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원 근로조건 악화는 송출료 본인부담 관행 탓"

동아시아 어업의 공정·윤리 고용 주제로 국제 콘퍼런스
김종철 변호사 "선사가 송출료 내고 액수도 대폭 낮춰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외국인 선원의 근로조건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2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제 콘퍼런스 개막식에서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6. 8. 25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높은 송출 수수료와 이를 외국인 선원이 직접 부담하는 관행이 한국 어선의 근로조건 악화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제이주기구(IOM) 한국대표부가 국회인권포럼, 공익법센터 어필과 함께 미국 국무부 후원으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개최한 '동아시아 어업의 공정·윤리 고용과 국가 간 정책 조율을 위한 국제 콘퍼런스'에서 어필의 김종철 대표변호사는 미국 국무부의 지원을 받아 IOM 한국대표부와 함께 지난 2년간 한국·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 등지에서 현장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이같이 주장했다.

조사에 따르면 20t 이상 연근해어선의 경우 송출 대행회사에 지불해야 하는 1인당 송출 수수료는 2천800달러(약 310만 원)에서 많게는 1만5천 달러(액 1천700만 원)에 이른다. 원양어선은 2천∼2천500달러 수준이며, 20t 미만 연근해어선은 780달러 안팎이다. 원양어선과 20t 이상 연근해어선에는 선원법이 적용되고, 20t 미만 연근해어선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고법)을 따른다.

김 변호사는 "송출료를 고용주(선사)가 지불하지 않고 동남아 출신 선원들이 부담하다 보니 선원이 선장으로부터 중도에 하선(下船) 명령을 받게 되면 빚더미에 오를 수도 있어 강제노동 관행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송출료를 고용주가 직접 지불하게 하는 동시에 정부나 공공기관의 협조로 송출료를 대폭 낮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인 선원과의 임금 차별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 선원들은 연근해어선이나 원양어선의 경우 갑판원 기준으로 300만 원대의 월급을 받고 있고 최저임금도 월 164만1천 원인 데 비해 연근해어선의 외국인 선원은 118만 원(20t 이상)에서 126만1천 원(20t 미만)의 최저임금만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양어선의 외국인 선원 월급은 이보다 훨씬 낮아 423달러(약 47만4천 원)에서 568달러(약 63만8천 원) 수준에 머물렀다.

김 변호사는 현장 조사 결과 관리업체의 부당한 수수료 징수, 장시간 노동, 불분명한 휴식 시간, 질 낮은 물과 음식, 열악한 숙소와 화장실, 임금 체불, 여권 압수, 감금이나 이동 제한, 일방적인 근로계약 해지나 송환, 산업재해 위험 등의 문제가 적발됐다고 공개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맥시밀리언 포틀러 국제이주기구 캄보디아대표부 담당관이 2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주 어선원 고용 실태를 발표하고 있다. 2016. 8. 25

맥시밀리언 포틀러 IOM 캄보디아대표부의 노동이주프로젝트 담당관은 '공정·윤리 고용에 관한 국제적 기준과 이주 어선원에 대한 정책 조율'이란 제목으로 발표에 나서 "어선이라는 특수한 환경, 강제적으로 신분증을 맡기는 관행, 확고한 위계서열, 소통 부족, 과도하고 불법적인 송출료 부담 등으로 인해 기만적이고 강제적인 고용 행태가 자주 나타나고 있다"면서 국제노동기구(ILO)의 민간 고용업체에 관한 협정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이 협정은 기만적 행위와 학대에 관여하는 민간 고용업체의 영업을 금지하는 등의 법률과 규제를 제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고용 세부 사항과 조건을 알려줄 것과 노동자 임금에 대한 불법 공제 금지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지난 5월 현재 186개 ILO 회원국 가운데 32개국이 이 협정을 비준했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유일한 비준국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어선 선원 2만8천635명 가운데 외국인 선원은 41%인 1만1천815명에 이른다. 외국인 선원 비율은 연근해어선 35.5%, 원양어선 69.3%로 나타났다. 국적별로는 인도네시아(4천810명), 베트남(4천697명), 중국(1천650명), 필리핀(512명), 미얀마(88명) 순으로 집계됐다.

해양수산부 선원정책과의 김해기 사무관은 "폭행이나 욕설이 과거 한국인 선원들만 승선하는 경우에도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국인 선원이란 이유만으로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인권 침해 예방교육 실시, 외국인 선원 콜센터 설치·운영, 선원 근로감독관 충원, 표준 선원근로계약서 보급, 합동 실태조사 정례화 등의 개선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교통부의 리처드 크리스티앙 해양조사관은 자국의 관련 법률과 인권 보호 노력을 소개했으며, 베트남 해외인력관리국의 타티탄투이 과장은 "선원을 한국으로 송출하기 전에 2.5개월 동안 기본 한국어를 포함한 사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 해외인력관리국의 존 리오 보티스타 변호사는 "필리핀 선원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긴급구호체제를 마련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국회인권포럼, 국제이주기구 한국대표부, 공익법센터 어필 주최로 2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제 콘퍼런스에서 홍일표 국회인권포럼 의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2016. 8. 25

이에 앞서 국회인권포럼 회장인 홍일표 국회의원은 개회사에서 "각 나라가 이주 어선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갖춰놓은 제도들이 서로 잘 조화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인권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OM 한국대표부의 박미형 소장은 환영사를 통해 "과도한 업무 강도, 신체적·언어적 폭력, 낮은 임금 등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으로 한국이란 낯선 나라에 발을 내디딘 이주 어선원에게 엄청난 외로움과 고통을 안겨준다"면서 "대한민국 정부와 송출국과의 정책 논의를 통해 이주 어선원의 공정·윤리 고용 방안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축사에 나선 그레이스 유 주한 미국대사관 서기관은 "불법 어업 관행 근절은 9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존 케리 국무장관 주최 해양 콘퍼런스의 주요 초점이 될 것"이라며 "미국 국무부는 전 세계 어업 분야에서 인신매매와 강제노동이 사라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격려했다.

IOM 대표부 등은 26일에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각국의 정책 담당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워크숍을 열어 선원에 대한 송출 수수료 부담과 임금 체불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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