성평등 수준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보다 떨어지고 여성 직장인이 아이를 믿고 맡길 보육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이러한 저출산은 인구 감소로 이어진다. 독일연방통계청은 현재 약 8200만명에 달하는 독일 인구가 2060년에는 6500만~7000만명으로 줄어들리라 전망한다. 노동인구도 함께 감소한다. 현재 독일의 20~64세 인구는 약 5000만명 수준이지만 2030년이 되면 약 600만명이 줄어든다. 여기에 젊은 고학력층이 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스칸디나비아 국가 등지로 이민을 가면서 인력 유출 문제까지 겹쳤다.

“노인은 사회에 부담 주는 존재 아니다”

독일 정부는 발상의 전환을 하기로 했다. 인구 감소를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차라리 진행 속도를 최대한 늦추면서 이를 기회로 삼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시사IN 허은선
2월27일 독일 의회 가족분과위원회 의원들과 해외 취재진이 인구 변화에 따른 이민자 유입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 연방정부는 인구 변화에 대한 대응책 마련을 정치적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2012년 4월25일 독일 내각은 ‘모든 연령대가 중요하다(Jedes Alter zahlt)’라는 제목 아래 △가족 유대감 강화 △건강한 일자리 창출 △노인 자립 지원 등의 세부 전략을 세웠다. 독일교육·연구부는 올해 인구 ‘변화(change)’를 인구학적 ‘기회(chance)’로 인식시키는 대국민 캠페인에 주력할 계획이다.

취재진은 이것이 혹시 독일 정부가 불만스러운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자기 암시로 삼는 것 아닌지 의심하며 일정 때마다 인구 변화가 왜 기회인지를 캐물었다. 그때마다 “단순히 수명이 연장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난 것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령, 독일 전체 인구 중 자원봉사자 비율이 약 36%인데, 65~75세 노인의 자원봉사 참여율이 35% 정도에 이른다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노인에 대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 ‘사회에 부담을 주는 존재’에서 ‘사회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이들’로 인식을 전환하면 독일 사회에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온다는 논리다.

이민자 증가도 독일 인구정책의 핵심 변수다. 최근 독일에는 청년 실업률이 55%가 넘는 스페인과 그리스 등지로부터 이민자 유입이 크게 늘었다. 독일은 이들을 단기간 왔다 가는 산업 인력으로 보는 게 아니라 아예 인구를 늘리는 유인으로 삼기 위해 이주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또는 가족을 이뤄 독일에서 자리 잡고 살 수 있도록 최대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한국의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본국 귀환을 전제로 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한국에서는 이주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사는 것도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독일 정부가 제작한 인구 변화 정책 홍보물에 등장하는 뮌스터 대학 이슬람학과장 모하나드 코르키데 교수도 “문화적 다양성은 도전일 뿐만 아니라 기회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코르키데 교수는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이 이민자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라는 전제를 붙였다. 코르키데 교수는 터키 출신 이민자 3세대 출신이다. 독일은 전후에 초청 노동자(Gastarbeiter) 제도를 만들어 외국 인력을 도입했다가 이민 통합에 실패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이주노동자 문제, 남의 일 아니다 기사 참조).

따라서 독일 정부의 이민정책이 이번에는 성공할지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독일 국민의 이민자에 대한 인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 사민당의 재정정책 전문가 틸로 사라친의 저서 <독일은 망한다(Deutschland schafft sich ab)>는 2010년 발매되자마자 독일에 거주하는 무슬림에 대한 노골적 묘사 ‘덕’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근친상간 풍습 때문에 터키 출신 이주민의 선천적 장애 비율이 높다’ 따위 위험수위를 넘긴 표현이 들어 있는 이 책에 독일 시민은 뜨겁게 호응했다. 이 책은 독일이 망해가는 징조 중 하나로 이주민들의 이질적 문화 증가를 꼽기도 했다.

   
ⓒ시사IN 허은선
2월 마지막 주에 발매된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커버스토리는 독일 이민자 문제였다.

구체적 해법은 아직 못 내놔


일정 넷째날인 2월27일 독일 연방의회 가족·노인·여성·청소년담당위원회의 지빌레 라우리슈크 위원장(자민당)은 독일 내 동유럽 출신 간호사 이야기를 하다가 리투아니아 인터넷 신문 <리에투보스 리타스(Lietuvos rytas)>의 에글레 부이트키에네 기자에게 날선 질문을 받았다. 라우리슈크 위원장은 독일이 인구 감소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얼마 전 병원에 갔는데 독일인 간호사는 한 명도 없고 다 동유럽 출신이어서 놀랐다”라고 말했다. 이에 부이트키에네 기자는 “방금 충격받았다(shocked)고 말했느냐”라고 따졌다. 라우리슈크 위원장은 당황하며 “‘아니다. 놀랐다(surprised)고 말했지 ‘쇼크’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 나는 당시에 완벽한 치료를 받았다”라고 답변했다. 부이트키에네 기자가 다시 “동유럽에서 간호사 인력을 수입하는 것을 좋게 보는지 나쁘게 보는지 묻고 싶다”라고 말하자 라우리슈크 위원장은 “좋다, 나쁘다로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민이 필요하다(necessary)”라고 말했다. 독일 사회의 이민자에 대한 인식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대화였다.

따라서 앞으로 독일의 과제는 고령화·저출산·이민자 증가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안을 마련하느냐, 그리고 이를 독일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다. 이번 취재에서 만난 독일 공무원과 정치인들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하지 못했다. 독일 내무부의 위르겐 베커 씨는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면서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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