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정책 새 틀 짜라] <4> 전담기구가 없다
외국인 귀화·교육·고용정책 제각각… 컨트롤타워부터 구축을
관련기관·규정 많지만 중복되거나 누락 잦아
정책 효율성 떨어져
체류 외국인 180만명 이민법 신설 등 시급
 
베트남 출신 A씨는 최근 귀화에 성공해 꿈에 그리던 한국인이 됐다. 그는 특히 한국어능력시험(TOPIK) 덕을 톡톡히 봤는데 올해부터 TOPIK 등급을 획득하면 국적 취득 때 필기·면접시험이 면제되는 등 인센티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부 부처가 주관하는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만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다. 이에 따라 한국어를 잘하는 TOPIK 고득점자도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기초 수준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애초 정부가 인센티브를 준 취지는 사회통합 차원에서 이민자가 우리 말과 문화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인데 '과정 이수'라는 틀에 묶여 실제 언어능력(TOPIK 점수)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정책이 현실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TOPIK이 시작된 지 18년 만인 올해에서야 제도가 개선됐다.

이같이 우리나라 이민정책이 현실을 제때 반영하지 못하고 부실하게 운영되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컨트롤타워 부재'에서 찾고 있다. 이민정책을 전담하는 단일기관이 없는 가운데 귀화·교육·고용·적응 등의 기능이 각 부처에 흩어져 따로 이뤄지면서 정책 효율성은 떨어지고 유사·중복사업이 판친다는 것이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외국인정책을 종합·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전체를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복되고 빠뜨리고…갈길 먼 이민정책=우리나라 이민정책을 뜯어보면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관련 기관·규정은 많은데 허술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민정책의 중심부서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다. 하지만 외교부와 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 등도 이민자 정책에 관여하며 정책 수립은 국무총리실 산하 외국인정책위원회(법무부 주관), 외국인력정책위원회(고용부),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여가부) 등으로 나뉜다.

외국인의 지위 관련 법 조항만 해도 출입국관리법·국적법·난민법·재외동포법·외국인근로자고용법·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다문화가족지원법 등에 산재해 있다. 정부는 이민정책 관련 기관이 흩어져 있는 점을 보완하고 통합적 정책을 제시하고자 지난 2008년부터 5년 단위로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는 2012년에 만들어진 '제2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2013~2017)'이 운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조직과 보완책을 갖춰놓고도 현실에서는 겹치는 업무가 즐비하고 임시방편 위주로 이민정책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앞서 TOPIK 인정 문제도 국적 취득을 관할하는 법무부와 TOPIK을 주관하는 교육부 간 논의가 늦어지며 발생한 비효율로 볼 수 있다.

중복·유사 업무의 경우 이민자 일자리 대책은 고용부와 여가부가, 교육은 교육부와 여가부가 동시에 사업을 벌이다 보니 내용은 비슷한데 이름만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나 민간단체가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뒤늦게나마 지난해 이중언어(결혼이민자의 모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여가부는 가정에서, 교육부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식으로 일부 정책이 교통정리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김이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뿐 아니라 지자체와 교육청·민간단체 등의 다문화 가족정책 사업도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 180만명, 이민청 신설 서둘러야=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1개국 179만7,618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3.5%에 해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3년(157만6,034명)과 비교해 1년 사이 14.1%나 증가했으며 2007년(92만9,000여명) 이후 7년 만에 두 배로 뛰었다.

이처럼 외국인 수가 급증하는 점도 이민청 같은 컨트롤타워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통합기구를 통해 결혼이민자와 그 가족, 해외동포, 유학생, 외국인 근로자 등에 대한 포괄적인 외국인 정책이 가동돼야 한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인구가 줄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는 데 대비해 적극적으로 해외 우수 인재를 받아들이는 등 이민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경제'와 '미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외국인 비중 확대는 문화적 충돌이나 갈등같이 사회 전반의 변화를 초래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통합기구를 운영하는 외국도 참고할 만하다. 미국은 '이민국'에서 이민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특히 산업계·학계와 함께 적재적소에 필요한 이민 수요를 조사해 외국인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민을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캐나다나 호주 등도 마찬가지다. 독일·영국·프랑스 등도 전담기구를 통해 이민을 관리하고 실제 인구증가와 경제성장의 계기를 마련한 모범사례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당장 이민청 같은 별도조직을 마련하는 게 어렵다면 국무총리실 산하 3개 위원회를 통합하는 등 점진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후에는 통합 이민법 제정 작업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동관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 인력 규모가 전체의 3%를 넘어서고 대상도 다양해진 만큼 사회적 통합 문제가 중요해졌다"며 "전담기구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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