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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누가 싸우고 있는가 / 후지이 다케시

등록 :2016-12-04 18:17수정 :2016-12-0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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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집회에 나갈 때마다 즐겁다가도 때때로 소외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촛불집회가 등장한 2008년 이후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최근에는 더 많아졌다. 시위하고 있는 주체가 ‘국민’으로 호명될 때가 부쩍 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여전히 국민국가라는 틀 속에서 살고 있는 이상, 외국인인 내가 소외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씁쓸한 기분이 들면서도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이것이 나 개인의 소외감 문제라기보다는 지금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는 데도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예전에 비해 가게나 식당에서 외국인으로 보이는 이들과 마주치는 일이 확실히 잦아졌다. 서울 영등포구에서는 외국인 비율이 12%가 넘는다는데, 이제 한국에 ‘국민’만이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국민국가라는 틀이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경계는 예전 같지 않으며 이미 많이 허물어졌다. 우리는 이미 일상 속에서 이런 변화를 체감하고 있지만, 어떤 정치적 행동을 취할 때는 여전히 국민국가의 틀에 의지하게 된다. 이 괴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국면에서 국민이 강조되는 데에는 물론 근거가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공권력의 행사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2008년 촛불집회 때 등장해 지금도 자주 불리는 노래 ‘대한민국헌법 제1조’를 통해 익숙해진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구절이 말하듯이,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에 그 하야를 ‘국민의 명령’으로 표현하는 것은 타당하다. 특히 과거 유신헌법에서 이 부분을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로 수정해 직접적인 주권행사를 막으려고 한 것을 떠올리면, 지금과 같이 국민이 직접 나서서 주권을 행사하는 일은 틀림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 광장에 모여 이 사회를 바꾸려고 싸우고 있는 것은 비단 국민뿐인가?

11월30일에 박근혜 즉각 퇴진과 정책 폐기를 내걸어 서울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대회에는 몇백명이나 되는 이주노동자들도 참여하고 있었다. 대부분 건설 현장이나 영세 사업장에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자본주의의 밑바탕에서 그 혹독한 현실을 몸소 겪고 있는 존재다. 그렇기에 그들 역시 이 사회의 변혁을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운동이 국민주권의 논리로 추진되는 한, 그들의 열망은 표현될 수 없다.

사실 이주노동자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 하나로 묶일 수 있을 정도로 ‘국민들’도 결코 균질적이진 않다. ‘우리’ 안에도 다양한 경계가 존재하며 거기서 무수한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고, 또 비정규직이기에 안전사고에 노출되는 상황은 단일한 권력의 산물이 아니다.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광장에 서게 되는 이유도 그들이 같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목소리’로 수렴될 수 없기에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절망과 희망을 안고 직접 광장을 찾는다. 이런 행동을 주권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다양한 열망을 담기에 ‘국민’이라는 말은 턱없이 부족하다. 광장에 등장한 특이한 깃발들은 이미 ‘우리’가 다양한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우리’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의 언어가 필요하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3212.html#csidxfae1ada09c431c4be9054ac6da69f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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