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서랍에서 썩고 있다

<한겨레21> ‘인권밥상’ 캠페인 직후 실시된 정부 차원의 농·축산 이주노동자 인권 첫 실태조사… “장관 미보고”를 이유로 1년 넘도록 방치

제1085호
 
2015.11.03
등록 : 2015-11-03 16:04 수정 : 2015-11-03 17:10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딸기 꽃을 따며 열매 수를 조정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이상한 ‘집중점검·실태조사’가 있다.

10월29일. 고용노동부가 “강도 높은 점검”을 시작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정부 차원으론 처음’이라며 의미 부여한 조사의 결과물을 정부 스스로 책상 서랍 안에 방치한 채 1년을 채운 날이기도 하다. “실태조사 결과를 제도 개선 때 적극 반영하겠다”는 약속도 서랍 깊숙이 감춰졌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10월29일부터 12월19일까지 농·축산업 외국인고용 사업장 집중검검·실태조사를 실시한다”고 발표(10월28일)했다. 대상 사업장을 “전년 (지도·점검) 수준의 2배”로 늘린 강도 높은 조사임을 강조하며 “법 위반이 적발되면 엄정 조치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장관님이 너무 바쁘셔서…”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는 ‘인권밥상’ 캠페인이 끌어냈다. 조사 시작 9일 전 <한겨레21>은 인권(국제앰네스티), 이주노동(이주공동행동·이주인권연대·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먹거리정의(한살림·아이쿱·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국제식품연맹) 분야 8개 단체들과 공동 캠페인을 시작(제1033호 표지이야기 ‘우리가 눈감은 인신매매’ 참조)했다. ‘인권밥상’(2014년 10월20일~12월18일)은 우리 일상의 밥상이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노동환경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고발한 ‘눈물의 밥상’(제1025호 표지이야기)의 속편이면서, ‘인간다운 밥상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모색하는 시도였다.

10월20일 국제앰네스티가 보고서(‘고통을 수확하다’)를 발표하며 캠페인을 열었다. 한국 농·축산 이주노동 현장을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강제노동(forced labor)-노동착취(labor exploitation)’로 독해한 앰네스티 보고서는 세계 주요 매체들이 보도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는 국내외 이슈화에 따른 정부 차원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1년이 흘렀다. 조사 계획 발표는 있는데, 조사 결과 발표는 없다. <한겨레21>은 지난 1년 동안 조사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해왔다. 지난해 12월19일 조사를 끝낸다던 고용노동부는 “12월 말 이후 마무리될 듯하다”(12월1일 확인)→“3월 초는 지나야 분석 결과가 나올 것 같다”(2015년 2월11일)→“정리는 됐으나 내부 보고가 안 됐다”(3월30일)며 시간을 끌었다.


“보고를 못해 공개 여부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이 조사 시작 1년을 넘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임금피크제, 최저임금제, 노·사·정 대타협 등 시급한 현안에 밀려 장관 보고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7월13일)던 고용노동부는 2016년 최저임금이 확정(7월9일)되고 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 구조 개편 합의안 조인식(9월15일)이 끝난 뒤에도 “아직”을 말했다.

“다른 사안들이 바빠 보고 일정이 아직 안 정해졌다. 보고 안 된 사안이므로 조사 내용은 말할 수 없다. 애매하게 됐다.”(10월5일) 사회적 문제제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소나기 피하기식 행정’이란 비판이 불가피하다.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무책임’과 ‘무관심’으로 요약된다.

무책임하고 무관심하고

법무부도 동승했다. 농번기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해결하겠다며 1~3개월만 쓰고 출국시키는 ‘초단기 계절노동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쇠락하는 농업과 씨가 마른 농업노동에 대한 ‘값싼 처방’이 이주노동자의 노동착취와 인권침해를 키울 것이란 우려가 크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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