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070

[왜냐면] 깻잎과 이주노동자 그리고 나 / 남기현

등록 :2017-05-08 18:27수정 :2017-05-08 19:32


크게 작게

남기현
서울 송파구 가락본동

삼겹살에 싸 먹는 깻잎, 따끈한 밥에 얹어 먹는 깻잎장아찌. 깻잎을 좋아하지만 조심스레 하나하나 쥐고 흐르는 물에 씻어야 하는 게 귀찮아서 자주 해 먹지는 못한다. 깻잎 겉절이는 할머니의 집약적인 노동과 관대함에 기대어 어쩌다 한번 얻어다 먹을 수 있는 사치이다. 한창 쌀 땐 세 묶음에 천원. 어쨌든 싱싱하고 향긋한 깻잎은 그냥 기분이 좋다. 그런데 지난겨울부터 마트 신선코너에서 깻잎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해졌다. 경남 밀양에서 깻잎 따는 일을 하는 캄보디아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깻잎의 경제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겠다. 유통기한이 길지 않은 얇고 섬세한 이파리이나, 특유의 향이 음식의 풍미를 배가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 쌈채소이니 경제성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하우스에서 재배하여 사시사철 합리적인 가격에 전국으로 재빨리 공급하고, 가뜩이나 외부 요인에 취약한 우리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 증대를 이루어내려면 아마도 임금이 낮아도 궂은일을 마다 않는 외국 노동력을 들여오는 게 수지타산이 맞나 보다.

한 묶음에 10장, 한 상자에 100묶음이 들어가는 깻잎을 종일 하우스 안에서 평균 15~20상자까지 따야 하는 하루 노동시간 11시간.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들의 하루 노동이다. 모두가 과로하는 한국 사회에서 11시간이 대수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물론 시급은 8시간밖에 못 받는다. 간이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받고 내야 하는 돈이 한 달에 60만원. 네 명이서 나누어 일인당 15만원을 낸다. 화장실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적 드문 시골에서 화장실이 대수인가 할 수도 있겠다. 사장님과 상사들은 어디서나 횡포이며 일하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경우가 허다하니 이것도 넘어가 본다. 우병우도 엄준한 법망을 빠져나가게 생겼다는데, 노동법에 의거해 위반된 사항이 없으니 고용노동부로서 이를 시정할 적극적인 개입이 불가하다는 입장도 이해해보려 하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이제 깻잎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보드라운 털이 송송 난 하얀 면을 마주할라치면 머리가 핑 돈다. 내가 깻잎을 많이 먹어야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일자리도, 들썩이는 농산물 가격에 맘 졸이는 농가도, 그리고 내 건강도 유지될 텐데, 그만 깻잎을 쳐다보기조차 힘들다. 실은 깻잎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다시 깻잎을 먹을 수 있게 될 때, 마트에서 마주하기 힘든 다른 채소들의 가짓수도 함께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793878.html#csidx1ec49dc12daa45eb40191fe5e24f973 onebyone.gif?action_id=1ec49dc12daa45eb40191fe5e24f973
profile
번호
제목
글쓴이
1320 [서울 이주노동자 ‘열악한 노동환경’]“코리안드림요?…현실은‘헬’이죠”
이주후원회
3408   2017-05-09 2017-05-09 17:30
[서울 이주노동자 ‘열악한 노동환경’]“코리안드림요?…현실은‘헬’이죠”기사입력 2017-05-04 11:32 |이원율 기자 서울연구원 30명 심층 면담 근로계약서 2명중 1명 꼴 작성 그마저 절반은 지켜지지 않아 체임·욕설...  
[왜냐면] 깻잎과 이주노동자 그리고 나 / 남기현
이주후원회
3092   2017-05-09 2017-05-09 17:27
[왜냐면] 깻잎과 이주노동자 그리고 나 / 남기현등록 :2017-05-08 18:27수정 :2017-05-08 19:32 크게 작게 남기현 서울 송파구 가락본동 삼겹살에 싸 먹는 깻잎, 따끈한 밥에 얹어 먹는 깻잎장아찌. 깻잎을 좋아하지만 조심스레 ...  
1318 美 불법체류자들, 추방 공포에 성폭행도 신고 못해
이주후원회
1972   2017-05-02 2017-05-02 14:37
美 불법체류자들, 추방 공포에 성폭행도 신고 못해 송고시간 | 2017/05/01 03:55 올들어 성폭력·가정폭력 신고건수 급감 (뉴욕=연합뉴스) 박성제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 추방정책을 강하게 집행하면서...  
1317 “어눌한 한국말(?)”…외국인근로자, “우린 범죄자 아니다” 항변
이주후원회
1840   2017-05-02 2017-05-02 13:47
“어눌한 한국말(?)”…외국인근로자, “우린 범죄자 아니다” 항변이통원 기자 | tong@newsis.com 등록 2017-04-24 17:17:24 강력 범죄 발생하면 외국인근로자 용의자로 지목 【대구=뉴시스】이통원 기자 = 경북 경산 농협 총기 ...  
1316 외국인 계절근로자로 일손 부족 해결
이주후원회
2979   2017-05-02 2017-05-02 13:46
외국인 계절근로자로 일손 부족 해결 입력 : 2017-04-30 20:40 [앵커] 농촌의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일손 부족 현상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양군이 도내에서 처음으로 외국에서 직접 근로자를 데려오는...  
1315 [세계 이민의 날 기획] 국내 무등록 이주아동 실태
이주후원회
1863   2017-05-02 2017-05-02 13:40
[세계 이민의 날 기획] 국내 무등록 이주아동 실태 학교도 병원도 못 가는 ‘있지만 없는 아이들’ 발행일2017-04-30 [제3042호, 20면]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의 수가 200만 명(2016년 6월 30일 기준)을 돌파했다. 하지만...  
1314 [별별시선]4차 산업혁명 시대 ‘우울한 노동자’
이주후원회
3259   2017-05-02 2017-05-02 13:40
입력 : 2017.04.30 20:49:03 수정 : 2017.04.30 20:51:52 ㄱ은 프로그래머다. 스마트폰 게임을 만드는 일을 한다. 어제도 새벽에 퇴근했는데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새벽에 회사로 출근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가 이...  
1313 이주노동자들, 노동절 맞아 '인종차별금지법' 요구
이주후원회
3012   2017-05-02 2017-05-02 13:36
이주노동자들, 노동절 맞아 '인종차별금지법' 요구경남이주민센터, 127주년 세계노동절 기념행사... 강제추방 반대- 사업장 이동 자유도17.04.30 13:22l최종 업데이트 17.04.30 16:36l 윤성효(cjnews) ▲ 경남이주민센터는 30일 오후 강...  
1312 "우린 노예가 아니다"…이주노조 "외국인 권리보장해야"
이주후원회
2285   2017-05-02 2017-05-02 13:35
"우린 노예가 아니다"…이주노조 "외국인 권리보장해야" "숙식비 명목 임금 2할 걷는 '숙식비지침' 철폐를" "이주노동자도 사람…노동권 보장하고 처우개선을"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2017-04-30 17:29 송고 5월1일 노동절을 앞두...  
1311 이주노동자 노동절 앞두고 “노동자는 소도 기계도 아니다”
이주후원회
1852   2017-05-02 2017-05-02 13:33
이주노동자 노동절 앞두고 “노동자는 소도 기계도 아니다”입력 : 2017-04-30 21:38/수정 : 2017-04-30 23:06 이주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고용허가제 폐지 등을 촉구하는 ‘이주노동자 2017 노동절 집회’가 30일 오후 2시...  



XE Login