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허기진 군상] (8)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 밀린 임금 달랬더니…“불법체류 신고” 엄포 놓은 한국 사장님
박용필·김지원 기자 phil@kyunghyang.com
ㆍ새벽부터 저녁까지 쉼 없이 일…떼인 돈, 소송해도 받을 길 막막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는 외국에 나가 차별과 위험 속에 일하며 제 가족을 건사하고 ‘국가경제’에 기여했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주여성들 역시 저마다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 사회의 물적·인적 재생산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덕수와 영자가 외국서 받은 차별에 분개하지만 우리 사회 속 덕수와 영자에게는 눈을 감는다.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주여성들은 우리 안의 ‘식민지’다.

■부당대우 받은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ㄱ씨 이야기

지난달 중순 인천의 한 고용노동청 앞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3명이 그들을 고용했던 사업주 앞에서 주눅든 채 서 있었다. 사업주는 “너희들이 나한테 밀린 임금을 달라고 말을 한 적이 있느냐” “일거리를 줬더니 배은망덕하게 여기 와서 신고를 하느냐”며 윽박질렀다. 노동자들이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사업주의 위세에 금세 말문이 막혔다. 사업주는 밀린 임금이나 합의금을 주겠다는 말 대신 사업장 이탈로 신고하고 불법체류자 만들어버리겠다는 엄포를 놓더니 자리를 떴다.

허름한, 허기진 밥상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가 지난 5월 경기도의 한 공장 옥상 컨테이너 부엌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 미얀마 이주노동자모임 제공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 ㄱ씨(31)는 지난해 4월부터 경기도의 한 미나리 농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지난 6월부터 임금을 받지 못했다. 동료 2명도 7월부터 임금을 받지 못했다.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 3명의 체불임금은 1000만원이 넘었다. 사업주는 돈이 없다며 밀린 임금을 주지 않았다. 돈이 없다던 사업주는 최근 식당을 새로 차리고 양식장도 만들었다. ㄱ씨와 동료 2명은 지난달 고용노동청에 임금체불을 신고했다. 하지만 사업주는 밀린 임금을 주겠다는 말 대신 오히려 불법체류자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ㄱ씨는 오전 6시면 일어나 일을 시작했다. 오후 6시까지 하루 종일 땡볕에서 미나리를 심고 수확하고 옮겨심기를 반복했다. 일이 끝난 오후 6시부터는 1시간가량 농장과 밭을 청소했다. 미나리 농장에 일거리가 뜸해지면 개울가에 나가 물고기를 잡았다. 다른 농장에 가서 고추를 따거나 콩을 심기도 했다. 농번기나 농한기나 쉴 틈이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 13시간가량 매일 일했다. 하지만 임금은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10시간치만 받았다. 업주는 ‘연장근무수당은 아침과 저녁을 제공하는 것으로 대체했다’고 했다. 업주가 제공했다는 아침과 저녁이라는 것은 쌀과 반찬 몇 가지를 받는 것이었다. 가끔 죽은 생닭을 던져주고는 알아서 먹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ㄱ씨가 지내는 컨테이너는 여름에는 덥고 가을만 돼도 추워서 밤에 잠을 제대로 자기 힘들었다.

일보다 힘든 것은 사장님 ‘잔소리’였다. 일을 제대로 못하거나 작업 지시를 잘 알아듣지 못하면 불같이 화를 냈다. ㄱ씨와 동료들은 “앞서 농장에서 일했던 이주노동자 중 한 명은 사장님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묵묵히 견뎠다. 고국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고국 네팔에는 최근 큰 지진이 발생했다. 집은 모두 무너졌고 가족들은 텐트에서 살고 있다. 생필품은 구할 수도 없다. 먹을 거라도 구하기 위해 매달 빚을 낸다. 한시라도 빨리, 어떻게든 돈을 구해 가족들에게 보내야 했다. 하지만 임금은 몇 달째 지불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 가서 일할 수도 없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와 일을 하는 처지라 사업주가 고용계약을 종료해주지 않으면 사업장을 바꿀 수 없다. 일을 안 하거나 농장을 이탈하면 작업 지시 거부와 무단이탈로 간주돼 강제 귀국된다. 이를 피하려면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처우가 박해도,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도, 심지어 임금이 제때 안 나와도 직장을 옮길 수가 없었다. 결국 이들은 지난달 농장을 벗어나 고용노동청에 임금체불을 신고했다. 다행히 신고가 받아들여져 사업주가 무단이탈 신고를 하더라도 불법체류자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떼인 임금을 다 받기는 어려운 처지다. 보증보험을 통해 한 사람당 최대 300만원까지만 지급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언제 끝날지 모를 소송을 치러야 한다. 소송을 한다 해도 사업주가 돈을 내놓을지는 알 수 없다. 2살 난 딸과 아내를 고국에 두고 온 ㄱ씨는 “몸도 성치 않은 아내와 젖먹이 딸이 끼니도 못 챙기고 있을 상황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현재 해당 지역의 이주민 인권단체가 이들을 도와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한 상태이다. 하지만 단체 관계자는 “새 사업장을 구할 수 있을지, 제대로 된 사업장을 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ㄱ씨는 “고된 일도, 컨테이너 생활도, 폭언과 잔소리도 참을 수 있지만 거리에 나앉은 가족에게 돈을 보낼 수 없는 것만큼은 참기 힘들다”면서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시달리는 베트남 출신 여성 ㄴ씨 이야기

베트남 출신 여성 ㄴ씨(28)가 한국인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기 시작한 건 결혼 3년쯤 되던 2010년 무렵부터다. 그 전에는 욕은 많이 했어도 때리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ㄴ씨를 때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주로 머리를 때렸다. ㄴ씨는 “몸이나 팔다리는 멍이 들기 때문에 머리를 때렸던 것 같다”고 했다.

때릴 때는 이웃들이 알까봐 TV를 크게 틀었다. 머리채를 붙잡고 벽에 내리찧기도 하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도 때렸다. ㄴ씨의 머리에는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그녀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당시 그녀의 몸무게는 43㎏이었다. 폭행 때문인지 지금도 ㄴ씨는 만성 두통에 시달린다. 하지만 ㄴ씨는 가정폭력을 제대로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ㄴ씨는 먼저 한국에 온 사촌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통역을 부탁해야 할 정도로 한국말에 서툴렀다.

2007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ㄴ씨는 한국에 잘 적응하고 싶어했다. 고된 농장 일을 하는 틈틈이 한국말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편과 시어머니는 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무료 한국어 강좌를 다니겠다고 하면 “너 일 시키려고 데려왔지 공부 시키려고 데려온 줄 아느냐”는 답이 돌아오곤 했다. 

ㄴ씨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허락 없이는 마을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남편과 함께 농사일을 했지만 남편은 그녀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지갑에 1000원짜리 한 장만 가지고 다녔다. 결혼한 지 4년이 지나도록 그녀는 본인 명의의 통장도, 카드도 가져보지 못했다. 남편은 외국인이라 통장을 만들 수 없다고 ㄴ씨를 속였다.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갈 때도 시어머니는 차비와 진료비를 정확히 계산해 딱 그만큼만 돈을 줬다. 그마저도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남은 돈 없느냐고 추궁했다. 이불을 덮을 때조차도 시어머니로부터 “이것은 네 것이 아니다. 이 집에서 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ㄴ씨는 이 모든 학대에도 불구하고 집을 뛰쳐나갈 수도, 이혼을 요구할 수도 없었다. ㄴ씨는 한국에 와 결혼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다. 결혼 2년이 지나면 국적 신청을 할 수 있지만 남편은 국적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ㄴ씨는 1년 또는 2년 단위로 체류기간 연장을 신청하며 지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결혼 이주자가 이혼을 할 경우 배우자의 귀책사유가 명백히 입증되지 않으면 국적 신청은커녕 체류기간을 연장하기조차 어렵다. 불법체류자가 되거나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녀에겐 8살 난 딸이 있다. 이 애를 두고 이 나라를 떠날 수가 없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국제결혼을 한 한국 남성과 그 가족들 가운데 일부는 외국인 아내에게 한국어를 배우지 못하게 하거나 국적 취득을 의도적으로 막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녀들이 한국 물정을 알게 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독립을 할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적 취득을 신청해도 심사에만 길게는 2년이 걸린다. 그사이 한국인 배우자가 국적 취득에 반대하면 국적 취득은 불가능하다. 이주노동자들이 사표낼 수 없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면, 국제결혼 이주여성은 이혼할 수 없는 결혼 생활을 하는 셈이다. 이주여성들이 학대와 인권침해를 당해도 남편과 시어머니를 쉽사리 거스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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