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다문화섬④]고용허가제 12년…'일회용 노동자'만 양산

사업주에 권한 높아 노동자 권리 반영 필요해
이주노조, 고용허가제 아닌 '노동허가제' 주장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16-08-29 07:00:00 송고

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고용노동청 앞에서 이주노동자들과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인권·노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16.8.17/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이주노동자는 필요할 때 가져다 쓰고 쓸모없어지면 버리는 일회용 종이컵이 아닙니다. 이주노동자는 노예가 아닙니다. 그 누구도 이들에게 부여된 인권을, 노동권을 제약할 권리는 없습니다"

지난 17일은 외국인인력도입제도인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12주년 되는 날이었다. 이날 장동만 외국인 이주·노동운동협의회 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이주노동자의 처지는 '일회용 종이컵'과 같다고 비유했다. 한번 쓰고 쓸모없어지면 버려지는 처지라는 것이다.

앞서 국제앰네스티는 2009년 한국의 이주노동자 인권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을 '일회용 노동자'라고 표현했다.

한국 정부는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ESCR)의 당사국 중 하나로서 영토 내의 제3자에 의한 개인 노동권 침해를 막기 위한 조치를 해야한다. 

이주노동자 100만의 시대, 일선의 이주노동자들은 정부의 외국인인력관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사업주만을 위한 법, 노동자들 권리는 없어

"나는 한국에 올 때 노동자로 왔지만 와서 일해보니 노예였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밸베스씨(29)는 지난해 8월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경기도 광주의 한 매트리스 생산공장에서 일하다가 팔목에 부상을 입었다. 무거운 매트리스를 계속해서 옮겨야 하는 작업 때문이었다.

계속되는 고통에 밸베스씨는 근처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그에게 지금 같은 일을 계속하면 팔목이 낫지 않을 수 있고 더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며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의사에게 진단서를 건네받은 그는 사업주에게 다른 곳으로 공장을 옮기겠다고 했지만 사업주는 "그럴 거면 방글라데시로 돌아가라"라고 잘라 말할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해주지 않았다. 

밸베스씨는 그렇게 일도 하지 못하고 직장을 옮기지도 못한 채 방안에서 3개월 동안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취직을 해 일을 하는 것도, 작업장을 옮기는 것도 사업주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만약 사업주 승인이 없이 작업장 옮기면 근무지 이탈한 것을 간주돼 비자가 박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근무하는 캄보디아 출신 리호우씨(21·여)의 상황은 더 열악했다. 그는 하루 8시간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한국에 들어왔지만 매일 10~11시간이 넘는 노동에 시달렸다. 그리고 한달에 이틀만 쉴 수 있었다.

리호우씨가 계속되는 장시간 노동을 참고 견뎌야 했던 것은 비싼 기숙사비 때문이었다.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로 지어진 기숙사의 한달 이용료는 50만원이었다.

리호우씨가 살았던 숙소 외부 비닐하우스에 컨테이너를 이용해 지은 가건물의 한달 월세는 50만원이었다.© News1
리호우씨가 장시간 근로를 강요받아도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근로기준법 63조가 농축업을 근로시간과 휴일에 관한 규정의 예외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50만원을 낼 수 없다고 사업주에게 이야기했고 사업주는 그에게 "기숙사비를 내지 못할 거면 나가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사업장에서 이탈했다며 곧바로 신고를 했다.

그는 "현재 사장이 고용변동 승인을 해주는 것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며 "언제라도 비자를 잃을 수 있는 상황이고,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리호우씨가 50만원을 내고 살았던 방은 비닐하우스안에 컨테이너 박스로 가설된 건물이었다. 4개의 방에 8명의 남·여 이주민노동자가 살았다. 

집주인은 방값이 높은 이유를 "에어컨을 설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방과 방사이를 뚫어 설치한 에어컨의 리모컨은 1개뿐이었고 리호우 씨는 스스로 온도를 조절할 수도 없었다. 


◇ 고용허가제, 무엇이 문제일까?

이렇듯 이주노동자와 사업주 사이의 관계에서 사업주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현행 외국인인력도입정책인 '고용허가제' 때문이다. 

고용허가제는 사용자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노동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제도로 이주 노동자를 '연수생' 신분으로 고용하는 '산업연수생제도'가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으면서 지난 2004년 8월17일부터 시행됐다. 

이주노동자들을 합법적인 '노동자'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산업연수생제도 보다는 발전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고 단기 체류(최대 4월10개월)만을 허용하고 있어 이주노동자들이 기본권을 박탈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특히 이들이 고용돼서 입국하고 이직하거나 퇴직을 하려고 해도 모두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해서 이주노동자는 부당한 처우를 당해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계속돼왔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는 사업주가 허락하거나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경우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스스로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것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어 이주노동자를 강제노동의 위험에 처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어렵게 사업장 변경 승인을 받더라도 현행법상 3개월 내에 일을 구하지 못한 노동자는 반드시 출국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3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들은 지낼 곳도 없이 구직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쉽사리 사업장 변경을 신청하지 못한다.

또 고용허가제는 취업 기간을 입국한 날부터 최대 4년10개월로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재고용 요청권을 사용자만 가지고 있어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 

◇ 고용허가제 아닌 '노동허가제'로

이주노동자들은 현행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허가제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내국인에게 적용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을 동일하게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박진우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사무차장은 "고용허가제는 말 그대로 사업주에게 고용을 허가해주는 제도로 사업장 변경 등 모든 권리가 사업주에게 있다"며 "반면 노동허가제는 출입국 관리를 현재와 동일하게 하되 이주노동자들에게 내국인 근로자와 같은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주장하는 '노동허가제'가 적용되면 이주민노동자들은 자유롭게 직장을 구할 수 있게 된다. 또 5년 이상 거주할 수 있어 영주권을 취득해 장기 체류가 가능해진다. 

박 사무차장은 "현재의 고용허가제 아래서는 이주노동자는 단기 근로만 하게 되고, 사업주들은 개선의 노력을 할 필요가 때문에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이게 된다"며 "새로운 제도를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을 외국인 노동자에게 전면 적용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 고용노동부 "현행 제도 변경 없다"

고용노동부는 현재의 고용허가제에 대한 별도의 개정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부는 이주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현행제도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금의 제도가 '노예제도' 수준은 아니다"라면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국내에 들어오게 하는 것은 기업의 인력 수요를 충족하면서 외국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기본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있으면 횟수와 상관없이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다"며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이주 노동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외국인 지원센터가 전국 곳곳에 있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입국할 때 노동부가 연락처까지 안내해 준다"라고 해명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장기간 체류를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외국인 이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며 "한국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동화돼 살기를 희망하면 영주권을 받거나 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최대 4년10개월까지만 거주할 수 있어 5년 이상 거주해야 신청 가능한 영주권을 취득할 수 없다. 이들이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한국인과 결혼하는 것이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