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다문화섬⑤]'동포의 지팡이' 진봉범 경위 "먼저 다가가면 됩니다"

"문화 차이가 오해 키워…선입견 버려야"

(서울=뉴스1) 김태헌 기자 | 2016-08-30 05:50:00 송고 | 2016-08-30 17:20:09 최종수정
중국동포 전담 경찰관 진봉범 경위가 지난 26일 가리봉 시장에서 만난 동포와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 News1 허예슬 인턴기자

"처가가 전북 전주 봉동이에요. 이름은 진봉범, 근무지가 가리봉동. 그러고보니 제가 여러모로 '봉'자랑 연관이…".

국내 유일의 중국 동포(조선족) 전담 경찰관 진봉범 경위(55)는 서울 가리봉 종합시장의 '마당발'로 통한다. 진 경위는 2012년 2월부터 지금까지 4년 넘도록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중국 동포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인터뷰 중간에 툭 튀어나온 진 경위의 농담에 분위기가 누그러지면서 진 경위가 어떻게 중국 동포들의 마음을 열었는지 짐작이 됐다.

지난 26일 오후 기자와 만난 진 경위는 마주치는 동포마다 웃으며 안부를 묻고 전단을 건넸다. 조선족 자율방범대가 제작한 전단에는 '쓰레기를 버리면 100만원의 과태료를 물 수 있다' '술 마시고 싸우면 안 된다' 등의 내용이 중국어로 적혀 있었다. 진 경위는 중국 동포들에게 한국 법이나 규칙을 알려주고, 이들의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

◇제복 대신 사복…경찰에서 친구 되기까지

"조선족들이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입니다. 수십년간 각종 차별대우와 핍박을 받아 온 거죠.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평상복을 입고 근무했습니다."

진 경위는 가리봉시장의 '마당발'이다. 휴대전화에 등록된 동포 전화번호만 500여개. 순찰을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몇몇 상인들은 "들어와서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며 팔을 잡아당기기도 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진 경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제복 대신 사복을 입는 것이었다. 동포들이 중국 공안에 대해 가진 편견 때문이다. 진 경위는 사복을 입고 명함 수백장을 들고 다니며 일일이 인사를 다녔다.

"잘 못 하는 술을 마시면서 조금씩 친해졌어요. 점점 속 얘기를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워지더군요. 이제 밤낮 없이 '술 한잔 하자'며 연락이 올 정도입니다."

진 경위는 파출소로 출근한 후 관내를 돌아다니며 매일 동포들을 만난다. 관계도 쌓고 신고가 들어오면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기 위해서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에는 '조선족 자율방범대'와 함께 합동순찰에 나선다. 34명의 중국 동포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자율방범대는 동포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해 2008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수년째 동포들과 어울려 온 그에게도 어려움이 있을까. 그는 "동포들과 어울리려면 중국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입맛에 썩 맞는 것 같진 않다"며 "한국 입맛에 맞게 해달라고 하면 알아서 잘해준다"고 웃으며 말했다.
중국동포 전담 경찰관 진봉범 경위가 지난 26일 오후 서울 구로구 동포 자율방범대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허예슬 인턴기자

◇말투·성격 달라 오해 생겨…편견 버리면 공존할 수 있어

"신호등·횡단보도 앞에서 한국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빨간 불이 초록 불로 바뀔 때 횡단보도를 건너겠죠. 동포들은 그런 것 하나하나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당연한 것이 그들에겐 노력해야 하는 거죠."

진 경위는 다른 문화 때문에 동포들이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고 설명했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신호를 무시하는 일이 너무 자연스럽다는 것. 그는 동포들에게 질서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얘기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규칙이 있을 때 그걸 지켜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동포들은)잘 못한다"며 "그걸 몸에 배도록 하는 게 내 임무"라고 말했다.

말투도 편견을 만드는 원인이다. 보통 톤이 높은 중국어와 한국어를 함께 쓰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싸우는 것으로 오해할 정도다. 진 경위는 "가깝게 지내보면 한국 사람보다 순박한 면이 있다"며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엔 가리봉동을 떠나 영등포구 대림동이나 구로구 구로동 쪽으로 옮겨 가는 중국 동포가 늘고 있다. 한국에 잘 적응한 뒤 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이라고 진 경위는 설명했다.

중국동포에 대한 내국인의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제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동포들이 한국에 정착한 지 벌써 20년입니다. 그 시간 동안 위험하거나 신분이 불안한 사람들 상당수가 많이 걸러졌어요.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습니다. 저도 5년 넘게 밤낮으로 다니지만 이렇게 멀쩡하잖아요? 충분히 함께 공존할 수 있어요." 진 경위는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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